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Buddie) 이야기
버디(Buddie) 이야기
  • 이태후
  • 승인 2008.02.13 0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버디(사진)의 우정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오늘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한 걸음 더 진전시킨다. (사진 제공 : 이태후)  
 
버디(Buddie)는 내가 처음 유버 스트릿(Uber Street)에 갔을 때, 마이클과 함께 나를 따뜻이 맞아준 이웃이다. 그의 본명은 에디(Eddie)지만, 동네에서는 버디라는 이름으로 통하고 있다. 뉴욕에서 살다가 필라델피아로 이사 온 버디는 버려진 빈집의 일층에 살고 있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자면, 무단 거주 정도가 되는 셈이다. 시 정부에 의해 빈집으로 처리되었으니, 전기, 수도, 가스 등 기본 서비스는 당연히 끊어진 지 오래다.

그래서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인 필라델피아에 제3세계 난민촌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 플라스틱 통에 물을 받아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아쉬울 뿐이다. 여름에야 큰 지장이 없지만,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버디가 사는 일층의 방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요즈음에는 우리나라 가정집에서도 보기 힘든 석유난로를 구해서 근근이 영하의 날씨를 이기고 있다. 햇볕이 따스한 낮에는 집 앞 계단에 앉아 이웃들이 구해다 준 나무를 때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요즈음 그의 일과이다.

5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버디는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 그의 하루 일과는 골목을 쓰는 일로 시작됐다. 지저분하게 널린 쓰레기를 다 치운 후에는, 공터에 웃자란 잡초를 제거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 그는 자기 집 계단에 앉아서 집 앞을 지나는 사람을 다 챙기며 골목의 대소사에 신경을 쓰곤 했다. 내가 버디를 처음 만났을 때 한 일도 그를 도와 골목을 쓸고 그 밖에 필요한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었다.

여름에는 음료수도 나눠 마시고, 겨울에는 그가 피운 불에 음식도 구워먹었다. 그런데 항상 담배와 술을 달고 살던 그의 다리가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아마도 신경계통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2년 전에 그가 거의 거동을 못할 지경에 이른 적이 있었다. 나를 보더니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거의 마비된 듯한 다리를 내게 보여주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를 붙들고 그의 다리와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그 다음 날 버디에게 갔더니, 내게 보여줄 게 있다며 내게 그 자리에 서 있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계단에서 내려와 내게로 걸어오는 것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서 거의 기다시피 하던 그가 걷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어제 목사님이 기도한 후 기분 좋게 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왠지 몸이 가볍더군요. 침대에 앉아 방 저 편을 바라보니, 비닐봉지에 뭐가 담겨있더군요. 그게 전에 목사님이 가져다 준 가죽 잠바라는 걸 기억하고는 한 번 입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리를 움직여 바닥을 짚었습니다. 어제와는 달리 다리에 감각이 새로운 것 같아서 자신감을 갖고 서봤더니, 제가 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걸어가서 비닐봉지를 열고 잠바를 꺼내 입더니, “이렇게 잘 맞네요. 아마도 이 잠바가 운이 좋은 옷인가봐요” 하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앞뒤로 걸어보였다. 그래서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버디, 아마도 하늘 위에서 어떤 분이 긍휼히 여기셔서 그렇겠지요.”

버디도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래요. 목사님이 항상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알고 있어요.”

버디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거동에 별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다. 버디를 알게 된 이후로 나는 그를 위해 담요, 옷, 음식 등을 챙겨주었다. 2006년 성탄절에는 그에게 가스버너를 선물했더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부탄가스를 사다주는 것이 내 일과가 되었지만, 버디가 음식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운 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 집 앞 계단에 앉아 이웃들이 구해다 준 나무를 때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요즈음 버디의 일과다. (사진 제공 : 이태후)  
 
지금까지 한 얘기를 읽으면 마치 내가 버디에서 상당한 친절을 베푼 것 같이 들린다. 그런데 버디와 나와의 관계는 내가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다. 버디가 나를 위해 한 일들은 내 스스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버디는 마이클과 함께 나를 자기 친구로 받아들였다. 말로만 친구가 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처음 썸머 캠프를 할 때, 테이블과 의자를 보관할 장소가 없는 걸 보고는, 자기 집 이층을 흔쾌히 내어주었다. 캠프가 진행되는 동안 계단에 앉아서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고, 혹시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우리 대신 꾸중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버디는 동네 사람들에게 나를 위한 대변인이 되어주었다. 내가 자기에게 얼마나 잘 해 주는지, 아이들이 얼마나 썸머 캠프를 좋아하는지, 자원봉사자들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일하는지. 버디는 내가 자기의 친구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항상 내가 자기와 음식도 나누어 먹는다는 걸 강조한다. 그런 버디의 말이 동네 이웃들이 나를 신뢰하게 만든 것이다. 연말에 여행할 일이 있어서 몇 주 비웠다가 버디를 찾아갔더니, 반갑게 맞아주며 내가 안 보여 이웃들과 내 얘기를 하며 걱정했다고 내 안부를 물었다. 연말에 내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뵈러 간다고 얘기했는데, 버디는 2년 전에 이집트에 간 일을 기억하고는 혹시 내가 그곳에 갔다가 테러리스트에게 무슨 일이나 당하지 않았는지 걱정했다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목사님, 내가 목사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요?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목사님 얘기를 해요. 목사님이 나한테 얼마나 잘해주는지.”

그런 얘기를 들으며 나는 누가 누구를 돌보아주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버디를 돌아보는 게 아니라, 버디와 그의 이웃들이 나를 보살펴 주는 것이다. 내가 잠시 안 보이면 내 염려를 하며 내 안부를 살피는 내 이웃들. 내가 한 작은 일도 커다랗게 포장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알리는 버디. 별 볼일 없는 동양인 목사를 자신들의 영웅으로 만들어 낸 내 이웃들. 버디의 우정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오늘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한 걸음 더 진전시킨다. 버디를 통해 우리 가운데 임하신 예수님을 본다고 생각하면 너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버디는 이전에 뉴욕에 살 때 거리에서 그림을 그려서 관광객들에게 팔곤 했다. 지금은 손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던 그에게 지난여름, 스케치북과 파스텔 세트를 선물했다. 그 얼굴에 잠깐 스친 희열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올 여름 썸머 캠프에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을 스케치북에 그릴 버디를 기대해본다. 그의 손을 통해 우리 동네 아이들이 화폭에 담겨진다면, 그거야말로 우리 동네에 일어나는 주님의 구속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태후 목사 / 템플대학 IVF 간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