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 김종희
  • 승인 2008.03.10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멕시코 치아파스 선교지를 다녀오다 ②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배우고 있어요”
Leisly(레이슬리·고2)

   
 
  ▲ 레이슬리의 꿈은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제가 다니는 우리 동네 교회를 2년 전에 이분들이 찾아왔어요. 여기서 차로 네 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이었어요. 이분들은 그때 익투스학교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는데, ‘정직, 섬김, 사랑’이라는 학교의 비전이 제 맘에 들었어요. 그때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를 옮기는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어요.

이곳에서 지내보니까 기대했던 것과 다르지 않아요. 학생들을 이렇게 대우해주는 곳은 없을 거예요. 전에는 적당히 거짓말하고 맘대로 결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했어요. 그게 싫기도 했지만 편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을 대할 때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되고, 공부할 때 성실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게 가장 좋아요.

그리고 여러 곳에서 온 아이들이랑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면서, 우정이 무엇인지 배우는 거 같아요. 서로 도와주는 법도 배우고요. 물론 아직도 가끔 남의 물건에 손을 대거나 서로 싸우는 아이들을 보게 돼요. 안타까워요. 과거의 습관은 버려야 하는데, 아직 완전하지는 못한 것 같아요. 저는 힘들거나 갈등이 있거나 할 때는 기도를 해요.

이분들과 같은 선교사가 되고 싶어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들려주고 싶어요. 이분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니에요. 여섯 살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어려서부터 그런 꿈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이분들을 보면서 더 많이 깨닫게 돼요. 그리고 지금 하는 공부가 큰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아버지 목회를 돕고 싶어요”
Sabdy(싸브띠·고2)

   
 
  ▲ 싸브띠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아버지의 목회를 돕고 싶어 한다.  
 

여기서 차로 12시간 걸리는 메리다라는 시골에 살았어요. 거기서 이분들을 만났어요. 레이슬리의 경우처럼, 전에 다니던 학교는 공부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분위기였어요. 선생님도 내버려두었어요. 근데 여기 오니까 다그치잖아요.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메리다는 굉장히 지저분하고 더운 곳이에요. 근데 여기는 경치도 좋고 시원하잖아요. 모든 것이 감사해요.

아버지는 목사님이에요. 2년 전부터 어머니랑 함께 교회를 개척했어요. 고생을 많이 하세요. 저는 나중에 비즈니스를 잘 하고 싶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일을 돕고 싶어요. 그리고 선교하는 데도 돕고 싶어요.”

 

“한국 가보고 싶어요”
Fandely(판델리·고1)

   
 
  ▲ 한국인인 증조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까. 판델리는 대학에서 관광학을 공부하고 싶고, 한국어도 배워서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  
 

“저도 메리다에서 왔어요. 증조할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얘기를 할머니한테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한국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어요. 한국말은 잘 몰라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빨리빨리’, 이 정도는 알아요. 하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한국을 한번 가보고 싶어요.

대학을 가면 관광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영어·한국어·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어요. 그래서 여러 나라를 가보고 싶어요.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이 무서웠어요. 우리랑 문화나 정서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는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걱정했어요. 근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들이나 선교사님들이 다 친절해요. 공부도 열심히 시켜주셔서 감사하고요.”

속성(速成)인가 숙성(熟成)인가

판델리가 ‘빨리빨리’라는 말을 하자 다른 아이들이 맞장구를 치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그래서 다들 아느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서 배웠냐고 했더니, 익투스학교에서 배웠다고 한다. 역시 이곳에서도 한국식 속도 문화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긴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진 교육 환경, 비즈니스 환경을 보면 역시 한국인이라는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특히 교육은 ‘빨리 빨리’로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 2년, 고등학교 2년으로 속성(速成)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숙성(熟成)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메리다는 유카탄 주의 주도(主都)이다. 유카탄 주는 1905년 1000여 명의 한인들의 노동 계약을 맺고 이민 와서 애니깽 농장에서 혹사를 당했던,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다. 지금도 메리다에는 한인 후예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으며, 판델리도 그중 한 명이었다. 증조할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것 외에 한국과 무관하게 10여 년을 살아온 그의 삶에 한국인이 이토록 결정적인 영향을 줄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지금도 치아파스에는 판델리와 같은 이들이 많다.

주일 오후, 학교에서 1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사라고사라는 마을을 방문했다. 이 마을에 있는 교회의 목사 아들인 뻬뻬와 함께 그의 집을 가보았다. 교회와 집은 붙어 있었다.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앙상하게, 나무판자로 사방을 적당히 가린 공간이 전부였다. 오늘은 마침 뻬뻬의 아버지 브리실리아노 목사가 정식으로 안수를 받은 날이었다. 2400명가량 되는 마을 주민들 중에 40명이 이 교회에 출석한다고 했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가톨릭교회에는 20명밖에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 뻬뻬는 열한 명의 형제 중 여섯 번째. 온 가족이 교회 앞에 모였다. 오른쪽 옆에 보이는 것이 뻬뻬네 집이다.  
 

성경학교 3개월 만에 목사 안수

이곳에서 현실을 보았다. 일주일에 하루, 그것도 2시간 공부하는 성경학교를 1년간 다니면 누구나 목사가 된다. 브리실리아노 목사는 성경학교를 다닌 지 3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안수를 받았다. 교회를 개척한 지 4년이 되었기 때문에 앞당겨 안수를 준 것일까. 그렇게 공부해서 어떻게 설교를 하느냐고 물어달라고 통역하는 분에게 요청했지만, 그건 차마 못 물어보겠단다.

브리실리아노 목사는 열두 살 때부터 20년 동안 가톨릭을 믿다가 꼬미딴에서 개신교 목사의 설교를 듣고 개종했다. 당시에는 그것 때문에 고통을 겪었지만 지금은 괜찮단다. 하지만 2년 전에 예배당 공간을 넓힐 때 마을 사람 몇 명이 총을 들고 와서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긴장은 여전하다.

뻬뻬는 열한 명의 자녀 중 여섯 째 아이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이고, 이 마을의 15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타지에서 공부하는 아이란다. 아이들은 대부분 성경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예레미야도 있고, 예수도 있고, 마리아도 있었다. 성경의 유명 인물들이 한 집안에 모여 사는 느낌이었다.

뻬뻬는 비즈니스를 해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비즈니스를 하고 싶으냐고 했더니 운수업이란다. 돈을 버는 것이 꿈이라고 하지만, 꿈을 구체화하기에는 이들이 지금까지 보고 배운 것이 너무 적고 작아 보였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경험하면 그의 꿈이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으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