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와 경륜의 관점으로 보는 하나님나라
생태와 경륜의 관점으로 보는 하나님나라
  • 김종희
  • 승인 2008.02.20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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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해방된 교회] 02 하나님의 경륜

   
 
  ▲ <참으로 해방된 교회>.  
 
요즘 들어 생태 또는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인데, 동기는 불순해 보인다. 내가 불편하니까 아우성이다. 전기, 난방, 자동차 가스를 쓰는 데 드는 돈이 많아지니까 싫다. 산성비 때문에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는 것 같고, 겨울에 내리는 눈도 하얗지가 않고 회색인데다가, 불순물이 낀 것 같아서 입에 들어갈까 꺼려진다. 지구 온난화를 염려한다. 왜? 겨울에 안 춥고, 여름에 더 더워지니까. 농사지으며 사는 농촌은 말할 것도 없지만, 도시에 살수록 아우성은 심하다. 더우니까 에어컨을 더 세게 튼다. 나는 시원해지지만 지구는 더 뜨거워진다. 자동차의 경우는 정말 심각하다.

이런 불순한 동기로는 생태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고, 아울러 근본적인 해결책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어떻게 봐야 할까. 생태 문제는 영적인 문제다. 영적인 눈으로 생태를 보는 것, 생태적 모형으로 성경을 보고 하나님나라를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기술 중심의 물질주의 세계에서 하나님나라가 아름답게 펼쳐진 예가 있는가. 경제적인 풍요로움? 그 안에서 가난의 골이 더 깊어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방적인 풍요로움이다. 그리고 그러한 풍요로움 속에서 자아가 온전히 실현되고 있는가. 아직도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고 감사하고 즐기고 있단 말인가. 경제 역시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새롭게 보아야 한다.

우리가 망가뜨린 환경이 우리를 죽인다

생태계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역시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본질적으로 상호의존적이다. 인간이 물과 대기를 오염시키고, 오염된 물과 공기는 다시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돌려준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화학비료를 쓰지만, 그럴수록 농경지는 황패해지고 쓸 만한 농지는 갈수록 줄어든다. 사막의 면적이 넓어지고 도시가 점점 커진다. 그러면서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치명적이 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일그러진 생태계와 그 안에서 신음하는 작은 인간들의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하나님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황금 호수에서 황금 배를 타고 황금 낚싯대로 황금 고기를 낚아서 황금 화덕에 구워 먹는 곳이 하나님나라일까.

왜 이렇게 되었나. 자아중심적인 인간의 역사가 생태계를 망쳐놓았고, 인간 자신에게도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들을 처참하게 죽이고 그 땅을 빼앗는 것을 성경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구절처럼 받들어 모셨던 용감 무식한 이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은 아닐까. 타락한 인간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와 중앙아시아의 엄청난 하나님의 정원을 오늘도 열심히 박살내고 있다.

생태계를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안으로 인간은 기술을 내놓았다. 기술에는 잘만 활용하면 장점이 되는 요소가 많다. 그러나 기술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고차원적이고 자본 집약적인 기술은 역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도구가 된다. 가난한 나라는 엄두도 못 낸다. 기술 때문에 가난한 나라는 부유한 나라에 더 깊이 종속하게 되고, 자존감 같은 가치는 철저하게 무시된다. 강대국은 ‘전쟁 아니면 경제’를 무기 삼아 가난한 나라를 짓밟고 있다. 게다가 기술은 한정된 에너지 안에서 그것을 ‘조정’하는 것이지,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부채 일부를 갚기 위해 자식에게 줄 유산에 손을 대는 행위에 불과하다.

이제는 모든 것을 생태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다. 기술도 생태적 관점의 지배 아래서 보조자로서의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 특히 하나님나라의 모형으로서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신 세상을 더욱 그러한 눈으로 보아야 한다.

교회가 생태적으로 생각한다고 했을 때 세 가지 태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교회가 주목해야 할 문제로 보기는 하지만, 여전히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태도다. 맘 내키면 하고 안 내켜도 양심에 별 괴로움이 없다. 둘째, 생태에 대한 관점이 지배적이 되어서 성경의 ‘모든 것’을 생태라는 관점으로 보도록 강요하고 억지춘향 격으로 해석하게 만들어서, 교회가 그 가치와 어우러지기보다 오히려 지배당할 수 있다. 셋째, 생태를 하나의 모형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교회가 성경의 계시로 통제하고 점검하고 명확히 하는 것이다. 성경이 교회와 세상을 얼마나 생태적으로 조망하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생태학과 성경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1. 이 세상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2. 자연 세계를 상호 연결된 전체로 본다.
3. 토지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다.
4.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게 해준다.
5. 자연 질서는 쇠퇴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6.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시 생태계의 문제의 본질은 영적이다. 성경의 관점,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생태의 문제를 보아야 한다.

우리의 경제관, '샬롬의 완성'에 초점 맞춰야 

경제는 단지 돈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는 본래 사람과 사람의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을 다 고려하는 것이다. 가치를 다루고 관계를 다룬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제관은 너무나 편협해졌다. 경제가 최상의 가치가 되었고, 나머지 모든 것이 하위 가치가 되었다. 하나님나라의 품위가 실종되고, 천박하고 값싼 저급 가치가 경제적인 매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추앙되고 있다.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경제에 대한 이해도 회복되어야 한다.

경륜과 경제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 경륜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자신의 창조계에 정의와 조화와 건강, 즉 완전한 ‘샬롬’을 실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나님은 하늘의 경제학자이고, 기획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시고, 우리는 심부름꾼이다.

우리가 청지기라고 했을 때, 그것은 십일조를 잘 내거나 주일을 성수하거나 하는 정도로 좁은 개념의 청지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이 땅에서 성취될 수 있도록 심부름하고 종노릇하는 것이다. 훨씬 넓고 큰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이런 점에서 청지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경제학적인 질문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들은 아래와 같다.
1.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다.
2. 인간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나 타락했다.
3. 교조적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다 거부한다.
4. 인간 제도의 유한성과 취약성을 인정하고,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고민한다.
5. 인간 공동체의 특성에 집중한다.
6. 대규모 자본과 에너지 집약적인 기술과 경제 운용보다는 중소규모의 조직과 기술에 초점을 맞춘다.
7.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 선교사 출신으로 신학교에서 선교신학을 가르쳤던 하워드 스나이더 박사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그리스도의 공동체>, <참으로 해방된 교회>, <교회 DNA> 등 교회 갱신과 관련된 책을 많이 냈다.  
 
* 이 글은 하워드 스나이더 박사가 쓴 <참으로 해방된 교회>(출판 IVP·원작 Liberating the Church)의 내용을 토대로 하고 기자의 의견을 결합해서 작성한 것입니다. 글은 책의 순서에 따라 16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1부 교회와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모형
00 오늘날의 교회 해방과 갱신
01 정의, 해방 그리고 하나님나라
02 하나님의 경륜
03 교회의 생태

2부 교회 해방의 모형
04 성례로서의 교회
05 공동체로서의 교회
06 종으로서의 교회
07 증인으로서의 교회

3부 하나님나라를 위한 교회
08 모든 신자는 사역자다
09 신학을 해방시키라
10 언약의 책
11 하나님나라의 생활방식

4부 성령의 자유 안에 거하는 교회
12 평신도, 사역자로 해방되다
13 여성, 지도자로 해방되다
14 가난한 자, 자주적인 인간으로 해방되다
15 목회자, 제자 훈련가로 해방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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