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허락을 받지 않고 칼럼 전문을 게재하는 것이 몹시 죄송스럽지만, 평소 친분은 이럴 때 악용하라고 쌓아놓는 법.
'두 개의 무신론 광고' |
작년에 미국의 기독교 전문 여론조사 기관인 바나 그룹에서 책을 하나 냈다. < unchristian >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나쁜 그리스도인>(살림)으로 번역되어 올해 나왔다. 이 책은 비기독교인이 기독교인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3년 동안 전국적으로 10번도 넘게 설문조사를 하고 심층 인터뷰를 한 것을 분석해서 정리한 일종의 보고서다. 특히 20대 중반 이상 젊은이들의 반응에 무게를 두고 연구했다.
그랬더니 대충 여섯 가지로 기독교인에 대한 인상이 그려졌다. '기독교인은 위선적이다, 지나치게 전도에 집중한다, 동성애를 혐오한다, 안일하다, 정치적이다, 타인을 함부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좋은 점은 당최 보이지가 않는다. 영어로 된 책을 볼 때는 "미국 기독교인들 아주 개판이군" 했는데, 우리말로 된 책을 보니까 "한국 기독교인들 아주 아수라판이군" 싶다. 책을 보면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현실을 보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처럼 리얼하다.
만약 김영봉 목사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칼럼을 쓴다면 무신론자들의 광고문을 보고 나서 쓴 앞의 칼럼과 논조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고, 본질을 왜곡하고 있고, 이로 인해 가슴이 답답할 것이다.그러고 보니 이 책도 설마 무신론 운동에 기여하기 위해 출판된 건 아니겠지? 한국에 워낙 음모론이 판을 치다 보니까, 그거 비판하다가 나도 모르게 음모론의 늪에 빠져버린 것 같다.
김영봉 목사의 칼럼을 읽은 소감 세 가지. 첫째, 칼럼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둘째, 전반전만 끝내고 후반전은 시작도 안 했네, 셋째, 고약하다.
첫 번째 얘기는 반복할 필요가 없겠다. 두 번째 얘기를 하려니 짧은 한 편의 칼럼을 두고 별 걸 다 주문한다고 사방에서 핀잔이 날아올 것 같다.
김영봉 목사는 무신론자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나의 의문은 간단하다. 무신론자들만 이렇게 오해를 하고 왜곡하고 있을까. 이들은 왜 기독교를 오해하고 왜곡하고 있을까. 오해와 왜곡의 책임이 무신론자들에게 있을까.
만약 무신론 변증가들이 기독교의 근본 교리라고 일컫는 것들, 가령 천지창조, 예수 동정녀 탄생과 죽음과 부활과 재림, 종말과 내세 같은 것들을 들고 나와서 무신론을 주장한다면 "쟤들은 우리가 아무리 설명해도 들을 맘이 전혀 없어" 하고 포기할 수도 있다. 다원주의자들에게 기독교의 유일신 교리가 통할 리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김영봉 목사가 칼럼에서 설명한 내용들은 모두 우리 스스로가 기독교의 본질을 오해하고 왜곡하고 거기에 맞춰 그렇게 살고 있는 것들이다. 기독교의 본질을 지키고, 그것을 따르고, 그러다가 오해를 받는 것이 아니다.
무신론자들의 오해와 왜곡은 결과일 뿐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이 여기에 들어맞을 것 같다. 굴뚝에 연기 나도록 군불은 누가 땠을까. 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부채질은 누가 했을까. 바로 우리다. 우리가 기독교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다. 우리가 기독교의 본질을 단단히 왜곡시켰다. non-christian이 범인이 아니다. unchristian,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예수 믿는 자의 모습을 도무지 갖고 있지 않은 예수쟁이들이 범인이다. 원래 예수에 단단히 미쳐서 예수의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붙이는 '예수쟁이'가 여기서는 '나쁜 그리스도인', '고약한 그리스도인'으로 변질되었다. 누가 변질시켰나. 남이가, 우리 자신이가?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예수 때문에 욕을 먹고 있는가, 예수가 우리 때문에 욕을 먹고 있는가.' 막말로 예수가 자기 스스로 한 말과 행동 때문에 욕을 먹고 구타를 당하고 가래침을 받는 거야 우리가 어쩌겠나. "무너진 성전을 삼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느니 "내가 하나님 아들이다"느니 하는 말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 그건 자업자득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애먼 우리가 욕을 먹는다면, 어떤 이는 억울하게 여길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자랑스레 여길 수도 있다. 근데 예수가 하지도 않은 말을 마구 해대고 예수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마구 저질러대니, 뻘짓 하는 우리 때문에 예수는 얼마나 억울할까.
기독교의 본질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무신론자들을 볼 때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가슴이 찢어지고 속이 터질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고약하다. 김영봉 목사는 전반전만 뛰고는 벤치로 들어와버렸다. 쉬는 시간이 끝났는데도 운동장이 조용하다. 관중석에 앉아서 후반전을 기다리던 나는 급한 성질을 짓누르지 못하고 운동장으로 뛰쳐나왔다. 유니폼도 안 입고, 준비 운동도 전혀 안 했다. 전반전에 뛴 선수는 적의 골문을 향해 열나 발길질을 했는데, 후반전에 나온 선수는 우리 편 골문에다 대고 졸라 발길질을 해대고 있다. 김 목사는 아마 성질 급한 내가 알아서 운동장으로 달려나가서 뻘짓을 할 거라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성질 급한 놈만 욕먹는 게 세상 이치다. 어찌 아니 고약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