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은 하나님의 비밀스런 뜻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밀양은 하나님의 비밀스런 뜻이라고 볼 수도 있다"
  • 박지호
  • 승인 2007.12.20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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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 이창동 감독 인터뷰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과장하지도 그렇다고 애써 감추지도 않으면서 담담하게 한국 교회를 묘사하고 있다. 그저 평범한 한국 교회의 일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낯을 뜨겁게 만든다.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작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한국 교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내세워 값싼 용서를 남발하며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려 드는 기독인들의 무례함을 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기독교를 통해서 진정한 용서와 화해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의 이중성이나 단편적인 신앙의 모습을 들추려고 했다기보다 모든 사람이 맞닥뜨리는 ‘용서’라는 문제 앞에 “기독교가 대답이 될 수 있는 종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밀양-Secret Sunshine> 시사회는 맨해튼에 있는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12월 19일 오후 6시에 열렸다. 이날 시사회에 참석한 이창동 감독은 시사회 후에 뉴욕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리차드 페냐와 함께 토론회를 가졌고, 토론회 이후에는 <미주뉴스앤조이>와 짧게 인터뷰를 했다. 토론회 때 나온 이야기와 이창동 감독과 나눈 대화 내용을 종합해 질의 응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 이창동 감독은 <밀양>을 통해 "우리 삶의 의미와 희망이 하늘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속에 있다는 생각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에 대한 묘사가 매우 적나라하고 사실적이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표현했나. 

교회의 그런 모습은 (한국에서) 그다지 낯설지 않다. 한국 교회 모습을 알려면 꼭 교회 나가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예전에 교회를 좀 다녔었다. (웃음) 한국에서 흔히 말하듯 ‘크리스천이냐 아니냐’ 하고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본다. 그런 건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나. 나보고 ‘기독교 신자냐’ 질문하곤 하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면 황당하다. 만약 기독교인라고 대답하면 진정한 신자인지 어떻게 판단할 것이며, 반대로 아니라고 하면 정말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여주인공 신애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러 갔다가 살인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는 말을 듣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그 장면은 신애라는 개인에게도 매우 슬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지만,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장면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가해자나 피해자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고, 용서라는 문제 앞에 맞닥뜨리게 된다. 용서라는 화두는 개인의 실존적인 문제인 동시에 모든 인류가 피해갈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기도 하다. 중동 지역의 여러 나라들은(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여전히 그런 문제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 근대사만 돌아봐도 일본군 성노예(종군위안부) 같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 이창동 감독은 "<밀양>은 넓은 차원에서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 이야기라고 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용서를 이야기하면서 굳이 기독교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가 있나.

기독교는 용서와 가장 관련이 많은 종교다. 기독교성(christianity)이 용서의 문제에 대한 대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심판과 은혜라는 개념 속에서 용서와 구원을 찾는 종교다. 다른 종교보다 교리 속에 용서에 대한 개념이 많이 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에서 신애는 범인을 용서하겠다고 나섰지만, 신애가 생각하는 용서라는 것은 결국 자기만의 생각이었다. 신애는 하나님의 의지와 뜻을 말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뜻과 이해관계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온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이나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수구에 햇볕이 내리쪼이는 장면으로 영화가 막을 내린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영화를 구상하는 단계서부터 촬영을 마칠 때까지 첫 번째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변함없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시작하고 땅을 내려다보면서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땅이 아름다운 땅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추하고 더러운 땅이다.

우리 삶의 의미와 희망, 구원 같은 것들이 하늘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담고 싶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비밀스런 뜻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Secret Sunshine'이라는 제목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뜻’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밀양이라는 ‘평범한 도시’를 배경으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밀양이라는 동네는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지방 소도시다. 내가 나고 자란 대구라는 곳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다. 자주 가보진 않았지만, 밀양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자주 들었다. 밀양이라는 지명이 담고 있는 시적인 의미에 대한 호기심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평범한 것, 평범한 장소, 평범한 사람들, 일상적인 삶. 그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영화라고 하면 굉장히 특별하고 현실과 다른 어떤 것을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특별하고 멋있고 아름다운 것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보통 사람들이 겪는 일상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다만 제 나름의 방식으로 담으려고 노력했다.

   
 
  ▲ 이창동 감독은 "촬영할 때 연민을 가지고 주인공을 지켜보는 느낌을 주려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송강호 씨의 연기도 평범한 밀양이라는 도시와 너무 잘 어울린다.

송강호 씨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면 영화 전체를 혼자 이끌고 가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보면 전도연 씨 뒤에 머물러 있으면서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다. 카메라의 포커스에서 비켜서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노련한 연기자라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배역인데, 송강호 씨는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다. 어떨 때는 내가 요구한 위치보다 더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신애가 교회에서 통곡하는 장면에서는 신애의 바로 뒷줄에 앉으라고 했지만, 한 줄 더 뒤로 갔다. 본인이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다.

   
 
  ▲ 이창동 감독은 '크리스천이냐 아니냐'는 질문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신애의 뒷모습이 많이 부각된 이유가 있나.

연민을 가지고 주인공을 지켜보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뒷모습이든 앞모습이든 카메라의 위치를 많이 의식해서 촬영했다. 카메라가 너무 멀리 있어서 관찰하듯 냉정하고 차갑게 바라보는 느낌을 주는 것도 원치 않았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주인공에게 너무 쉽게 동화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정직하다. 꾸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살리고 싶었다.

<밀양>은 소위 멜로드라마도 아닌데, “이런 사랑도 있다”라는 문구를 포스터에 넣었다. 어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가.  

<밀양>은 넓은 의미에서 사랑 이야기라고 볼 수는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밀양>은 넓은 차원에서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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