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없다고 사랑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볼 수 없다고 사랑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 박지호
  • 승인 2008.04.23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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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스 부부의 조건 없는 사랑 이야기

“세 살 때 어머니와 시장에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남들에겐 평범한 장면이지만, 저에겐 평범한 하루가 아니었습니다. 한참을 시장을 돌아다니다 어머니를 찾아 헤맸지만, 어머니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생모와 떨어진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각 장애인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엘렌 자매 간증 집회 중에서)

   
 
  ▲ 엘렌 니콜스.  
 
시각 장애인 가족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로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는 엘렌 니콜스 씨는 지난 4월 20일 뉴욕한인중앙교회 주일예배와 뉴욕장로교회 청년부 예배에서 30여 년 전에 생모와 헤어진 기억을 더듬으며 간증을 시작했다.

30여 년 전 미국인 시각 장애인 부부가 한국인 시각 장애인 아이 4명을 입양했다.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살고 있는 올로 니콜스 씨(65)와 메리 니콜스 씨(66) 부부다. 이들은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한국인 아이 4명을 입양해 길렀다. 엘렌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발 앞에 떨어진 물건도 한참을 더듬어야 겨우 잡을 수 있는 것이 이들 시각 장애인들의 평범한 일상이지만, 사랑하는 데는 앞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장애가 되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니콜스 부부는 볼 수는 없지만 눈이 아닌 귀로 지켜보고 손으로 어루만지며 버려진 한국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폈다.

니콜스 부부가 4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1967년에 결혼한 니콜스 부부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자녀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시각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양 단체로부터 번번이 거절당했다. 니콜스 부부는 그렇게 6년 동안을 입양 기관을 전전했다.

“얼마나 아이를 갖고 싶었는지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모든 곳을 다 돌아다녔어요. 고아원도 찾아가고 사람들한테 부탁하고 편지도 썼죠. 시내도 돌아다녔고요. 필라델피아에 있는 입양 기관을 찾아 갔을 때는 어떻게 맹인이 아이를 키울 수 있냐고 화까지 내더군요.” (2001년 방송된 KBS <일요스페셜> 중에서)

우여곡절 끝에 한국 아이 입양을 전문적으로 주선해주는 홀트를 통해 입양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니콜스 부부는 1976년 12월에 킴이라는 두 살 난 아들을 입양하고, 1978년 10월에는 제대로 돌보지 않아 겨우 갓 태어난 신생아 정도인 11개월 된 마크를 입양했다. 그리고 1983년 12월에 엘렌을, 1984년 3월에 세라를 세 달 간격으로 입양했다.

한국에서 입양된 4남매는 공교롭게도 시각 장애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장애의 정도는 각기 달랐다. 한 살 때 입양된 세라는 시각 장애에 정신지체 및 중증 자폐증까지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세라는 종종 감정이 폭발한다. 밥을 먹다가 밥그릇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니콜스 부부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기 일쑤다.

세라가 집어던진 숟가락과 음식을 주워 담으려면 니콜스 부부는 땅에 엎드려 한참 바닥을 더듬어야 했다. 니콜스 씨 가족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았던 KBS 취재팀 중 한 명은 “막내딸 세라에게 밥을 챙겨주고는 그 옆에 서서 딸아이의 먹는 소리를 귀로 들으며 얼마나 먹었는지를 알아내는 니콜스 씨의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취재진이 니콜스 부부에게 세라를 입양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고, 니콜스 부부는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세라 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에요. 세라도 소외당하지 않고 사랑받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어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에는 조건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식들이 착하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죠. 또 볼 수 없다고 사랑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을 안고 느끼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요." (2001년 방송된 KBS <일요스페셜> 중에서)

   
 
  ▲ 2001년 2월 18일, KBS를 통해 니콜스 가족의 이야기가 방송된 후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여사는 엘렌을 한국에 초청하겠다는 점자 편지를 니컬스 씨에게 보냈고, 엘렌은 그해 4월 17일 청와대를 방문했다.  
 
큰딸 엘렌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어두운 상처를 치유해준 것도 이런 무조건적인 니콜스 부부의 사랑이다. 엘렌의 마음속에는 ‘시각 장애인이기에 생모에게서 마저 버림받았다’는 원망과 분노가 있었다. 낳은 부모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싹텄던 것이다.

엘렌의 이런 응어리는 니콜스 부부의 헌신적인 사랑에 녹아내렸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은 니콜스 부부라는 매개체를 통해 엘렌과 비롯한 3남매에게 전달됐다. 엘렌 씨가 들려준 니콜스 부부에 대한 에피소드 중 하나다.

"학기 중간에 학교를 옮긴 때가 있었는데 점자책을 주문하는 시기를 놓쳐버렸지요. 한 학기 동안 선생님이 수업 내용을 녹음해주시면 아빠가 다시 점자로 일일이 타이핑을 해주셨습니다. 저희 양부모님들은 항상 우리에게 성경을 읽어주셨고, 또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얘기해주셨어요. 그분들은 내 인생에 너무나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분들을 통해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았습니다." (‘한국을 찾아 온 엘렌’ 중에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니콜스 부부가 4남매를 입양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었던 동기였다. 니콜스 부부는 <미주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입양된 자녀들이다. 하나님 앞에선 너나없이 모두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우리는 가족들과 함께 자라는 어린이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원칙을 직접 체험하였습니다. 또한 세라를 통해서 우리가 깊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어떤 심각한 장애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가치 있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란 사실입니다.” (니콜스 부부의 간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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