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예전의 용팔이 아니여"
"나 예전의 용팔이 아니여"
  • 정효임
  • 승인 2007.12.14 2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0년대 주먹세계의 상징 김용남 씨의 신앙고백

"예수 믿고 처음으로 했던 기도가 술, 담배 끊게 해달라는 거였어요. 그것도 하루 만에요. 지금 술, 담배 손도 안 댄 지 4년 6개월 됐습니다."

일명 '용팔이' 김용남 씨(57)의 말이다. 그가 누구이기에 예수 믿기로 결심한 뒤 처음 드렸던 기도가 술, 담배 끊기였을까. 386세대에게 용팔이를 물으면 바로 따라오는 그림이 있다. 그것은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이다. (1987년 4월 통일민주당의 창당대회를 폭력배들이 방해한 사건. 전두환 정권의 지시로 안기부가 개입한 대표적인 정치 공작의 하나이다. <편집자 주>)

가짜 용팔이가 곳곳에서 나올 정도로 김용남 씨는 주먹세계의 상징이었다. 그는 당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으로 80년대 정치 폭력의 대명사로 사람들에게 각인됐다.

그 후 20년. 용팔이 김용남 씨는 조폭 시절 입에 달고 살던 술, 담배와 이별하고 하나님과 열애를 하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초구 반포동에 상가 건물 지하 사무실을 찾았다. 그가 운영하는 간판 업체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우렁찬 찬양 소리가 들렸다. 찬양에 집중을 했는지 기자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나 보다. 찬양이 끝나고 나서야 인사를 했다.

웃으며 반겨주는 김용남 씨를 보고 '과연 조폭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첫인상은 순수한 어린아이 같았다. 흔히 조폭에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없었다. 해맑은 눈동자 수줍음이 가득한 미소, 작은 체구, 정돈된 콧수염, 만화 속 뽀빠이 아저씨가 그려졌다. 

   
 
  ▲ 김용남 씨는 신앙을 가진 후 달라진 자신의 생활을 눈물로 고백했다. ⓒ뉴스앤조이 정효임  
 
하루 2시간씩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생활 힘들어

예수 믿고 난 후 가장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말투요. 30년을 조폭세계에 있어서 입만 열면 욕만 나왔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그의 사무실에는 조그마한 기도방이 있다. 그곳에서 그는 매일 2시간씩 기도를 한다. 벌써 1년 반이 넘었다고 한다. 하루에 2시간씩이나 무엇을 기도하냐고 물었다. 그의 어린아이 같은 대답이 이어졌다. "감사합니다로 시작하고요. 교회를 위해서, 사역을 위해서, 우리 목사님을 위해서, 또 나라와 민족·세계선교·북한을 위해서요"

   
 
  ▲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김용남 씨의 사무실 입구다. ⓒ뉴스앤조이 정효임  
 
"더 있어요.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요.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개인 기도를 합니다. 그럼 2시간 금방 가요."

그는 2시간씩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사탄의 유혹 때문에 힘들거든요"라고 말한다.

가장 달콤한 유혹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여자요. 옛날에 알던 여자들에게 문자가 오거나 전화 오면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저에게 물질을 안 주시나 봐요"라고 얘기한다. "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께 따지기도 했죠. 저에게 물질을 넉넉히 주시면 제가 이런 유혹 때문에 힘들지 않잖아요. 근데 아니더군요"라며 말을 이었다. "하나님은 달라면 안 주세요. 특히 저한테는요. 이제 알 것 같아요. 왜 안 주시는지." 김용남 씨는 돈이 있으면 술을 찾게 되고 그러면 여자는 당연히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돈이 있으면 결국 제가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 같아요."

작곡가 조운파 씨와의 만남으로 예수님 영접

5년 전 그의 조직이 있던 사무실 바로 옆에는 그를 교회로 인도한 작곡가 조운파 씨의 사무실이 있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꼭 누가 계산을 하더군요. '돈이 얼마나 많으면 우리 밥값까지 계산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조운파 씨에게 1,000만 원을 때어먹으려는 속셈으로 그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조운파 씨는 그의 속셈도 모른 채 그를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힘썼다. "사업이 어려우니 1,000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조운파 집사님이 기도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하면서, 교회를 같이 가자고 하는 거예요." '한 번 정도 같이 가는 게 뭐가 어렵겠냐' 싶어 따라가게 된 것이 결국 지금의 그를 만들게 됐다. 

2002년 10월, 그는 조운파 씨와 함께 사랑의교회(목사 오정현)에서 열린 '새생명 축제'에 참석했다. "얼굴이 후끈거리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더라고요. 옥한흠 목사님(사랑의교회 원로목사)이 결신 카드를 작성하라고 하는데 망설여지더라고요"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는 그때 당시의 망설임이 그대로 드러났다. "옥 목사님이 1분 남았다고 카드 작성하면 천국 가는데 왜 안 쓰냐고 하시기에 바로 썼죠. 천국은 가고 싶었나 봐요." 그 후 조운파 씨의 지속적인 인도와 교회 새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경필사로 하나님 인격적으로 만나

   
 
  ▲ 김용남 씨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사무실에 기도방을 만들어 매일 2시간씩 기도를 한다. ⓒ뉴스앤조이 정효임  
 
"목사님이 성경을 다 읽으면 상을 준대요. 보름 만에 다 읽었어요. 근데 안 믿더라고요. 그때부터 필사를 시작했어요." 그는 두 번의 필사를 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30년 동안 앓던 중이염과 축농증 증세가 저절로 치유되는 체험을 했다. 많이 배우지 못해 남들보다 읽고 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그는 필사를 하는 동안 사탄의 유혹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필사를 하는데 내가 여기 왜 이러고 있지? 나가자. 그럼 이렇게 힘들지 않을 거야"라는 유혹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비였다. 

김용남 씨는 필사를 하면서 신비한 체험을 하기도 했다. "필사를 하다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일어나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서 일어났죠. 그때 제 귀에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찬양이 들렸어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요한복음 3장16절 말씀으로 된 복음성가였어요." 그는 그때 일을 얘기하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유혹이 와도 참아요. 하나님이 나한테 그렇게 직접 말씀하셨는데 이겨내야죠. 기도하면서 인내하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사랑의교회에서 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됐고, 신앙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신앙일기는 더 쓰기 힘들더라고요. 필사는 보고 쓰면 되지만 신앙일기는 내가 생각해서 쓰는 거니까." 그는 그동안 써왔던 신앙일기를 보여주며 처음에는 두 줄 정도밖에 쓰지 못했던 일기를 지금은 두 쪽이 넘어간다며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표현했다.

예수 영접 후 영생 얻었지만 고난은 계속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그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했다. "뭐든 잘 풀리고 잘 될 거라는 생각뿐이었죠." 하지만 그는 조폭시절 자기를 누르고 있던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을 얻은 것 외에는 고난의 연속뿐이었다고 한다. 가장 힘든 고난은 재정적인 부분이다. 그는 조폭시절 하룻밤에 1,000만 원을 음주 가무에 쓸 정도로 쾌락을 위해서는 아무리 큰돈도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후 모든 것은 깨졌다. "가족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걸 예수님 만나고 깨달았어요. 내가 참 집사람한테 못할 짓을 한 놈이구나. 자식들에게 못난 아빠라는 거. 지금도 미안해요." 그는 가족 얘기를 하면서 또 눈물을 흘렸다. 

30년 동안 조폭 세계에 있었던 그는 조폭 외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폭 일을 청산하고 시작한 일은 고등어 장사였다. 우연히 교회에서 만난 형제를 통해 고등어 장사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쉽지 않았다. 장사 잘 되도록 도와주겠다는 교인들이 나중에는 외면을 했다. 그에게 교인들의 외면은 조폭세계의 배신보다 더 큰 상처였고 아픔이었다고 한다.

"믿는 사람들이 더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하나님만 더 바라보기로 작정했죠. 물론 좋으신 분들도 많은데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김용남 씨는 4년 동안 힘들게 고등어 장사를 하면서도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했다.

그 후 간판 사업을 시작했다. "여동생이 한번 해볼 생각이 없냐고 해서 동생이 했던 사업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시작했어요. 아직 6개월 정도밖에 안 됐어요." 사업은 잘 되냐는 질문에 "어려워요. 봄이나 여름에는 장사가 좀 되는 편이지만 날씨가 추원지면 그나마 안 돼요." 그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의 사무실 임대료도 건물 주인에게 사정을 해서 월세를 25만 원으로 깎았다고 한다. "건물 주인 참 좋죠? 감사하게 간증해달라는 제의가 와요. 그래서 간증 사례비랑 집 사람이 남의 집 가서 일 도와주고 받는 거해서 직원 월급 주며 유지하고 있어요." 그는 어려운 형편을 얘기하면서도 아내와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연신 눈물을 흘렸다.
 
김용남 씨는 믿음 생활을 시작한 후 힘든 고난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힘들면 믿음 생활에 회의가 일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힘들어도 이 믿음의 길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만약에 100억 준다고 하나님 믿지 말라고 하면 전 100억 안 받아요. 하나님 믿을 거예요"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하나님 안 만났으면 전 정말…" 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하나님 만났으면 됐죠. 무슨 복을 바래요. 하나님만 바라볼래요."

   
 
  ▲ 김용남 씨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온 신앙일기와 성경 필사를 한 공책이다. ⓒ뉴스앤조이 정효임  
 
   
 
  ▲ 김용남 씨의 일기의 한 부분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신앙고백을 볼 수 있다. ⓒ뉴스앤조이 정효임  
 
유혹은 계속 오지만 믿음으로 이겨내

"저를 이용해서 한 건 해 보려는 전화는 아직도 와요. 제가 절대 그 쪽 일을 안 하는 걸 알아서 다양한 방법으로 저를 유혹해요. 저는 가운데서 연결만 시켜주면 된다는 거죠. 간단하죠. 제가 연락만 해주면 되니까…."

한 번은 너무 사정이 어려워서 '연결 정도 해주는 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약속 장소로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아주 사소한 나쁜 일도 하나님이 너무 싫어하신다는 걸 깨달았다며 절대로 과거와 관련된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과 약속을 했다. "사고가 날 장소가 아닌 곳에서 교통사고가 났어요. 순간 정신 차렸죠. '이건 아니야.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그는 가끔 선배나 후배와 술자리가 있을 때도 술이 아닌 음료수를 마신다고 한다. "전 콜라와 사이다를 마셔요. 하나님이 술 마시지 않고 재밌게 놀 수 있는 은사를 주셨어요. 하하." 취하지 않을 정도면 괜찮지 않냐고 물었더니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지금은 후배나 선배들도 포기하고 알아서 콜라와 사이다를 시켜줘요" 하며 웃는다.

거리 전도사 '용팔이'

얼마 전 교회에서 사역훈련을 수료한 그는 이제 순원을 섬기는 순장이 된다. "전 머리가 나빠요. 그래서 제가 제일 자신 있는 몸으로 하려고요." 몸으로 실천하는 순장이 되고 싶다는 김용남 씨는 현재 사랑의교회 주변인 강남역 땅 밟기 기도부터 교회 봉사 중 가장 힘든 교통 봉사, 병원 봉사 등을 하고 있다.

그와 대화를 하는 중에 사무실에 놀러온 그의 아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아빠의 변화된 모습이 어떠냐는 질문에 아들은 "감사하죠. 근데 신앙생활 너무 열심히 해서 짜증이 날 정도예요" 하면서 웃었다. 그는 바로 말을 이었다. "가족에게 더 잘할 거예요. 그리고 힘들어도 어려워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싶어요. 저 같은 죄인에게 천국 갈 수 있는 특권을 주셨잖아요."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보탰다. "조폭은 자기밖에 몰라요. '의리'라고 외치지만 그건 자기 자신을 위한 '의리'예요. 근데 우리 예수님은 저 같은 놈을 위해 죽으셨잖아요. 그 생각만 하면 정말 눈물밖에 안 나와요."

정효임 / <뉴스앤조이>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