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 신호와 목사의 안식년
정지 신호와 목사의 안식년
  • 김종희
  • 승인 2008.04.0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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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신호 앞에서 정지하기 힘들다

미국에서 운전면허 실기 시험은 이곳에서 생활한 지 6개월가량 지난 다음에 치는 것이 좋다고들 얘기한다. 한국 교통 환경과 미국의 그것이 제법 달라서, 교통 신호 표지판 같은 것이 눈에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데 6개월 정도 걸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한국에서 본 기억이 없는(있었는데 혹시 그냥 무시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STOP Sign(정지 신호)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아직도 부적응 상태다. 재수 없으면 시간뿐만 아니라 돈도 쏠쏠하게 깨진다.

미국 사람들의 경우 옆에 경찰이 있든 없든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기 일쑤다. 그런데 전후좌우에 차 한 대 안 보이는데도 정지 신호 앞에서는 일단 멈춘다. 정지 신호 앞에서 3초 정도 섰다가 출발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하는데, 3초까지는 아닐지라도 일단 멈추기는 한다. 나도 실기 시험을 칠 때에는 이걸 명심했는데, 일단 운전면허증을 지갑 안에 모셔 넣은 순간부터 망각해버렸다.

그러다가 얼마 전 동네 골목에서 정지 신호 위반으로 경찰에게 티켓을 받았다. 뭐라 변명할 여지도, 실력도 없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까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국에서 한국인들이 주로 정지 신호에서 많이 걸린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일단 억지로 핑계를 대려고 하면 그럴 듯한 것이 있긴 하다. 정지 신호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첫 번째 핑계다. 나만의 핑계를 대자면, 내 차의 변속기가 자동이 아니고 수동이기 때문에 일단 차를 세우면 기어를 1단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이게 은근히 귀찮은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아무래도 ‘대충대충’, ‘빨리 빨리’ 문화의 영향일 것이다. 줄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문화에 적응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가 소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차를 완전히 세우지 않고 속도를 적당히 늦춰서 정지 시늉만 냈다가 이내 가속 페달을 밟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까 경찰차가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정지 시늉만 하다가 영락없이 걸린 것이다.

근데 그 결과가 무시무시하다. 엄청난 벌금과 벌점의 공포에 질리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정지 신호를 잘 지키는 까닭을 벌금과 벌점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이 선진국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준법정신이 투철하다고 하는 것은 ‘나는 누가 뭐라고 욕해도 무조건 미국을 사랑해’ 하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안식년을 누리는 목사들의 여러 모습

정지 신호 위반 티켓을 받고서는 공연히 목사의 안식년에 대한 생각과 연결해보는 심술을 부린다. 정지 신호는 보행자와 차의 안전을 위해서 강제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목사의 안식년은 강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자발적이라는 차이점과 목사와 교회의 안전을 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목사의 안식년에 대해서 원칙적으로는 찬성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반대한다. 안식년이 목사와 교회에 주는 커다란 장점을 자기 나름대로 설명한다. 그 내용이 대부분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더불어 누릴 수 없는 것이라면, 할 수 있어도 안 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안식년 또는 안식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교인이 몇 퍼센트나 될까. 아마 1%를 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1%가 넘는다면 상당한 고소득의 전문인, 교수 등이 제법 있는 교회일 것이다. 1%도 제대로 못 누리는 혜택을 목사가 누리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 혜택이 아무리 교회에 유익을 준다 해도 말이다.

가장 좋은 것은 목사뿐 아니라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안식년의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목사가 애를 쓰는 것이다. 일반인이 세금을 내는 것이나 목사가 세금을 내는 것이 마찬가지인 것처럼, 목사가 안식년을 갖는 것이나 일반인이 안식년을 갖는 것이 마찬가지인 세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사가 할 일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은 그런 세상이 되도록 애를 쓰면서 안식년을 누리든지, 아니면 아예 그런 세상이 될 때까지는 목사가 자제하는 것이 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에서도 밝혔듯이 목사의 안식년에 대해서 원칙적으로는 찬성한다. 그것이 자신과 교회에 유익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식년 혜택을 받는 목사를 무조건 매도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기왕지사 하는 안식년이니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쪽으로 할 수는 없을까 고민할 필요는 있겠다. 최근에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안식년 또는 안식월을 가지고 있는 목사들의 모습을 보았다. 모양이 다 다르다.

ㄱ 목사는 1년 동안 미국의 작은 도시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교회론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한국에서 목회하면서 갈등하고 고민했던 것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싶었다. 학위 과정은 아니었다. 그 목사는 평소에도 학위라는 껍데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미국 교회의 여러 목회 현장들을 둘러보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돌아갔다.

미국에서 목회하는 ㄴ 목사는 몇 개월 동안 안식하고 있다. 말 그대로 ‘푹 쉬고’ 있다. 주로 집에서 밀린 일들을 한다. 오전에는 아이들 학교 다니는 것 챙겨주고, 오후에는 보고 싶었던 책과 드라마를 보고, 저녁에는 설거지와 청소를 한다. 아내 대신 주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주일에는 아내와 함께 여러 교회들을 방문해서 우리 교회와 다른 모습들을 느껴본다.

ㄷ 목사는 한국에서처럼 미국에서도 바쁘다. 워낙 유명세가 있는 터라 미국에서도 가만 놔두지 않는 것이겠다. 하지만 정도가 심해, 안식이 필요해서 왔는지 부업이 필요해서 왔는지 잘 모르겠다. 한 번 설교하는데 한국의 작은 교회 목사 한 달 봉급보다 많이 받는다. 그렇다고 설교 내용이 별다른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듣고 또 듣던 내용이다. 거기에 살짝 추가되는 것이 있다면 미국 생활에서 겪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엑스트라 치즈처럼 예화로 쓴다는 것이다.

나와 교회 위해 제대로 쉬자 

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정지 신호 앞에 서 있는 운전자의 갖가지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어떤 운전자는 정지 신호 앞에서 완전히 서서 전후좌우를 살피면서 운전 자세를 가다듬는다. 어떤 운전자는 나처럼 정지하는 시늉으로 눈속임만 하고는 이내 ‘쌩’ 하고 달린다. 앞의 운전자가 안전운전을 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 하지만 뒤의 운전자는 자신도 위험하고 보행자도 위험에 처하게 할 소지가 다분하다.

목사도 이왕 안식년을 가졌으면 그냥 푹 쉬든지, 공부를 열심히 하든지, 선교지에 가서 땀을 뻘뻘 흘리든지 하면서 제대로 안식했으면 좋겠다. 1년 동안 안식한 뒤 목회지로 돌아가서도 넓이와 깊이가 여전한 수준으로 설교한다면, 그건 교인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연구년이랍시고 연구비 타서 해외 나가서는 골프 실력만 잔뜩 높여서 돌아오는 교수들 짓거리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정지 신호 위반 티켓 끊고 약 올라서 애먼 목사들한테 공연한 심술 한 번 부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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