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제비'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 진민용
  • 승인 2008.01.16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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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의 첫 계명의 내용인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 때문에 기독교인은 철저히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타 종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우상'으로 규정합니다. 심지어는 '신년운세'나 '띠로 보는 오늘의 운세' 같은 경우에도 매우 비성경적이라는 이유로 배척합니다. 그리고 '무당'이나 '점'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들에서 연말, 즉 매년 12월 31일 밤만 되면 '신년운세'를 봅니다. 일명 '송구영신예배'를 통해서입니다. 이 '송구영신예배‘는 12월 31일 11시부터 1월 1일 새벽 1시 정도까지 행해지는데,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예배와 기도로 준비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예배에서 새해를 출발하면서 '하나님이 새해에 나에게 주신 말씀'을 뽑습니다. 

혹시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그 방법을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신년을 앞두고 나에게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해주실까 궁금하겠지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성경 구절 제비뽑기'입니다. 성경의 내용 중 일부 구절을 적은 쪽지들을 만들어 놓고 교인들에게 하나씩 뽑게 합니다. 거기에는 '성경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교인들은 '이 말씀이 새해에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 또는 말씀이구나'라고 믿습니다. 제가 이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몇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목회자들은 더 이상 성경을 '덕담'으로 사용해서도 안 되며, 빵에서 건포도만 빼 먹듯 자신에게 좋고 듣기 좋은 말만 뽑아서 스스로 자위하는 심약한 교인들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1. 성경 구절 마음대로 고를 권한 누가 가졌나.

성경책 분량은 1,800쪽 가량 됩니다. 성경 전체는 총 1,189장으로 돼 있으며, 무려 5만 4,240절로 돼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실시하는 '뽑기'에서는 이 많은 분량의 내용이 전부 동등하게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들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구절이 있을까요? 아마 기독교인이라면 성경 전체를 오직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는데, '덜' 중요한 구절이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내용의 방대함 때문에 평생 성경을 한 번도 완독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이 중에 골라서 쪽지를 만드는 작업을 교회에서는 하게 됩니다. 즉 '제비'를 만드는 작업이겠지요.

보통은 목사나 전도사 등이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구절을 넣고 빼고 할 권한을 이들이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교인들은 이들이 뽑아준 성경 구절 중에 골라야 하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제외된 성경 구절 중에 뽑힌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구절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을 뽑을 때 나름대로 기준을 세우게 되는데, 그 기준은 대체로 '축복'과 관련 있거나, '약속' 또는 '충고' 등으로 정해집니다. 물론 뽑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네 자손이 복되리라' 같은 유의 '축복' 내용을 가장 선호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런 식의 구절 뽑기는 매우 인위적으로 성경 내용을 선정함으로써 그 기준이 결코 성경이 제시하는 모든 말씀을 다 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권위를 목사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2.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문제

아마 기독교인이라면 욥기 8장 7절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내용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 용품점에서는 이 내용의 액자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약속'으로 이해합니다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욥이 고난을 당할 때 그의 세 친구가 찾아와서 위로를 하는데, 그 중 빌닷이라는 친구가 욥을 위로하면서 했던 말이 바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용기를 심어주는 것은 아주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 말이 성경에 기록됐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하나님이 욥, 또는 오늘날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잘못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예를 든 것처럼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사람의 말'도 있으며 '사탄의 말' 또한 있습니다. 이런 말들 중에 분별없이 그저 "내용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취사선택한다면 그 또한 성경을 오해하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연말에 실시하는 '구절 뽑기'에서는 대부분 '좋은 내용'만을 골라서 뽑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내용 중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진노의 메시지'와 '저주의 말' 그리고 '심판의 메시지'를 더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심판'과 '진노'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욕심 때문에 일부러 이런 구절은 아예 '뽑기'에서 제외시켜버립니다. 그래서 '좋은 말', '복 준다는 말' 등만 사용합니다. 

어떤 이들은 "새해에 덕담하는데 좋은 말만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하십니다만, 그런 덕담이라면 차라리 목사가 스스로 교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덕담을 적어서 뽑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성경은 그런 덕담에 활용하라고 인간에게 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지 않습니까.

   
 
  ▲ 한국 교회의 이런 이상한 '점치기'는 성경을 모르는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3. 성구 뽑기는 교인들을 편협된 신앙으로 빠뜨린다.

앞서 언급했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좋은 평가만 듣고 싶어 합니다. 이런 욕심을 교회가 성경적인 올바른 판단 기준으로 안내하고 교육해도 모자랄 판국에, 그런 욕심을 더 조장하고 있다는 데 이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말 안 듣는 자식에게도 부모가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잘 될 거야"라는 말을 하는 것 정도로 성경 뽑기를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그 쪽지를 받아든 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성경 구절을 "한 해를 살아가는데 지침이 돼 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그 성경 내용을 다른 성경 내용보다 더 귀중하게 생각하면서 발생하는 신앙적인 오류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과 일치한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4. 성경을 '신년 운세 점치기'로 사용해서야.

중세 가톨릭은 라틴어 성경을 번역하지 않고 사제들만 읽으며 교인들을 성경에 문외한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로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기치를 내 걸고 일반 교인들을 위해 성경을 독일어로, 또는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이런 이상한 '점치기'는 성경을 모르는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더 이상 성경을 '덕담'으로 사용해서도 안 되며, 빵에서 건포도만 빼 먹듯 자신에게 좋고 듣기 좋은 말만 뽑아서 스스로 자위하는 심약한 교인들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는 오히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그 인간의 그 죄악 때문에 숱한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을 보내서 경고를 했지만 돌이키지 않는 인간의 교만함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어버림으로써 인간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그 아픈 내용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심오하고 무거운 주제의 성경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점쟁이가 점을 치듯 몇 구절 뽑아서 그것만 붙들고 1년을 살라고 던져주는 무책임한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일부 교회는 그 '성경 뽑기' 통 앞에 간혹 '헌금' 통을 놔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헌금 봉투에는 어김없이 '새해 소원 기도 제목'이라는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는 이 같은 관행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가 됐다고 판단합니다.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팔았던 가톨릭이나 돈을 받고 '성경 구절'을 파는 교회나 공히 '개혁의 대상'임에는 틀림없는 듯합니다.

진민용 / <뉴스앤조이> 기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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