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호 목사가 몽골로 선교를 떠난다. 이 목사는 평생 몽골에서 선교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자신의 생각이다. 미국에 오고, 아내를 만나고, 몽골로 가는 것이 다 주님의 계획하에 이루어졌듯이, 또 어떤 사건이 펼쳐질지 자신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 ||
이 목사가 해외 선교를 꿈꾼 것은 1995년 카자흐스탄으로 단기선교를 갔다 오면서부터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을 찾아가 그들에게 예수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졌다. 자신의 계획을 놓고 기도를 했다. 선교사의 길을 가는 것이 주님의 뜻에 합당하다면 환경을 열어달라고 했다. 주님의 뜻에 합당했던지 이 목사는 1998년 미국으로 건너오게 됐다. 이 목사는 10년 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선교사로 나갈 준비를 했다.
'예수의 삶, 흉내라도 내고 싶어'
이 목사와 그의 가족은 선교를 위해 오랜 시간을 준비했다. 살기 좋은 지역보다는 좀 더 가난하고, 좀 더 어려운 지역을 찾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정한 곳이 몽골이었다. 이 목사의 롤 모델(role model)은 슈바이처 박사다.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산 슈바이처 박사처럼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이 목사는 중학교 때 다짐한 대로 지금껏 살아왔다. 이 목사는 장신대학교를 다니던 때에도 외국인 노동자 사역을 했다. 한국 땅에서 이방인인 그들과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면서 이방인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배웠다. 당시 깨달음이 평생 이방인으로 살아 갈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미국에 와서는 흑인이 많이 사는 브롱스에서 캄보디아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했다. 최근까지 캄보디아인들이 다니는 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돌보기도 했다. 이 목사는 장애인 선교단체인 뉴저지밀알선교단에서 총무로 일을 했다.
자신의 삶에도 엄격함을 지켰다. 미국 시민권을 딸 자격이 되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선교를 하기 위해 일부러 시민권을 얻지 않았다. 미국 시민권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선교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모든 일이 몽골로 떠나기 위한 준비 단계였던 셈이다.
▲ 이현호 목사의 가족도 함께 떠난다. 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흑인, 캄보디아 사람들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인종에 대한 거부감이나 어색함은 없다. | ||
이 목사가 이렇게 약자와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는 이유가 있다. 예수의 삶을 조금이라도 흉내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선교도 약자 구원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예수가 히브리 민족을 택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얘기다. 단순히 예수의 힘을 과시하고 싶으면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 민족보다는 당시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이집트 민족을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교하기로 결정한 다음 침묵의 시간을 보내라
이 목사는 선교사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다음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뜨거운 열정으로 선교사를 나가기보다 머리로 이해할 때까지 기다렸다는 말이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사울도 바울이 된 뒤 바로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 광야에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예수 역시 마찬가지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40일 동안 사막에서 침묵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 이 목사는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영성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가능하다면 몽골에서 평생 사역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빨리 복음을 전해서 개종을 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들과 오래 함께 살면서 서서히 예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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