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사람들?
반쪽짜리 사람들?
  • 이영훈
  • 승인 2008.05.01 2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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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은 하루, 비장애인의 날은 364일

   
 
  ▲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4월 16일 경남정보대학 민석체육관에서 열린 장애 체험 행사. 참가한 유치원생들이 시각 및 지체 장애 체험을 하고 있다.  
 
뉴욕 필름 페스티벌 최고상. 일본 방송 대상 등 수상 경력 13회. 조수미 및 영국 템즈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 전 세계를 넘나들며 가진 40회가 넘는 연주. 하지만 손가락은 겨우 네 개인 21세의 피아니스트 이희아(Hee Ah Lee). 세계는 피아노 연주와 더불어 그녀의 손가락에 주목했다. 한 손에 손가락이 두 개씩, 그나마 무릎 아래의 다리마저 없는 선천성 1급 장애아.

네 손가락 피아노 연주를 위해 하루도 손이 까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지만, 그래도 그녀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비장애인에게 맞춰 있는 환경과 매일 싸워야 하는 제2, 제3의 이희아는 오늘도 주목받지 못한 채 비장애인의 눈높이 아래 묻힌다.

미국에는 없는 한국의 '장애인의 날(4월 20일)'은 우리 스스로 장애인들에 대한 무관심을 인정하는 부끄러운 날이다. 장애인에 대한 한국의 그림자와 미국의 복지를 되짚어 보자.

   
 
  ▲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라'는 구호 아래 장애민중행동대회에 참여한 장애인들.  
 
장애인들의 89.4%, 후천성 장애인

"대통령 전상서. 지난 정권인 참여정부가 무슨 수를 써도 잡히지 않고 천정부지로 치솟던 부동산 값을 단번에 잡을 수 있는 묘안이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 몇 년 전, 대전 산성동을 지나다가 우연히 동사무소 위에 어지러이 걸려 있는 현수막 몇 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걸려 있었습니다. '시장은 시각장애인의 준말이 아니다' '시각장애인은 보이고 우리는 안보이냐?' 짐작하셨겠지만 산성동 주민들이 대전시의 시각장애인 복지관 건립을 반대하기 위해 걸어놓은 현수막들입니다.

좋은 일 하자는데 굳이 반대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복지관이 들어서면 집값이 하락하게 되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변(辯)이었습니다. '아침에 소경(시각장애인)을 보면 재수가 없다'는 인식이 여전히 국민에게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소경들로 북적이면 장사가 되겠느냐며 지역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복지관이 이렇듯 주택 값 하락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면 오히려 이걸 적극 활용해보심이 어떠신지 의견을 제안해봅니다. 특별히 주택 가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강남을 비롯해서 분당, 일산 등 신도시 지역에 복지관을 계속 건립해나간다면 부동산 정책과 복지 정책 모두에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LA 사랑의교회에서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는 서재용 전도사는 청와대에 보내는 글을 쓰기 위해 펜을 들었다. 부동산 가격 문제로 고심하는 정부를 위한 그럴듯한 대책의 모양새를 하고는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몇 푼 되지 않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장애인들을 호되게 배척하는 사람들을 꼬집은 글이었다. 그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가 왜 장애인들을 자신의 문제로 이해해야 하는지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국민에게 꼭 알려주십시오.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들의 89.4%가 후천성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언제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예비 장애인임을 알고 미리미리 있을 때 잘하자고 말입니다."

1. 한국의 장애인 문제

장애인 비하 논란 : 지난해 5월 16일, 몇몇 장애인 단체들이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 주자였던 이명박 후보의 대선 캠프 사무실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문제의 발단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의 발언이었다. 이 후보는 5월 1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낙태에 관한 입장을 밝히면서 "기본적으로는 반대인데,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가령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라고 언급, 장애인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었다.

장애인들에 의하면, 그의 발언은 '장애를 가지고 있을 경우 태아를 죽여도 된다면, 이미 태어난 장애인 역시 죽여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며 분노했던 것이다. 다급해진 이명박 후보 측은 즉각 조기 진화에 나섰다. 긴급 보도자료를 통해 "평소 낙태에 반대하는 그의 입장을 피력했을 뿐, 어떠한 장애인 비하 의도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불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의 발언은 '무지와 편견, 차별'을 상징한 예로 남아 득보다는 실이 컸다.

장애인들에 의하면, 자신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비하는 종교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구시 지체장애인협회 송덕준 기획실장은 "아직도 절뚝발이, 불구자, 문둥이, 소경, 앉은뱅이 같은 용어가 일부 종교 단체에서, 그것도 지도자들이 신도들을 상대로 설교할 때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며 종교 단체를 상대로 장애인 비하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는 더 나아가 "성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인권 문제까지 생각하지 못했고, 그 실수가 90년 동안이나 이어져오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탄식했다.

장애인 실상 : 인권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05년도 통계에 의하면 피해자 통계 건수 가운데 무려 53%가 여성 정신지체인이라고 밝혔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장애인들의 삶은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2002년도 한 보고에 따르면 수입 면에서 월 평균 소득이 40만 원 미만인 자들이 46.5%, 30만 원 미만인 자들이 31.7%, 그리고 나머지는 불과 2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하는 실정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무려 장애인들의 29.1%가 학교를 전혀 다니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 Glen Rose에 있는 Fosil rim을 방문, 동물들을 가까이서 경험하는 시간을 가진 달라스 밀알선교단.  
 
2. 미국의 장애인 복지


미국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제도적 정책으로 의료 및 사회 보장, 교육, 직업재활, 그리고 편의 시설 제공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의료 및 사회 보장의 경우 장애인들은 세금으로 충당되는 병원 보험을 통해 장애 급여를 받을 수 있으며, 장애 보험과 근로자 보상 제도를 통해서도 혜택을 받게 된다.

교육에 있어서, 6세에서 21세까지의 장애 아동은 1975년에 제정된 '장애아 교육법'에 의해 무료로 공교육을 받을 수 있다. 조금 더 세분화해서 살펴보자. 2살까지의 아동을 진단하여 발달 지체의 가능성을 확인하면 장애아 조기 교육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고, 3세에서 5세까지의 아동이 장애 징후를 보일 경우 지역에 있는 장애아 교육기관에 의뢰하는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 장애 아동을 위한 미국 교육의 골자는 장애 아동에 대한 '맞춤지도'라고 볼 수 있다.

직업 재활과 편의 시설 측면에서, 미국은 지난 1992년부터 25인 이상의 종업원을 고용한 고용주가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공공 건축물에 장애인이 쉽게 출입할 수 있도록 설계할 것을 1950년에 이미 결의한 바 있으며, 휠체어 장애인이 노선버스나 철도에 쉽게 접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 DFW 지역 사례 : 달라스 밀알선교단

매주 토요일, 어빙의 중앙연합감리교회에서 '발달 장애 아동을 위한 사랑의 교실'을 열고 있는 이재근 목사(밀알선교단 단장). 그는 3년 전 달라스 장애아 부모 모임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어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작년 5월부터 공식적으로 밀알선교단을 시작하게 되었다. 장애 아동들을 위한 단체로는 달라스 내에 거의 유일하다.

'사랑의 교실'은 세 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장애 아동, 장애아 부모, 그리고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주로 자폐증이나 다운증후군, 경계성 장애를 가진 장애 아동들이 '사랑의 교실'을 무척 좋아하지만, 장애아 부모를 위한 상담과 장애 아동의 형제자매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굉장히 유용하다. 부모의 경우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정보를 교환함으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재근 목사에 의하면, 장애아를 형제나 자매로 둔 아이들이 갖는 시련도 무척 크다. 장애아의 부모는 어른이며 자신의 아이이기에 장애아를 지치지 않고 보살필 수 있지만 그 형제자매들은 사정이 다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받는 스트레스, 밖에 함께 외출했을 때의 창피한 감정과 죄책감 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 아동은 큰 변화가 없지만, 이들 형제나 자매의 경우는 조금만 도와줘도 변화를 보인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 내 혜택으로 2~3세 정도의 나이에 장애 판정이 나면 정부로부터 무료로 '조기 개입 치료(Early Intervention Therapy)'를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장애인으로 정부에 등록하게 되면 매달 아이의 상태에 따라 정해진 보조금을 지불받게 되며, 부모가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아동 위탁 시에 정부에 위탁금을 요청하면 시간당 몇 불 정도 지급을 받는다.

이재근 목사는 밀알선교단을 찾아오는 부모와 장애 아동들이 좋아할 때, 기독교를 떠난 사람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때, 교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과 친해져서 서로 간에 감정적인 연결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이 단체도 어려움이 있다. 현재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교사들이 개인적인 이유로 기대치만큼 헌신하지 못하는 경우 흐름이 끊겨서 효율적인 프로그램 운영에 제한을 가져올 때도 있고, 언론이나 교회 등 외부로부터의 무관심도 이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다. 현재 이들을 후원하는 교회는 고작 여덟 곳이 전부이다. 만약 이들을 후원하고 싶다면 1100 Bridgewood Dr. Suite 122, Fort Worth TX 76112로 수표를 보내면 된다 (받는 이 : Wheat Mission in Texas).

   
 
  ▲ 지난해 달라스 밀알선교단 캠프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  
 
4. '그들'의 문제에서 '우리'의 문제로

"직장에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들은 직장 동료들과 회식하던 자리, 급여를 받아 이제 세 돌이 갓 지난 아이의 장난감이나 과자 한 봉지 사들고 집에 들어갈 때, 그리고 당당한 사회인으로 세금(무척 아깝지만)을 낼 때 행복을 느꼈습니다." (어느 해고된 장애인 노동자의 편지 중에서)

장애인만의 문제가 비장애인의 문제가 될 때, 그리고 현 장애인이 겪는 현실이 예비 장애인의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을 안다면, 같은 공간을 다른 눈높이로 사는 사람들이 비로소 '동등함'의 악수를 나눌 것이라 기대해 본다.

이영훈 / <코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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