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길도 대답 못해…
아는 길도 대답 못해…
  • 김은정
  • 승인 2008.04.24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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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쩍쩍 아들이 엄마식 미국 영어 23

길을 가는데 갑자기 미국 사람이 다가와서 길을 묻습니다. 뻔히 아는 길인데, 대답할 수 있는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혀가 꼬입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갑자기 왼쪽, 오른쪽, 쭉 직진해라, 그런 말도 영어로 모르겠고, 급한 김에 손가락으로 애매하게 방향만 가리켜줍니다. 영어가 빨리 안 나오고 맘이 급하니까 우리말로 "아, 저~기로 가면 된다니까 말을 못 알아듣네…. 쩌~기라고요!"

이런 경험 있으시죠? 서울 길거리를 걷다가도 당할 수 있는 일이고, 미국 살다보면 가끔씩 누가 영어로 뭘 물어봐요. 눈치를 보니까 길을 묻는 건데, 내가 아는 길인데, 징그럽게 영어가 안 나옵니다. 제 칼럼의 포인트는 늘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영어가 훨씬 쉽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1, 2 학년 단어 수준으로 다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직진해서 두 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해라. 그리고 바로 우회전하면 찾는 게 보일 것이다" 뭐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하죠. 한국말로도 복잡한 거 같죠? 문장을 잘라서 하나씩 하면 하나도 안 어려워요.

우선 "직진해라"는 말부터 시작해봅시다. 얼마나 쉽냐면요. 그냥 "Go straight"이예요. 이 이상 어떻게 쉽습니까. 다음 문장, "두 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해라"는 "Turn left at the second light" 여기서 모르는 단어 있으세요? 너무 쉽죠.

"첫 번째 STOP 사인에서 우회전해라"는 "Make a right turn (Turn right이라고 말해도 똑같아요) right away at the first stop."

이 말을 다 붙여서 멋지게 길을 가르쳐 주자면, "First, go straight and turn left at the second light. Then, make a right turn right away at the first stop. You’ll see it."

내가 영어 좀 한다던가, 이왕 미국 사람이 나한테 말 붙여온 김에 한마디라도 더 해보자는 분들은 좀 복잡하게 상세하게 이렇게 말해봅시다. 이를테면 '직진해라' 대신에 이렇게 말해야 되는 경우도 있죠. "이 도로가 막다른 길에 이를 때까지, 이 길을 따라 쭉 가라. Go follow this road all the way until it runs out."

'run'이라는 동사가 자꾸 나오죠. '달리다'라는 뜻으로만 알던 이 동사가 지지난주에는 '물이 흐르다'라는 뜻으로 나왔던 거 기억나시죠. 이번에는 '길이 끝나다'라는 정도의 의미로 쓰였네요. 사전 한번 찾아보세요.

'run' 동사 하나만 가지고도 몇 페이지를 장식하는데, 그걸 다 어떻게 외웁니까. 그러니까 영어가 안 되는 거예요. 지레 사람을 질리게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오늘 안 써볼 말에는 고개를 확 돌리시고 '일없다' 하세요. '일없다'는 영어로 뭘까요. "I want nothing to do with you" 그 말은 "나는 너랑은 안 논다. 나는 너 상대 안 한다" 뭐 그런 뜻이에요.

영어 편만 얌체처럼(?) 읽는 사람들은 갑자기 '일없다'라는 말은 왜 가르쳐주나 하겠지만 스토리를 다 읽으시는 분들은 지겨운 사전 얘기를 하다가 튀어나온 문장이라는 것을 아시는 거죠. 재밌죠. 여러분, 재미가 없으면 길게 못 갑니다. 공부라고 그저 지겹고 따분하면 즐기지를 못하고, 못 즐기면 길게 못갑니다.

제가 늘 제 칼럼의 반 이상을 항상 재밌는 얘기로 메우잖아요(아닌가요?). 영어 문장은 따로 기억 못해도 재미난 얘기는 기억하는 게 사람입니다. 우리끼리 웃으며 나누는 얘기들 사이사이 영어를 끼워 넣어 은근슬쩍 말을 배우게 하는 것이죠.

말이 나온 김에 제 자랑을 좀 해야겠군요. 제가 학교에서도 얼마나 재밌게 수업을 하는데요. 제가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도 '너희들, 나를 먼저 좋아해야 영어를 잘 배울 수 있다. 너희들이 나를 안 좋아하면 얼마나 공부 시간이 괴롭고 재미가 없겠니'에요.

그러면 비싼 수업료 낸 니들만 손해니까 첫째 나 EJ Brown부터 좋아해라. 그러면 다들 좋아라 하더라고요. 자, 그러면 여기서 "EJ는 재밌다"를 영어로 해봅시다. "EJ is fun"이 답입니다. 여러분 fun과 funny는 달라요. 조심하세요. Funny는 '웃긴' 것이고 fun은 '재밌는' 것이랍니다.

직진해라. (Go straight)

두 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해라. (Turn left at the second light)

첫 번째 STOP에서 바로 우회전해라. (Make a right turn right away at the first stop)

막다른 길에 이를 때까지 이 길 따라 쭉 가라. (Go follow this road all the way until it runs out)

보면 알 것이다. (You’ll see it)

일없다! (I want nothing to do with you!)

EJ는 재밌다. (EJ is fun)

김은정 / <코넷>

* 이 글은 김은정 씨가 쓴 <굿바이 영어 울렁증>(로그인 출판사)에 실린 글입니다. 저자 김은정 씨는 경희대 영어교육과 졸업하고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에서 TESOL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굿바이 영어 울렁증> 저자이자 전 미주리주립대 ESL 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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