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단체들의 광우병 '오버'
미주 한인 단체들의 광우병 '오버'
  • 박종률
  • 승인 2008.05.06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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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거론하는 것은 200만 미주 동포들에 대한 모욕'(?)

'일부 반미주의자나 정치적으로 불순한 목적을 가진 세력의 파렴치한 행위'
'협상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정부의 효율적 국정 수행을 방해하는 것'
'광우병을 거론하는 것은 200만 미주 동포들에 대한 모욕이다'
'미국은 먹을 수 없는 음식물을 타국에 수출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 사회의 최대 이슈가 된 이른바 '광우병 파동'과 관련해 미주 한인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 내용이다. 마치 정치 결사체의 성명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극단적 표현들이 포함돼 있는 등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워싱턴한인연합회(회장 김인억), 북버지니아한인회(회장 황원균), 수도권메릴랜드한인회(회장 신근교), 메릴랜드한인회(회장 허인욱)등 워싱턴 DC 인근 4개 한인회와 로스앤젤레스 한인상공회의소 등 캘리포니아 주 한인 단체들은 5월 5일 잇따른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거듭 강조했다.

한인 단체들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광우병 논란이 결국 한인 동포 사회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면서 곤혹스러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인 단체들이 항상 얘기하는 '대한민국에서 미국으로 시집온 사람들'이라는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더라도, 광우병 파동과 관련해 채택한 성명서의 내용은 '너무 많이 나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더구나 한인 단체에 소속된 일부 인사들은 최근 서울 청계광장에서 벌어진 이른바 '촛불 민심'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반미주의로 규정짓는 '위험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미주 한인 단체들이 성명서 발표와 기자회견을 잇따라 개최하고 나선 것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한국 사회 내부의 비판적 흐름에 대한 이성적이고 차분한 대응을 강조하기 위한 차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관련해 한인 단체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한국 내 우려는 과학적 근거가 약한 것으로 보인다'며, '검역 시스템을 강화함으로써 문제점을 해소하는 이성적 태도가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날 뉴욕한인회가 발표한 성명서처럼 '만일 한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광우병 우려가 사실이라면 적어도 미주 동포들 가운데 광우병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어야 한다'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비이성적인 판단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욕한인회(회장 이세목)는 5월 4일 성명서를 통해 '재미 동포들이 먹는 쇠고기나 한국으로 수출되는 쇠고기는 모두 같은 것'이라면서 '만일 한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우려가 사실이라면 적어도 미주 동포들 가운데 광우병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주 동포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한인회는 특히 '미주 동포들은 광우병 쇠고기 섭취에 따른 피해가 아니라 오히려 광우병을 거론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한국 내 일부 세력 때문에 미주 한인들의 인상이 안 좋아지는 범 동포적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근 일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반대 논란은 '한미 FTA의 미 의회 비준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양국 간 경제 활성화와 협력 관계 강화를 위한 자발적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확실한 근거 없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한 한국 내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를 개탄한다'면서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해 제기된 잘못된 사실에 대해 한국 정부는 올바르게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의 연방 하원의원을 세 차례 역임한 김창준 전 의원은 5일 일부 워싱턴 특파원들과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한인 단체들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미주 동포에 대한 모욕이라고 표현하는 것 등은 정말 좋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 미주 한인 단체들은 이명박 정부를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나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이날 워싱턴DC 4개 한인회는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자신이나 자기 집단에 불이익이 있다고 협상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정부의 효율적인 국정 수행을 방해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검역 주권의 포기 운운하는 것은 국가와 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을 대외에 선전하는 것으로, 국가의 발전과 외교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마치 한국 정부의 발표 내용과 착각할 정도의 문구를 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날 워싱턴 DC 인근 4개 한인회의 기자회견장에는 주미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도 모습을 나타내, 미주 한인들의 광우병 관련 움직임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일부이긴 하지만 미주 한인 단체들이 친목 모임이라는 원래의 모임 취지를 벗어나 정치 결사체로 변질되고 있지나 않은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종률 / CBS 워싱턴 특파원 nowhere@cbs.co.kr
* 이 글은 <뉴스앤조이>가 기사 제휴를 맺고 있는 <노컷뉴스>에 실린 것으로, 박종률 특파원이 쓴 2개의 기사(워싱턴 지역 한인 단체들의 기자회견 내용, 뉴욕한인회 성명서 내용)를 종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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