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무슨 꿈을 꾸면서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슨 꿈을 꾸면서 살고 있는가?
  • 김종희
  • 승인 2008.01.22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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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의 '꿈', 오바마의 '꿈', 그리고 나의 '꿈'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암살되었으니까, 올해가 꼭 40년이 되었다. 미국은 해마다 그의 생일을 즈음한 1월의 세 번째 월요일을 국경일로 지키고 있다. 올해도 1월 21일을 국경일로 지냈고, 이날 앞뒤로 미국 곳곳에서 그에 대한 컨퍼런스와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올해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인데다가, 최초로 흑인 대통령 후보가 등장한 선거이다 보니 인종차별을 위해 투쟁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마치 다시 부활한 것과 같은 분위기다. 민주당 후보들 중에 특히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버락 오바마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킹 목사와 팔짱 끼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아마 역대 대통령 선거 중에 이번처럼 킹 목사의 몸값이 올라간 적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 A. 링컨도 아니고, J. F. 케네디도 아니고, 왜 M. L. 킹일까. 물론 대선 주자들이야 흑인 표를 얻기 위해 킹 목사를 팔고 다니지만, 그래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어야 장사가 되는 것 아닌가.

40년이라는 기간이 보기에 따라서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겠지만, 마틴 루터 킹이 목숨을 바쳐서 씨름했던 문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종차별 철폐이다. 그의 비폭력 평화주의적 운동 방식, 인종을 넘어서서 빈곤 문제에 대한 후기 관심의 전환 등도 서서히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그의 헌신과 희생에 더 많은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인종의 문제가 미국 대선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커다란 숙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버락 오바마와 오프라 윈프리로 상징되는 미국 흑인의 ‘아메리칸 드림’이 과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외쳤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할 때 그 ‘드림’과 똑같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 우리가 지금 정녕 꾸어야 할 꿈은 버락 오마바와 오프라 윈프리의 '아메리카 드림'일까.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볼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입니다.
……”

   
 
  ▲ 백인들은 백인들만의 온갖 혜택을 누리기를 원했고, 흑인들은 그저 인간으로서 서로 손을 잡고 같이 살아갈 수 있기만을 원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렇게 ‘무례한 꿈’을 꾸었기 때문에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버락 오바마와 오프라 윈프리는 그들의 ‘화려한 아메리카 드림’ 때문에 언젠가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을 말하고, 정의를 외치고, 평화를 주장하는 것은 그리 위험한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존경의 이유가 될 수도 있고, 인기의 방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을 실천하는 삶, 정의를 추구하는 삶, 평화를 일구는 삶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노예 주인의 후손인 누군가가 지금도 여전히 노예 후손이나 다름없는 처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비의 빵 한 조각을 긍휼의 물 한 모금에 적셔서 떼어준다면, 노예 주인의 후손은 존경과 사랑을 받을 것이다. 긍휼의 물에 젖은 빵 한 조각을 건네주면서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얘기한다면, 군중의 환호와 숭배를 받을 것이다.

   
 
  ▲ 내게는 비록 소박한 꿈일지라도 그냥 꿈만 꾸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했을 때 개에게 물어뜯기고 총에 맞아 죽는 길까지 갈 수도 있다. 그러한 고난을 통해야만 꿈은 비로소 길이 된다.  
 
그러나 깊은 골짜기를 메우고 높은 산을 낮추어서 평탄하게 만든 지경에서 노예 주인의 후손과 노예의 후손이 마치 형제와 자매처럼 손을 맞잡고 함께 뛰어놀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람들은 위험한 존재들이다. 언제 어디서 총에 맞아 죽을지 모른다.

나는 지금 무슨 꿈을 꾸면서 살고 있는가? 정의와 평화를 외치면서 동시에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삶을 꿈꾸고 있는가, 아니면 정의와 평화를 살아가면서 동시에 총구의 위협에 노출되는 삶을 꿈꾸고 있는가.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꿈을 꾸라고 지금 말씀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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