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설교합시다
천천히 설교합시다
  • 정용섭
  • 승인 2008.03.28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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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른 목사의 설교집을 제법 많이 읽었습니다. 인터넷이나 기독교 방송을 통해서 여러 분의 설교도 직접 들었습니다. 옛날부터 느낀 바이지만, 설교자들이 청중을 너무 어린애 다루듯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아이의 특성은, 독립적으로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결정해주면 그저 따르는 것으로 만족해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판단 능력이 없을 때도 있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정서적으로 의존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합니다. 어린이들이 담임선생님 말씀을 무조건 순종하듯이 신자들은 목사의 설교를 그렇게 순종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목사들은 신자들을 그렇게 어린애로 만들어놓아야 설교하기가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 신자들의 유아성은 너무 심각한 상태입니다. 심지어 대학교 선생이나 의사·변호사 등 나름대로 사회 지도층 인사인데도 불구하고 신앙 부분에서는 어린애와 똑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목사들은 속으로 즐겁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 한국 교회의 토대가 위태로워지는 길입니다. 약간 다른 상황이지만 니체는 이런 유럽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가리켜 '가축떼' 윤리라고 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사육되는 가축 말입니다.

나는 니체의 비판이 그렇게 빗나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신자들은 '가축떼'로 사육되고 있습니다. '순종하라'는 말씀을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애가 어머니의 젖을 먹고 만족하듯이 종교적 만족감에 젖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본 회퍼가 말하는 '값싼 은혜'이기도 합니다. 값싼 은혜에 만족하고 아무런 영적 에너지를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요? 그 문제를 지금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목사의 설교가 너무 조급증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만 합니다. 설교자들이 너무 설치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겨우 성서 내용을 정보로만 알고 있으면서 대단한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열을 올립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격언이 딱 어울립니다.

저는 그런 목사들의 설교를 듣고 나면 너무 허무해집니다. 자신이 아는 것만큼만 정직하게 설교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이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그 설교를 완성시키십니다. 그 비밀을 모르는 설교자들은 자신이 당장 청중의 신앙적 결단을 끌어내기 위해서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쏟아놓습니다. 본인이나 청중이나 허탈해집니다. 그런 허탈을 모면하기 위해서 자극적인 예화를 끌어들이거나 신앙을 과장합니다.

우리 설교자들, 조급하게 설교하지 맙시다. 구원은 우리의 말재주가 아니라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하십니다. 우리의 영역이 줄어들어야 영의 영역이 늘어납니다.

천천히 목회하고 천천히 설교합시다. 우리의 주제를 잘 파악하고 그분에게 많은 부분을 맡깁시다. 그래도 교회는 잘 굴러갈 테니까, 그래도 신자들의 신앙은 줄어들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맙시다.

정용섭 / 샘터교회 목사·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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