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몇 명이 죽어야 그 입을 다물려나
도대체 몇 명이 죽어야 그 입을 다물려나
  • 김종희
  • 승인 2008.05.15 16:17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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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생명 우습게 여기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궤변

싸가지 없는 말투 때문에 안 먹어도 될 욕까지 먹은 사람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1등이었다. 그는 진중권 교수나 유시민 전 장관과 경합을 벌일 정도로 ‘맞는 말을 참 싸가지 없이 하는’ 타고난 능력을 가진 탓에 국민들의 원성을 많이 들었다. 근데 대통령 자리와 함께 ‘싸가지 없이 말하기’ 1등 자리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넘겨주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싸가지 없이 말하는 스타일에 있어서 노무현 대통령이랑 별로 다르지 않다. 차이가 하나 있다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진실이 별로 담겨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그의 인생의 많은 부분들이 거짓투성이였다는 것이다. 거짓의 화신이 드디어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 무엇이 겁나겠는가.

싸가지 없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탓에 나도 욕깨나 먹는 편이다. 요즘은 가급적 조용히 지내면서 인격을 수양하려고 노력 중인데, 가만히 놔두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눈치 저 눈치 안 보고 그냥 싸가지 없이 몇 줄 쓰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이명박’, ‘한국 교회의 오정현’

‘대한민국의 이명박’ 하면 ‘한국 교회의 오정현’이 확 떠오른다. 난데없이 떠오른 건 아니고, 몇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거목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 별로 걸맞지 않은 권좌에까지 등극한 것도 그렇거니와, 그 위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어찌 그리 똑같을까. 무지와 오만을 바탕에 깔고 함부로 쏟아내는 말들은 맨정신으로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청와대에 ‘고소영’이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고소영’이 아니라 ‘고사영’이 있었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두 명의 대통령을 모셔야 할 뻔했다.

며칠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난데없이 ‘소통’ 얘기를 꺼냈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면 좀 재미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남들에게’ 훈계를 했다. 자신은 젊은 사람들의 사고를 배우기 위해 개그 프로그램을 일부러 유심히 본단다. 그의 언행이 웃기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만 가면 모든 것이 희화되고, 가치 있는 단어도 순식간에 싸구려가 된다.

올해 초 오정현 목사가 대운하라는 재료에 ‘소통’이라는 양념을 쳐서 만든 국적 불명의 퓨전 음식 같은 칼럼을 읽을 때도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잘 모르면 이것저것 마구 섞지 말고 그냥 딱 성경 얘기만 하면 될 일이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결별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소통케 되었다는 이야기랑, 로마가 도로를 놓고 중국이 만리장성을 쌓은 이야기랑, 이집트 나일강과 갈릴리 호수 이야기랑, 되는 말 안 되는 말을 마구 섞는다. 그러고는 대운하가 국력이 결집되고 우리 민족의 문명사적, 정신사적 소통을 이루는 생명의 물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아무 거나 갖다 붙여서 소망하는 거야 개인의 자유지만, 그렇게 뒤죽박죽 섞어서 만든 대운하는 국력의 결집은커녕 국론 분열의 첩경이 될 것이고, 생명의 물길은커녕 죽음의 도랑이 될 것이 뻔하다.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나름대로 정신 차리고 살려는 사람들치고 대운하가 만들어낼 대재앙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마당에…….

경제적 가치나 생태적 가치를 비롯해서 이것저것 다 따져보아도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 수많은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이 염려하고 있다. 오 목사도 경제적 담론과 환경적 담론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자신은 문명사적 관점에서만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명사적 담론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의 몫이지 오 목사의 몫은 결코 아니다.

소통? 광우병 걸린 소랑 통했나?

이 정도 했으면 됐다 싶은데, 얼마 전 “광우병 걸려 죽은 사람 하나 없는데 나라 전체가 광우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는 궤변을 터뜨렸다. 두 사람이 번갈아 ‘소통, 소통’ 하더니, 결국 광우병 걸린 미국산 ‘소’랑 ‘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목사라는 직업을 갖고 먹고사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표현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앞뒤 안 맞는 전체적인 문맥과 논지도 어이가 없거니와, ‘사람 하나 죽지 않았는데 나라가 시끄럽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명을 숫자 정도로 보지 않는 담에야 도저히 할 수 없는 얘기를 목사라는 자가 설교라고 하고 있다. 그럼 도대체 몇 명의 생명이 죽어야 그 입을 다물겠다는 말인가.

그는 세상의 흐름을 자기 읽고 싶은 대로 읽어버린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분노는 ‘실체 없는 광우병 바이러스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의 패닉’이 아니다. 아무런 실체가 없는 광우병 때문이 아니라 버젓이 실체가 있는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이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된 때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은 실험의 대상이고 훈육의 대상일 뿐이었지 섬김의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 국가조찬기도회 가서도 ‘소통’과 ‘섬김’을 얘기했다지만, 평생 그렇게 살지 않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못하는 법이다. ‘소통’과 ‘섬김’이 건축업자가 삽질 몇 번으로 아파트 몇 채 뚝딱 짓던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진 한국’을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덕분에 대한민국은 21세기로 전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70~80년대로 후진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고 머리가 어지러운 것이다.

오정현 목사 눈에는 청소년들이 촛불 들고 있는 모습이 철딱서니 없는 불장난으로 보인다. 설마 단지 미국산 수입 소 안 먹겠다고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왔을까. 어른들이야 참다 참다 그냥 복종하지만, 청소년들은 참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자신들의 미래를 당신들 맘대로 짓뭉개지 말라고 말이다.

오 목사와 같은 기성세대가 잘 먹고 잘살겠다고 이명박 씨를 대통령으로 만든 덕분에 오 목사가 그토록 사랑하는 다음 세대가 초죽음 상태로 몰려 있다. 이것이 과연 실체 없는 공포일까. 한국 사회의 미래, 다음 세대의 절망이 오 목사의 눈에는 안 보인다. 그런 암울한 미래도 보지 못하면서 문명사적 소통 운운하고 있다.

오 목사는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이 천혜의 풍광 속에 있는 물길을 따라 국토를 일주하면서 시를 쓰고 예술적 통찰력을 얻는다면 그곳이 생명의 소통으로 흐르는 물길이 될 것”이라고 글은 그럴듯하게 썼다.

대운하 코스 중에 천혜의 풍광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다. 0교시 수업과 학원에 내몰린 아이들이 언제 배를 타고 국토를 일주할 수 있으려나 궁금하다. 지금이 한가하게 시나 쓰고 있을 때인가, ‘오렌지’를 ‘오륀지’로 발음하기 위해 영어 몰입 교육을 해야 할 때지. 하긴 배 타고 운하 돌면서 시를 쓰는 것도 대학 들어가기 위한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면 안 될 일도 아니다. 이런 사고로 무장한 채 쾌속정을 타고 대운하를 하루에 몇 번씩 왕복해봐라, 생명이 소통되나.

그게 정말 ‘정부의 미숙함’ 정도로 보이나

오 목사의 칼럼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진리 때문에 맞아죽는 스데반 같고, 분노한 국민들은 광기와 살기로 충만한 사울 같다. 똑같은 성경도 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제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하고, 제 적용하고 싶은 대로 적용한다. 그런데 내게는 다른 성경 이야기가 떠오른다. 다윗이 강간하는 죄를 짓는 바람에 아무 죄 없는 자식이 벌을 받아 일주일 만에 죽은 얘기다. 기성세대의 죄를 하나님이 용서할지는 몰라도 그 죄의 대가로 다음 세대가 벌을 받은 모양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과 오정현 목사가 하는 행동과 말의 결과는 다음 세대가 고스란히 재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제 자식들은 여기에 해당이 안 된다. 대한민국 군대는 대한민국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보수 꼴통들의 자식들이 가는 곳이 아니다. 힘도 없고 빽도 없는 부모를 둔 자식들이 가는 곳이다. 미국산 소고기 먹을 사람은 수입을 찬성하는 이들의 자식이 아니다.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이들의 자식이 먹을 뿐이다. 그러니 목사 입에서 “죽은 사람 하나 없는데……” 하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오는 것이다. 제 자식 군대 보내고 참전(參戰) 찬성하고 제 자식 한국에서 미국 소 먹이면서 미국 소 수입 찬성한다면 차라리 양심적이다.

‘정부의 미숙함을 빌미로’라는 표현을 읽고 나니 그냥 헛웃음만 나온다. 침실에서 다른 남자와 누워 있는 아내를 발견한 남편이 ‘아는 사람이랑 그냥 손만 잡고 얘기 나눈 것일 뿐’이라고 억지로 자위하는 것 같아 좀 처량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을 아무리 좋아해 눈에 뭐가 쓰였다 해도 ‘미숙’이랑 ‘사기’도 구분이 안 되는가. 방송 내용에 대해서는 ‘균형 잡히지 않은 정보로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는다’고 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미숙함’이란다. 권력자들 입안의 혀처럼 살았던 구약 시대 제사장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오 목사가 쓴 글 중에 맞는 대목이 하나 있다. 촛불시위를 하는 학생들이나 시민들은 머지않아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고,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TV 화면은 또 다른 이벤트로 채워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어리석은 한국 국민들은 금방 뜨거워졌다가 금세 식는다. 권력자들은 그 생리를 잘 안다. 그래서 적당히 뭉개고 지나가려 한다. 사실 목사도 그것 때문에 나름 편하게 먹고살지 않나. 했던 설교 몇 번이나 하고 또 하는 것은 그렇게 쉽게 까먹는 교인들 덕분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무리 쉽게 까먹는다 해도 할 짓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짓이 있다. 오 목사가 아마도 성경 못지않게 사랑할 ‘조중동’이라는 신문들은 딱 1년 전에는 뼛조각 하나 갖고 광우병 바이러스를 한국 사회에 엄청나게 유포했다. 근데 1년 만에 태도를 싹 바꿨다. 이건 뭐라고 설명하려나. 그 신문사들 구내식당에 써 붙은 안내문을 보라. 미국 수입 소 찬성하는 기사 쓰는 기자들이 어느 나라 소고기 먹고 있나 한 번 가서 봐라. 미국산 소에서 뼛조각이 발견됐다고 작년에 그리도 거품을 물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미주 동포들도 우족탕, 꼬리곰탕, 이런 거 드시면서도 아무 탈 없죠?” 한다.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TV 화면이 바뀔 것을 앞질러 얘기하기 전에 그네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애국’ 신문들의 놀라운 변신에 대해서 먼저 한마디 해야 하지 않겠나.

마지막 하나만 얘기하고 끝내자. 오정현 목사는 5월 11일 주일에 ‘성령님은 얼마나 소중한 분인가’라는 제목으로 설교했고, 12일에는 <국민일보>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이 날이 성령강림주일이어서 성령에 대해서 강조한 것 같다. 근데 그날 오정현 목사에게 강림한 성령은 좀 특이하다.

2~4부 예배 때 줄곧 광우병 관련 발언을 한 것 때문에 교인들의 항의 메일을 받았고, 그런 사실까지 5부 예배 때 언급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성령께서 감동 주신 것을 얘기한 것뿐이라고 했다. 성령님이 참 갖가지 일에 희한한 감동을 다 준다. 오 목사에게 강림한 성령께서 ‘사람 하나 안 죽었는데 왜 이리 난리냐고 한마디 하라’고 하셨나본데, 그런 성령이 내게도 강림할까봐 걱정이다.

그리고 그 교회 교인들은 주머니뿐만 아니라 머리에도 든 것이 좀 있을 텐데,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나. 이게 대한민국, 강남공화국 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의 수준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불행이다.

* 그냥 궤변도 아니고, 목사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어려운 말을 들고는, 인내심을 발휘할 마음을 별로 품지 않고 감정을 담아서 썼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일단 죽 쓴 다음 며칠 동안 시간을 갖고 마음도 다듬고 글도 다듬으려고 나름 노력했다. 그래도 이 정도다. 이 정도만 절제하는 선에서 분노를 담아내기로 결정했다. 성령께서 분노하라고 특별한 감동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령께서 뭐라 나무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냥 이 험한 세상, 흔들리지 말고 제정신 갖고 살자는 얘기만 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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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나무 2008-05-18 14:18:52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굳이 수입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수입하겠다고 한 것이 누구입니까? 미국에서 소비되지 않는 부위를 강제로 끼워파는 이들은 누구 입니까? 누군가 광우병에 걸려 죽어야만 그 위험성이 확인되는 것입니까? 목사가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 어쩌고 하는 말을 해도 잠자코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까? 미주교회에는 뉴조처럼 아픈 곳을 찔러 고름을 짜낼 곳이 필요합니다.

늘푸른나무 2008-05-18 14:12:06
물론 이 기사가 약간 도를 지나친 감정의 표현이 담겨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지요. 기자 또한 그것을 밝히고 있구요. 하지만 반미와 죄 문제를 연결시키는 님의 발상에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반미는 병든 것이라고 연결을 하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반미하면, 예수 믿는 자라고 보기 힘들다는 지적은 무슨 근거이신지요. 굴종적 친미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아니지요.

바가지 2008-05-18 12:33:38
반미 감정이 철저히 녹아있는 글입니다. 도저히 당신이 예수믿는 자라고 보기 힘드네요. 그리고 광우병으로 죽을 사람 없습니다. 있지도 않은 허상에 광분해 촛불들고 길거리에 나오는 철부지들과 조금의 차이도 보지 못하겠습니다. 이 모든것이 정녕 죄문제임을 모르십니까? 모두 자기가 옳다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한 못먹어도 '고'임을 말입니다. 반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당신 역시 병든 것임을 기억하십시요.

하루 2008-05-16 13:40:21
왜 나는 공감이 갈까???

소금 2008-05-16 12:05:30
이런 수준의 글을 기사 또는 논평이라고 올리실 거면 미주 뉴조 전체가 저널리즘이길 우선 포기하시는 게 나을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