"목사들과는 접촉도 하지 마라!"
"목사들과는 접촉도 하지 마라!"
  • 양국주
  • 승인 2007.12.09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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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콥 최바울 형제에게 드리는 편지 (1)

지난 8월 말, 아프간 인질 사태가 해결되던 즈음이었습니다. 정부의 지시로 아프간의 사역 현장을 떠나야만 하는 선교사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느 선교사가 “혹 우리가 인터콥 사역자들을 왕따 시킨 일은 없었는지, 회개해야 할 일이 있다면 회개하겠습니다” 하고 기도 제목을 나눴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의 이런 기도 제목은 좀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수년 전 우즈베크 타슈켄트를 방문했을 때 목사 사역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인터콥 선교사들처럼 평신도 선교사들은 선교사 모임에 초대하지 않나요?” 한 분이 볼멘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분들은 오라고 해도 오지를 않습니다.” 저는 이런 대답이 안수 받지 않은 성도들을 목사들이 차별하는 꼴불견을 감추기 위해 늘어놓는 궁색한 변명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번 아프간과 중동의 여러 지역을 돌면서 확인한 바로는, 최소한 타슈켄트에서의 궁색한 변명처럼 보였던 대답은 한 치의 의혹도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든 아프간을 떠나야 했던 선교사들의 입에서는 인터콥에 대한 원망과 미움보다는 안쓰러움이 짙게 담긴 절규가 배어나왔습니다. 그것은 진정 동역의 마음이었습니다.

최바울 형제는 MBC 방송에 나오셔서 카불을 거쳐 칸다하르까지 샘물교회 팀을 이끌던 세 분 자매들이 “인터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샘물팀이 아프간에 갔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런 구차한 변명보다 차라리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이 더 솔직하고 좋았을 것입니다. 양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프간 현지에서 사역하시던 분들 모두는 샘물팀을 인솔했던 자매들이 분명 인터콥 소속 선교사라는 사실을 증언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터콥의 아프간 사역자들 어느 누구도 그들을 인터콥 소속 선교사로 인정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말을 짜맞추어도 이처럼 완벽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매 세 분이 조직의 안위를 위해 비밀을 안고 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이 역시 선교사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범해서는 안 되는 양심의 문제입니다. 최바울 형제가 주장하는 바 그들이 고세중 형제가 이끌던 ANF 소속이라 하더라도 고세중 형제야말로 인터콥의 대표적인 현장 사역자 아니던가요? ANF는 인터콥의 선교적 사명을 위장하기 위한 일종의 전위 조직일 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인터콥 현장 사역자들이나 본부 사역자들에게 일정한 권한 위임이 있기나 한 것입니까? 어떻게 보면 인터콥 식구들은 최바울 본부장의 지시가 없다면 자의적으로 숨쉬기조차 불편한 분들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주○○, 김○○ 등 최바울 형제와 인터콥 선교의 지평을 열었던 분들이 피차 드러내기 어려운 입장에서 떠나간 이후 최바울 형제의 일인 지도 체제로 개편되면서 인터콥은 명실공히 최바울 형제와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포항에 계실 때나 한동대를 떠나오신 이후에나 최바울 형제의 결제가 없다면 인터콥의 시계 바늘은 결코 움직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터콥이 초기에 지향했던 선교 지향점과 놀라운 사역의 결과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제 자신이 인터콥을 얼마나 귀히 여겼는지 최바울 형제가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선교의 불모지에서 박토의 흉작뿐이던 한국 교회의 선교 현장에 초기 인터콥은 과연 위대하기까지 했습니다. UBF나 인터콥이 보여준 아름다운 열정과 선교의 결실은 교회사에 빛나는 간증이었으니까요.

목사들에 의한, 목사들을 위한, 목사들만의 잔치인 한국 교회. 평신도들은 젯밥인양 진정한 하나님 교회의 본질을 찾아가기 어려운 혼돈의 시기에 인터콥은 어쩌면 한국 교회의 미래를 가늠케 하는 나침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평신도들에 의한, 평신도가 세워가는 하나님나라의 이상을 실현하던 인터콥은 그야말로 한국 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난 해 용산에서 최바울 형제를 만났을 때, 형제는 선교의 전진 기지를 캠퍼스 운동으로 확산하려 한다고 했었지요. 지난날 한국 교회가 교회 안에 안주하며 팽개쳐두었던 캠퍼스 사역에 대한 바울 형제의 기도제목을 듣고 저는 흥분에 겨워 진정 어린 축수를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과거 CCC나 여타의 캠퍼스 단체가 교회로부터 젊은이들을 빼앗아간다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캠퍼스 선교단체(Para-church movement)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충만했습니다. 비난하면서도 캠퍼스 사역을 위해 투자하는 교회는 전무했습니다. 아마도 교회당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우리 주님을 교회당이라는 좁디좁은 건물 안에 가두어 둔 파렴치범들입니다. 무소부재하신 주님의 존재는 캠퍼스 내에서는 종교학 개론에서나 등장하는 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해외 선교지뿐 아니라 교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캠퍼스 사역 현장에 대한 인터콥의 기도 제목이 얼마나 감사하기까지 했던지요.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모습으로 비쳐진 인터콥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지난날 한국 교회가 CCC와 같은 단체에 취했던 경계적 태도의 차원이 아니라 인터콥이 교회와 동역자들에 갖는 동역 의식은 적대적인 차원에서 차라리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지난날 최바울 형제는 중앙아시아 인터콥 사역자 모임에서 “알카에다는 우리의 형제다”라는 요지의 강론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모임에서 “탈레반은 우리의 형제”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셔서 소란스러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그래 일리 있는 이야기야. 알카에다나 탈레반 역시 우리가 선교해야 할 대상이요, 사랑을 전해야 할 미전도종족 아니던가?”라는 생각조차 하였습니다. 오해받을 소지가 많기는 하나 너그럽게 보아주거나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결코 틀린 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터콥 사역자 훈련 과정에서 “인터콥 사역자들은 목사들과는 접촉하지마라, 다른 선교단체와는 연합하지 마라”는 강의를 했더군요. 정말 아니었기를 바랬습니다마는 불행히도 사실이었습니다.  선교의 동역과 연합을 상실한 선교 현장. 이것은 교회의 아름다움을 잃고 난 허무가 아니라 최바울 형제나 인터콥이 교회에 대해 갖는 적대적 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중앙아시아의 사역자들이 인터콥 사역자들과는 왜 그리도 동역이 안 되는가를 고민했던 원인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인터콥이 한국 교회와 선교에 축복에서 재앙으로 변질되었다고 여기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양국주 / 열방을 섬기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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