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가족의 뒤틀린 선택
기러기 가족의 뒤틀린 선택
  • 이응도
  • 승인 2008.08.1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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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사회에서의 자녀 교육 21

   
 
  ▲ '우아한 세계'라는 영화에서 조폭인 아버지는 부인과 자녀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혼자 한국에 남는다.  
 
한국의 중산층 부모들이 자녀에게 더 나은 기회와 교육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감수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 현상이 결국은 가정의 해체를 재촉하는 '뒤틀린 선택'이 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월 9일 보도했다. 신문은 한국이 인터넷 강국 등 선진국 면모를 갖추고는 있지만 이면에는 직업과 사회적 지위, 배우자 선택까지 성적으로 좌우되는 풍토 때문에 적지 않은 가장들이 기러기 아빠가 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고 소개했다.(서울신문 / 임병선 기자, 2005년 1월 22일)

지난 2005년 신문에 실렸던 기사의 일부입니다. 이 신문에서 기자는 한국의 교육 과열로 인한 조기 유학의 한 단면을 '기러기 현상'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또 얼마 전 한 신학대학에서는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현상으로써 기러기 가족에 대한 박사 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그 논문은 기러기 가족을 가족 해체의 한 단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자의 입장에서 사실을 보도하든 학자의 입장에서 해석하든, 분명한 것은 한국 사회가 어디에선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허물어지는 기둥 중 하나는 교육에 대한 한국인들의 생각에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지난해 기러기 가족이 되기를 원하는 여러 가정을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부모님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철학은 분명합니다. 그 중 한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목사님, 애들에게 고기를 줄 수도 있어요. 나름대로 재산도 모았고 그냥 자녀들을 먹고 살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제대로 가르쳐주기만 하면 먹고 사는 것은 다 자기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요."

그 어머니의 생각과 말은 옳습니다. 자녀에게 먹을 것을 주고 돈을 주는 것보다 교육을 선택하는 것은 참 지혜롭습니다. 문제는 과연 부모 중 한 사람과 떨어져서 부모님이 판단하는 양질의 교육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국보다 좋은 공교육 시스템과 월등하게 넓은 대학 선택의 폭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투자할 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러기 가족이 되기로 결정한 가정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기러기 가족은 대부분 자녀가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다니는 시기에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 시기는 자녀들이 아직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환경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기입니다. 저는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교육 환경은 바로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세상이 주는 것만큼 다양한 영향은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자녀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화되고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정보가 쏟아집니다.

만일 우리의 자녀가 많은 정보를 소유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좋은 컴퓨터와 고속 케이블을 주면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정보를 소유한다 한들 작은 노트북 컴퓨터 한 대가 가진 용량조차 넘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그 정보를 바르고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가치관과 성품을 갖추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부모들이 기러기 가족이 되기로 결정하는 시기는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부모 중 한 사람의 역할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의 공교육에 자녀를 맡기는 것은 어쩌면 정말 위험한 도박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 해 상담했던 한 가정은 4년째 어머니와 남매가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딸과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무리 없이 미국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1년에 한두 번 자녀를 만나는 아버지는 자녀로부터 무엇인가 다르고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미국에 가거나 가족들이 한국에 오면 반갑고 즐겁기보다는 생소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입니다. 가정 경제 제공자로서의 아버지의 존재는 건재했지만 가족 관계에 있어서 아버지의 위치와 역할이 현저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시기 자녀들은 부모의 관계를 통해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기능을 배우게 되는데 자녀들은 '가정'을 배워야 할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그동안 기러기 가족 혹은 기러기 가족이 되기를 원한 가정들을 상담하면서 느낀 생각과 이야기들을 몇 주에 걸쳐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응도 / 필라델피아초대교회 목사·가정상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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