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투스고등학교의 첫 열매들
익투스고등학교의 첫 열매들
  • 김종희
  • 승인 2008.08.08 1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년 과정 마친 졸업생 일곱 명…'정직'을 아름다운 단어로 받아들이다

아이들은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빠르게 달라졌다. 무관심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없던 아이들은 공부하는 법을 익투스학교에서 배웠다. 2년 전에는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영어를 이제는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가치관도 바뀌었다. 나만을 생각하던 마음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성숙해졌다. 도둑질을 나쁜 짓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아이들이 ‘정직’을 아름다운 단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익투스학교의 졸업생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 학교에 대한 느낌, 졸업 소감을 들어보았다.

   
 
   
 
"나중에 내 눈을 뽑아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거 아냐?"

로시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학생들을 이 나라의 리더로 키우겠다는 학교의 정신이 좋았어요. 저는 원래 이기적이고 질투심이 많았어요. 모든 것이 나만을 위해서 존재하기를 바랐죠. 저는 여기 오기 전에 가톨릭을 믿었어요. 예수님에 대해 잘 몰랐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하지만 어느 날 예수님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느꼈어요. 목사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내 마음에 기쁨이 충만해졌어요. 익투스에서 치료된 겁니다. 더 이상 나만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는 다른 사람도 염려하고 관심을 갖게 된 나를 발견해요. 그래서 2년 동안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몰라요.”

데니스는 처음 익투스를 왔을 때 마음 상태를 재미있게 얘기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먹고 자고 입고 공부하는 모든 것이 공짜라고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혹시 졸업할 때 내 눈을 뽑아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건 아닐까 불안했어요.” 데니스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호세는 “나중에 코미탄 과자 공장에 보내서 일을 시키려고 하는 건 아닌가” 의심했다. 입학식 전날 데니스는 같은 중학교 친구인 이시스한테 익투스학교를 안 가겠다고 했다. 데니스의 얘기를 들은 이시스도 불안해졌다. “너 안 가면 나도 안 갈래.” 다음 날 둘은 일단 학교를 가봤다. 가방도 안 가져갔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 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을 보니까 조금 안도가 되었다. 그래서 한 달만 있어 보자고 했다. 그 한 달이 2년이 넘어서 지금 이렇게 둘 다 졸업하게 되었다. 이런 얘기가 나머지 아이들에게 공감이 되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깔깔거렸다.

빅토르는 공부하는 법을 이곳에서 제대로 배운 것 같다고 얘기했다. “어떤 고등학교는 아침 7시에 수업을 시작해서 9시에 끝나기도 해요. 저녁이 아니라 아침이에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하루에 6시간에서 8시간을 공부하는 거예요. 게다가 저녁을 먹고 나서 또 공부를 해야 했어요.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깨달았지요.”

데니스가 말을 이었다. “일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교실에 오든 말든 공부를 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아요. 모든 걸 대충대충 해요. 교사들도 봉급 받고 자기 시간만 채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무슨 공부가 되겠어요. 익투스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꿈’, ‘리더’ 같은 거예요. 꿈을 품고 꿈을 꾸듯이 공부한 거 같아요.”

"도둑질이 나쁜 짓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알아요."

아이들은 가치관도 변했다. “2년 전 여기 오기 전에는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이 따로 있다고 아버지에게 배웠어요. 빨래나 청소나 설거지 같은 일은 남자가 할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이걸 다 내 손으로 해야 합니다.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이런 걸 배우면서 가정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방학 때 집에 가면 부모님 일을 도와줍니다.”

“처음 와서 설거지 당번을 할 때였어요. 남은 음식을 몰래 갖고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도둑질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학교에서는 계속 ‘정직’을 가르쳤죠. 계속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양심에 가책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음식이 계속 없어진다는 소리가 들렸어요. 난 더 이상 안 했거든요. 어떻게 된 것인가 싶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그런 짓을 한 거예요.”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두고두고 양심이 괴로웠죠. 바깥에서는 당연한 일인데, 여기서 가치관이 서서히 바뀐 것입니다. 2년 동안 훈련을 잘 받았으니까 학교 밖으로 나가도 그런 짓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겁니다.”

호세는 “다른 친구들한테 학교에서 배운 것을 얘기해줬어요. 이런 얘기를 처음 듣는 친구들 중에는 조언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애들도 있어요. 그중에는 자기도 노력했는데 잘 안 되더라는 친구도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그런 유혹을 이길 수 있냐고 묻는 애도 있었지요. 이것이 바로 남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호세는 “멕시코에는 마약 같은 것 때문에 비리나 범죄가 많습니다. 국가 지도자들 사이에 부정부패가 심합니다. 나는 정치인이 되고 싶어요. 그때가 되어도 여기서 배운 대로 정직하게 살 것이고, 부정부패는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혼자는 힘들 거예요. 이 학교에서 배운 우리가 힘을 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구가 그런 문제로 괴로워할 때 모른 척하지 않고 기도하고 도와줄 거예요.”

선의(善意)보다 더 소중한 것은 상대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

아이들은 2시간 가까이 너나없이 편하게 얘기했다. 아이들은 익투스학교의 좋은 점만, 자신이 변한 점만 신나게 얘기했다. 하지만 늘 모든 것이 좋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 대해서 가장 아쉬운 점, 달라졌으면 하는 점을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다.

아이들은 잠시 쭈빗댔지만 그중 한 명이 입을 열자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내용은 크게 두 개로 모을 수 있다. 첫째는 개교한 지 3년밖에 안 된 탓에 학교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에 대한 불만이었다. 가령 계획된 일정이 자꾸 바뀐다든지, 스태프들 사이에 요구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든지 해서 생기는 혼란이었다. 이것은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 충돌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한국식 스타일, 예를 들어 ‘빨리 빨리’ 같은 것들을 힘들어했다. 멕시코의 생활 스타일이 워낙 ‘되는 대로’ ‘대충대충’이기 때문에 충돌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막대한 인력과 재정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성과를 내고 싶은 조급증도 은연중에 스며있을지 모른다.

선교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의(善意)를 갖고 지극 정성을 다하면서도 그들의 자존심을 보호해주는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 아이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처가 생길지 모른다. 이 학교가 앞으로도 긴장해야 할 매우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