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가 바로 선겨?
'선교'가 바로 선겨?
  • 김동문
  • 승인 2008.04.12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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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선교 집회도 늘고, 선교 헌신자도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다양한 명분과 이름으로 이른바 선교 현장을 찾는 단기팀의 인원도, 방문 지역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선교의 사각지대였던 아랍 이슬람권의 경우도 4~5배는 족히 늘어난 것 같습니다.

선교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

재작년(2006년) 12월 초순에 미국 동부의 디트로이트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의 한 교회에서 이슬람 선교 세미나와 주일예배 메시지로 섬길 수 있었습니다. 내가 디트로이트에 도착하기 전 정해진 일정대로라면 다른 교회에서 주일 오후 예배에 말씀을 전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차량 지원을 받아 그 교회로 향했습니다. 찬양을 뜨겁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 안내를 맡은 분도 외부 강사(설교자)가 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엉거주춤 앞자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순서가 되면 불러주겠지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담임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멋쩍은 분위기로 예배를 마쳤습니다.

예배 후에 담임 목사님 사무실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던졌습니다. “혹시 저 초대하셨던 것 아닌가요?” 그러자 담임 목사님의 짧은 어색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초청에 대한 제안을 다른 선배 목사님이 하시긴 했는데 확정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셨군요! 이것 참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시면서 이내 선교 담당 집사님을 통해 100달러짜리 수표 한 장을 끊어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때 저의 기분은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내가 왜 이 수표를 받아야 하는가? 선교사의 모습이 이렇게 비춰지는 것인가?…" 사실 자비량으로 교회를 방문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이상스러울 것이 없는데, 말씀도 전하지 않았는데 이런 수표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왠지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선교사는 직분인가 직책인가?

"선교사가 선교지에 있는 것만으로도 선교입니다"는 전통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선교사는 신분인 것 같습니다. 마치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그런 신분.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든 안 하고 있든 인정되는 그런 신분 말입니다. 그렇지만 여러 면에서 선교사는 직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직책에 누구든 부름 받은 이가 임명될 수 있습니다.

목사나 장로, 집사나 교사 아니면 평신도도 선교사라는 직책에 임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한번 선교사는 영원한 선교사일 수 없다고 봅니다. 선교사라는 임시직 수행을 마치고 나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선교사 복무 연수에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요. 평생을 선교사 역할을 수행하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 번 선교사는 영원한 선교사"가 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선교사는 현역에 있을 때 선교사일 뿐 예비역 선교사는 선교사가 아닌 다른 직책으로 불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현직을 이미 오래 전에 떠나셨는데도, 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으신 상황에도 그렇게 불리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 선교사 수의 계속적인 증가에, 이런 식의 명예 선교사, 예비역 선교사의 수도 작지만 한몫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선교사 가운데 직위나 직급이 있을 수 있나요? 그것은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선교 현장에는 목사 선교사와 목사 아닌 선교사 사이에 어떤 차별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구별이 아닌 차별'은 조심스러운 대목입니다.

언젠가 후원하는 한 교회의 목장 모임에 참여하여 교제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 참석했던 한 분께서 "언제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받으셨나요?"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선교사로 부름 받는 과정에 어떤 특별한 계기가 없었습니다. 그냥 선교가 거부감이 없었고, 어느 날 남들이 저를 보고 선교사로 부르는 처지가 되었지요. 그랬더니 그 분의 얼굴 표정이 굳어지더군요. 물론 특별한 계기로 선교사로 부름을 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선교적 삶'과 '선교사의 삶'

모든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선교적' 삶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 선교적 삶으로부터 제외된 믿음의 사람들은 없습니다. 당사자가 그 역할을 수행하든 수행하지 않든 선교적 삶은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 현재 주어진 자리에 사는 것입니다. 선교적 삶을 수행하는 자리 중 하나가 선교사의 삶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의 삶만이 선교적 삶의 모든 것일 수는 없습니다. 선교사로서의 헌신이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가장 고귀한 헌신은 아닙니다.

"선교사로 불리는 것도 포기할 수 있나요? 교회를 방문해도 누구하나 주목해주지 않고, 선교사로 대접해주지도 않고 그래도 선교적 삶을 살 수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선교사의 삶보다 선교적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것에 비한다면, 선교사는 선교사라는 이름도 있고, 나름 교회나 믿음의 공동체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하나님과 자신만의 놀라운 비밀을 간직하며 자족하며 살아가는 이들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유학생 선교 동원 사역을 하는 선배 사역자들이 주변에 계십니다. 그런 모임에 가면 의례 선교 헌신 관련 세미나나 메시지가 주어집니다. 그런 자리를 부담스럽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물론 있지요. "혹시 나를 선교사로 부르시면 어떡하지!"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이들은 다 선교사의 삶으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닐까요? 선교사의 삶의 한 부분이 선교사라는 직책을 가지고 사는 이들이 있는 것일 뿐이고요. 선교적 삶이 선교사의 삶보다 더 큰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청년 대학생들 모임에 초대를 받아 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면 '선교'에 관한 메시지를 거의 전하지 않습니다. 선교사인 강사에게 기대하는 것이 선교 관련 메시지이겠지만 오히려 다른 주제를 다루는 것이 나에게는 더 익숙합니다. 선교를 특정한 활동을 하는 어떤 특별한 움직임으로 생각도 하지만 그런 종류의 활동이 선교가 아닐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지금 주어진 자리가 바로 내게 선교적 삶을 살도록 이끄는 자리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졸업 이후 어느 곳에 가서 선교사로 헌신하겠다는 고백도 소중하지만, 지금 있는 곳에서 주변의 타문화권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현재 지금 이 자리에서 하여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을 합니다. 아무나 교포로 유학생으로 상사 파견 요원으로 부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교 활동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던 IMF 거센 바람도 선교 활동을 위축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교 활동이 곧 선교적 삶의 표현은 아닙니다. 선교적 삶이 아니어도 선교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 활동의 한 부분으로서 진행하는 대외 활동으로 선교 활동이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에 얽힌 이 글은 제언이 아닙니다. 나는 아직도 선교를 알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현장 사역자일 뿐입니다. 선교 현장 안팎에서 느끼는 나의 짧은 생각들의 모음이고, 나눔입니다. 이 공간이 일방적 생각의 주입이나 전달이 통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선교를 생각하는 나와 여러분들의 나눔과 소통의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김동문 / 요르단 암만, <복음과상황> 해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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