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戀書)? 금서(禁書)!
연서(戀書)? 금서(禁書)!
  • 김종희
  • 승인 2008.06.18 15: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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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읽지 말라고 쓰는 서평, 박총의 [밀월일기]

재작년 <복음과상황>에 6개월간 연재하다가 퇴출된 글이 있다. ‘무녀리의 엉망진?가정생활’이라고, 혹시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193호니까 2006년 10월호 정도일 텐데, 거기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아주 멋진 가정을 꾸리면서 그것을 글로 잘 표현해서 여성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필자들이 있지요. 지금 경북대 교수로 있는 김두식,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있는 박총. 이 두 남자의 아내 사랑, 가정 사랑 이야기는 수많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99년도에 발간된 <복음과상황>을 모두 금서 목록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두 사람의 글들 때문입니다. … 박총 씨의 ‘밀월일기’는…… 뭐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저 인용을 해드리죠.

사실 안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안해의 하품 소리는 세레나데고, 눈가의 눈곱은 다이아몬드 알갱이다. 그녀의 가래는 슈크림이며, 귓밥은 치즈 가루다. 버즘은 금가루, 침은 샴페인 거품이다. 내가 오줌 눌 땐 ‘쏴아’ 하는 소리가 나지만 안해 것은 ‘은조롱금조롱’ 하게 들린다. (99년 4월호) 같은 변비에 걸려도 나는 염소 똥 같은 게 ‘텀벙’ 하고 물까지 튀며 떨어지는데, 안해가 해민이 갖고 변비에 걸렸을 땐 밤알이 ‘오도당도당’ 하고 이쁘게 떨어지는 거다. 왜 안해 것은 늘상 사랑스러울까? (99년 10월호)”


“정말 놀고 있네”라고 그때 한마디 했다. 며칠 전 박총 씨한테서 메일이 왔다. 요즘도 여전히 놀고 있단다. 그것도 아주 ‘잘’ 놀고 있단다. 잘 놀고 있는 증거라면서 책을 한 권 냈다고 자랑한다. 제목은 <밀월일기>. 어라, 이것 봐라? 그러면서 하는 말, 내가 서평을 쓰면 재미있겠다고 <복음과상황> 기자가 얘기했단다. 답장을 보냈다. “오호, 그래? 책 보내주면 질근질근 씹어주지.”

평소에는 연락도 없더니 갑자기 친한 사이인 척한다. “저는 형님의 글을 읽을 적마다 감사를 올리게 됩니다”, “다음번엔 좀 더 편하게 하대하셔도 됩니다, 형님”, “토론토 오시면 꼭 연락주세요.” 아무리 친한 척해도 난 이런 책 싫어. 잡지에 연재했으면 됐지 결국 책까지 내냔 말이야. 자기 말마따나 ‘노루 한 마리 잡은 작대기 석 삼 년 우려먹고’ 있다. 질근질근이 아니라 아작아작 씹어버려야지.

책이 왔다. 표지부터 도시 맘에 안 든다. 그림도, 색깔도, 분위기도, 전부 다 내 취향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 ‘복있는사람’이 왜 이런 책을 냈을까? 출판사까지 싫어지려 한다.

아작아작 씹어주려면 잘근잘근 곱씹어서 읽어줘야 한다. 공격적 책읽기, 비평적 책읽기, 행복한 책읽기, 생산적 책읽기, 뭐 이런 얘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이건 정말 짱나는 책읽기다.

   
 
  ▲ 박총의 <밀월일기>(복있는사람)  
 
몇 페이지 안 넘어갔는데 박총 씨 안해 순영 씨가 ‘은조롱금조롱’하게 오줌 누는 소리가 들린다. (22쪽) 계속 읽어? 말아? 그래, 참자. 근데 몇 페이지 넘어간 다음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확 풀렸다. 짜증이 싹 사라졌다. 결혼하고 두 번째 부부싸움을 한 날 얘기다.

안해가 그저 한번 꼭 안아주면 화가 풀릴 텐데 그리 안 해줘서 계속 시비를 걸고 말썽을 피웠단다. 막 울었단다. 그러면서 “나처럼 울고 싶으면 맘껏 울고 위무(慰撫)가 필요하면 안아달라고 말해라. 체면 같은 거 차리지 말고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진짜 사내다움이 아닐까” 하고 변명한다. (48쪽)

이 대목을 읽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하, 완전히 다른 종자였구나.” 부부싸움하고 나서 울고 싶은 적 없었고, 아내한테 안기고 싶은 적 없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나서 박총 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동성애자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박총 씨도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자.

종자가 다르다는 증거를 또 발견했다. “내가 그렇게 애썼는데도 안해가 제대로 안아주지도 않고 입맞춰주지도 않아서 마음이 많이 상했다. 내 의지를 감정이 갖고 노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날 휩쓸어갔다. ……” (165쪽) 정말 극단적으로 다른 종자로구나.

다름을 깨닫는 순간부터 마음이 좀 편해졌다. 이제부터 책을 편하게 읽기 시작했으니, 글도 좀 편하게 써야겠다. ‘서평이 뭐 이래?’ 하지 말기 바란다. 서평 아니다. 그냥 씹는 거다.

8월 16일(日)
출장 때문에 일주일 집을 비운다. 그래서 일주일치 잎글(엽서)을 미리 써서 집안 구석구석에 숨겨놓았다. 소풍 온 기분으로 찾기 내기를 한다. 잎글 읽는 기분과 찾는 재미를 쏠쏠히 느끼길 바라면서, 하루는 전골냄비 안에, 하루는 침대 속주머니에, TV 장식보 아래, 하루는 앨범 속에, 하루는 화장실 선반 아래 칸에, 하루는 거실 벽걸이 시계 안에 감춰놓았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작년 3월이 결혼 10주년이었다. 나는 재작년 12월에 혼자 미국을 와야 했기 때문에 결혼기념일을 챙길 수 없었다. 그래서 약 100일 앞서 선물을 준비했다. 100가지 선물을 100군데에다 숨길 도리도 없고,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다. 딱 한 가지 선물을 딱 한 군데 숨기고 딱 100일 동안 찾도록 했다. 그건 1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었다(사내가 선물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여자는 돈을 제일 좋아한다니까). 먼지 풀풀 나는 낡은 책 안에 숨겨놓았다. 아내는 그걸 찾기 위해 목장갑 끼고 마스크 쓰고 열심히도 뒤졌다. 나도 잎글을 하나 남겼다. “아껴서 써!”

9월 14일(♥) (* 똑같은 이모티콘을 찾느라 눈알이 다 빠지는 줄 알았다. 일기도 꼭 이런 식으로 써야겠나?)
안해의 스물여덟 번째 생일이다. 나이에 맞춰 스물여덟 가지 선물을 내놓아 안해를 설레게 해주었다. 두 주간에 걸쳐 선물을 장만했다. 앞에 꾸밈말은 다 줄이고, 엽서, 키친타월걸이, 머그잔, 쿠폰, 양말, 냉장고 홀더, 배지, 복권, 염색약, 인형……. 목록을 보니 청계천 근처 재래시장이랑 남대문시장 일대를 다 톺았겠다. 금액으로는 2~3만 원 정도 들었을 테고.

나 같으면 20~30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 하나 떡 하니 내놓겠다. 여자들 겉으로는 발품 들인 소품 좋아하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큰 거 한 장 바란다. 그걸 모른다. 왜? 종자가 다르니까. 해마다 스물아홉 가지, 마흔두 가지, 쉰여섯 가지 소품을 준비하겠지? “내 인생은 예전에도 그녀에게 달려가는 날들의 연속이었고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그러할 것”이니까. (22쪽) 어디 두고 보자, 일흔아홉 번째 생일에는 무슨 선물 하나. 내 반드시 그때까지 살아남아서 두 눈 치켜뜨고 지켜보리라.

10월 11일(일)
일주일간 출장을 가고 아내는 열흘간 간호사 교육을 받으러 간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순영이를 꼭 안아주고 기도해준다. 힘들 때마다 읽어보라며 잎글도 써서 건넨다. “사랑하는 순영, 내일이면 결혼 후 가장 긴 시간을 떨어져야 하는구나. 퍽 그리울 거야. …… 여보, 어서 돌아와. 당신 없는 동안 난 다른 여자들에겐 돌부처가 될 테야. 어서 와서 맛난 저녁 해줘. 사랑해.”

고작 열흘 헤어지는 것 갖고 너스레를 놓는다. 나라면 열흘 떨어지는 건 10분 안 보는 것 정도로밖에는 안 느껴진다. 재작년 12월부터 작년 7월까지 7개월 동안 가족과 떨어져서 미국에서 혼자 지낸 적이 있다. 처음부터 가족을 다 데리고 와도 되었지만, 그러면 일이 손에 제대로 안 잡힐 것 같았다. 해가 바뀌고 3월, 4월, 5월, 이렇게 재회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해졌다. “할 일이 태산인데 무슨 시간이 이리 빨리 가나.” $20 주고 산 국제전화카드는 아직 반도 안 썼는데.

6월 8일(木)
“안해랑 다퉜다.” 긴 장마에 모처럼 내리는 소나기처럼 짧지만 시원한 문장이다. 가끔 이렇게 싸워주어야 한다. ‘입을 맞췄다’, ‘안아주었다’, ‘사랑해 여보’, ‘꽃을 따서 안겨주었다’, ‘잎글을 써서 건네주었다’는 내용으로 채워진 일기는 따분하고 지루하다.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근데 첫 문장만 그렇지, 다음 문장부터는 ‘날 용서해줘야 할 텐데’, ‘날 안아주었으면’, ‘내가 먼저 화해를 청했다’, 뭐 이런 식이다.

참 속없이 잘도 산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상이 아니야. 혹시 일기를 안 쓴 날에는 전부 부부 싸움을 하는 거 아닐까? 아마 그럴 거야, 정말 그럴 거야, 틀림없이 그럴 거야…….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이외수가 이런 글을 썼다더라. “사랑한다는 말 뒤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영원히’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종자가 다른 박총 씨한테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영원히’라는 말은 생략될 수 없다. 만난 지 7,000일 됐다고 ‘사랑해’를 7,000번 쓰겠다고 연신 Ctrl+V를 눌러대는 종자다. “<밀월일기> 사서 읽어볼까” 하는 사람들은 아까운 돈 들여 사지도, 읽지도 마라. 왜? 별 다른 내용 없다. ‘사랑해’를 Ctrl+C한 다음 열나게 Ctrl+V해서 도배한 책이니까.

책을 다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금요일 늦은 오후, 아내의 사랑니를 빼기 위해 치과를 같이 갔다. 이를 뺀 다음 진통제와 항생제를 사러 약국을 갔는데 문이 닫혔다. 이 약국 저 약국 돌아다니다가 밤늦게야 24시간 운영하는 CVS에서 간신히 약을 구했다. 약봉지를 들고 차에 돌아오니 큰딸이 “어~, 아빠가 엄마 아프다고 이렇게 뛰어다니는 건 처음 보는데” 한다. 대견하다는 표정이다. “만약 오늘 진통제를 못 구해서 엄마가 한밤중에 일어나서 아프다고 끙끙대면 누가 제일 괴롭겠어?” 하고 물었다. 아빠가 던진 질문 의도를 파악하느라 큰딸이 머뭇하는 사이 눈칫빨 만점 작은딸이 대답한다. “누가 괴롭긴, 당근 아빠가 제일 괴롭겠지” 한다. “이제 알겠니?”

솔직히 말하면 <밀월일기>를 안 읽었으면 잰걸음으로 걸어다녔을 텐데, 그걸 읽은 부작용이 컸는지 살짝 뛰어다녔다. 그러니까 이런 책 읽지 말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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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i0027 2008-06-20 23:38:08
본인이 책 서평 쓰셨다는 걸 기사화 하신 건가요? 기사의 성격도 모르겠고, 논점도 모르겠습니다. 기사소개가 신간소개라면 최소한 한두줄의 저자라고 소개되어야 하는데, 박총씨가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고, 기자님 신변잡기적 수필을 기사화한 건지..아님, 미주뉴조의 여러 무거운 기사들 가운데 쉬어가라고 이런 기사 올리신 건지..이런 황당함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