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보물에 새겨진 꽃을 만나다
하늘의 보물에 새겨진 꽃을 만나다
  • 김민수
  • 승인 2008.08.17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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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하늘이 내려준 선물, 이슬

   
 
  ▲ 이슬은 작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온 우주가 들어 있습니다. 맑을 뿐 아니라 모난 곳이 없습니다. (사진 제공 김민수)  
 
"주님께서는 그들의 땅에 복을 내리실 것이다. 위에서는 하늘의 보물 이슬이 내리고 아래에서는 지하의 샘물이 솟아오른다."(신 33:13).

어릴 적 교회 학교에 다니면서 배웠던 복음성가 중에서 '초가삼간도 나는 만족 하네 / 가진 재물도 내겐 없지만...(중략)...순 황금길을 거닐겠네'라는 노랫말을 가진 노래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야 내용에 대한 고민 없이 그냥 받아들였지만, 청년이 되어 생각해 보니 비성서적일 뿐만 아니라 천국에 대해 왜곡한 천박한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노랫말대로라면 천국이 현세의 삶에 대한 한풀이처럼 느껴지고, 물신의 대명사인 황금으로 치장된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천국인데 그것이 과연 천국일까요? 몰상식한 부흥사들은 헌금 액수에 따라 천국에서 살 집의 평수가 결정된다는 둥, 천국 체험을 미리 해보니 자기가 살 아파트는 몇 평이라는 둥 별 허접한 설교에도 '아멘'으로 화답했던 친절한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의 흐름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천국이 순 황금길로 되어 있다면 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순 황금길보다는 흙길을 걷고 싶고, 길가에 풀꽃들이 피어 있는 곳이 좋습니다. 지금 이 땅에 살아가면서도 누군 판잣집에 살고, 누군 호화 저택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아가는데 영원히 살아갈 천국도 그렇다면, 그런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비성서적인 천박한 축복관으로 인해 한국 교회 안에는 맘몬이 횡횡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기형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 하늘의 보물은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누구나의 것이어야 합니다. 이슬이야말로 하늘이 주신 보물입니다. (사진 제공 김민수)  
 
그렇다고 하늘에 보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늘의 보물을 매일매일 보여주십니다. 이 땅 어딘가에 이슬이 맺혀 있다면, 하늘의 보물이 이 땅에 송글송글 맺혀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33장 13절에서는 이슬을 '하늘의 보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보물, 그것은 황금처럼 누군가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슬처럼 만인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물은 누구나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하지만 자기 홀로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 이슬 같은 것입니다.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것, 이른 아침 햇살이 뜨겁게 타오르기 전 부지런한 사람들이 볼 수 있으며, 깨어있으되 이슬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이슬은 존재합니다. 누구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누구나의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하늘의 보물인 것입니다.

하늘의 보물인 이슬, 그의 삶은 짧지만 그의 여정을 보면 참으로 위대합니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이고 모여 실개천을 이루고, 냇물을 이루고, 강을 이루고 마침내 바다가 됩니다. 오직 낮은 곳으로만 흘러 세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에 이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도를 보는 듯합니다. 낮아짐의 진리를 봅니다.

하늘의 보물인 이슬, 그는 작지만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온 우주가 들어 있습니다. 하늘도 들어있고, 꽃도 들어 있고, 나무와 산과 모든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슬의 맑음에 있습니다. 그들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담으면서도 결코 본질은 변함이 없는 이슬 방울, 그들을 바라보노라면 하늘의 보물이 황금이 아니라 이슬임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됩니다.   

   
 
  ▲ 하늘의 보물이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 시달리며 살아가다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소요하게 내리면 좋겠습니다. (사진 제공 김민수)  
 
하늘의 보물인 이슬, 그는 맑을 뿐 아니라 모난 곳이 없습니다. 내 안에 들어있는 가시, 모난 모서리들로 인해 이웃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모릅니다. '원'이 상징하는 것 중에 '완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아니라 완전을 지향하는 이슬의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물인 이슬에 맺힌 작은 꽃들을 담아보았습니다. 작은 이슬 방울마다에 새겨진 꽃들을 보면서 '하늘의 보물에 꽃이 새겨졌구나' 생각했습니다. 하늘의 보물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들꽃이 담겨있으니 이 세상 어떤 보석도 흉내 내지 못할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하늘의 보물이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 시달리며 살아가다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소요하게 내리면 좋겠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연이어 이어지는 촛불 집회를 봅니다. 강경일변도로 치닫고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권에 대해 환멸을 느끼기도 합니다. 국론이 분열될 뿐 아니라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사람들조차도 찬반으로 나누어져 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 난감하시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어느 쪽이 진리고, 어느 쪽이 사탄의 세력과 짝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장하는 근저에 맘몬적인 것들이 들어있는지 아닌지를 보면 선악의 분별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가 아니라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함으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간혹 꽃을 담고, 작은 이슬 방울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세상은 이렇게 소용돌이치는데 너는 거기서 무엇을 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라도 하니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항변을 하기도 합니다.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서 각진 마음, 상처 난 마음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보며, 하늘의 보물을 보면서 다스립니다. 때론 현실도피처럼 느껴질 때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가끔씩은 현실에서 잠시 물러서서 현실을 직시하는 일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악의 세력들과 싸울 수 있을 것이며, 일시적인 싸움이 아니라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물도 아닌 것들이 온갖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우리를 공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일 수도 있고, 물질일 수도 있고, 이론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이 시대의 대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정금 같은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좁은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 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늘의 보물이, 그 축복이 세상살이에 지친 모든 사람들에게 가득하길 바랍니다.

김민수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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