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먹고사는 일에 인생을…"
"언제까지 먹고사는 일에 인생을…"
  • 김종희
  • 승인 2008.02.1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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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샘물교회 고 배형규 목사의 마지막 설교, '먼저 받은 자의 책임'

이 글은 분당샘물교회 단기선교팀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기 전인 2007년 7월 8일 고 배형규 목사가 마지막으로 설교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 지난해 9월 8일 열린 고 배형규 목사 장례예배에서 배 목사의 아내와 딸이 헌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의 지도자들은 모세에게 요청해서 다른 지파보다 먼저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 그러나 모세는 땅을 먼저 받은 너희가 다른 지파를 위해서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앞장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했다. 경고는 여호수아의 입을 통해서 반복되었고, 이러한 내용은 민수기·신명기·여호수아를 통해서 세 번이나 언급되었다.

먼저 땅을 받은 자는 아직 기업을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 모세는 힘이 남으면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명령이다. 먼저 받은 것은 특권이 아니다. 책임이다. 그것을 누리는 기쁨과 축복이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이다. 하나님은 사명을 주기 전에 은혜를 주신다. 우리가 남들보다 먼저 받은 은혜가 있고 더 받은 은혜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더욱 충성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가나안 전쟁은 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영적 전투의 모델이다. 복음을 먼저 받은 자가 아직 복음을 받지 못한 자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것을 이 전쟁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은혜를 먼저 받은 자는 더 수고하고 더 울고 더 선봉에 서고 남들보다 더 빨리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먼저 받은 자가 먼저 섬기는 것이고, 먼저 생명을 얻은 자가 그 생명을 전하는 것이다. 나는 은혜의 종점이 아니다. 나에게서 은혜가 멈추면 안 된다. 나는 은혜의 통로이다. 나를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은혜가 전해져야 한다.

언제까지 나 먹고사는 일에 내 인생을 쏟아 부을 것인가.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서 살다가 하나님나라로 갈 것이다. 나 먹고사는 일에만 인생을 쏟아 붓는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굳이 선교사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 먹고사는 일에 인생을 쏟아 붓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은혜 받은 자라면 무장하고 선봉에 서야 한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먼저 땅을 받은 자, 특권을 가진 자들의 위치를 보라. 형제보다 앞서 건너갔다. 전투의 선봉대에 섰다. 가장 위험한 곳에 섰다. 이것은 명령이다. 이것을 감당하지 않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무서운 얘기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얘기이다. ‘그것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어 마땅합니다, 우리가 차라리 죽겠습니다’ 하고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엄청난 하나님의 복의 결과이다. 무수히 많은 이들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가 복음을 들었다. 복음은 거저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먼저 은혜를 주시고, 은혜를 먼저 받은 자들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기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변치 않는 방법이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함께 하는 전쟁이었다. 11만 명 중에서 4만 명이 전방에 나가 싸웠고, 7만 명이 후방에서 지원했다. 헌신된 몇몇이 치른 전쟁이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싸운 전쟁이다. 가는 선교사가 되든지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함께 싸워야 하는 것이다.

   
 
  ▲ 지난해 9월 8일 열린 고 배형규 목사 장례예배에서 청년들이 특송하고 있다.  
 
1956년 짐 엘리엇을 비롯해 미국 다섯 젊은이들이 남미 에콰도르에 갔다. 살인부족 아우카 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모두 창에 찔려 죽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주머니에 권총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었으나 총을 뽑지 않고 그대로 죽은 것이다. <라이프>와 <타임>은 이 사실을 두고 비난했다. “이것이 무슨 낭비인가. 왜 이런 개죽음을 당하는가.” 그러나 20대 초반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낭비라니요. 나의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사람입니다. 이제야 그 꿈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는 낭비라고 하지 마세요.”

짐이 휘튼대학에 다닐 때 기숙사 시절에 적은 글이 있다. 대학교 3학년생의 글이다. “하나님, 마른 막대기 같은 제 삶에 불을 붙이사 주님을 위해 온전히 소멸하게 하소서. 나의 하나님, 제 삶은 주의 것이오니 다 태워주소서. 저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주 예수님처럼 꽉 찬 삶을 원합니다.” 그는 29살에 죽었다. 일기장 한 곳에 이렇게 써 놓았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그는 이미 19살 때 알고 있었다. 우리의 영원한 삶을 향한 갈망이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죽은 선교사들의 아내들은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나중에 아우카 족을 찾아 나섰다. 빌리 그레이엄 집회에서 아우카 인디언의 추장은 이렇게 간증했다. “그들의 희생으로 인해 우리는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그분들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그곳에 생명의 복음을 원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있다. 복음이 필요한 곳에 가야 한다. 가지 못한다면 보내야 한다. 언제까지 내 인생을 먹고사는 일에만 쏟아 부을 것인가.

   
 
  ▲ 고 배형규 목사의 운구가 샘물교회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다.  
 
* 고 배형규 목사 설교 동영상과 MP3 파일이 있습니다. 일반에게 공개하지는 않지만, 원하는 분들은 저희에게 신청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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