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사랑하라' 타 종교인은 빼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타 종교인은 빼고?
  • 박지호
  • 승인 2008.12.17 2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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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인터뷰] 미주 종교평화상 받은 김광준 대한성공회 신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종교간대화위원장 김광준 대한성공회 신부. 그는 12월 9일 미주종교평화협의회가 수여하는 제1회 종교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 논란으로 한창 시끄럽던 8월 27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선 '헌법 파괴, 종교 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대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김 신부가 기독교 성직자로서 연대사를 낭독했던 것이 수상의 배경이다.

스님만 1만여 명, 불자까지 약 15만 명이 운집해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성을 규탄했던 범불교대회에서 로만 칼라의 까만 신부복을 입은 김 신부는 가사장삼을 입은 청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는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명박 정부 종교 편향과 일부 목사들의 불교 비하 발언에 대해서 대신 사죄했다. 청중들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 김광준 신부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는 것과 타 종교인을 존중하는 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했다.
교계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김 신부가 수만 명의 불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린 이유는 무엇일까. 김광준 신부는 "이웃 종교인들이 그렇게 아파하는데 기독교 성직자로서 그들의 아픔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종교평화상을 받기 위해 LA를 방문한 김 신부를 12월 13일 다운타운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만났다. 

"연대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고민 끝에 수락을 했지만 주변에서, 교단에서 무척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성직자로서 이웃 종교인의 아픔을 모른 척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계의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적어도 그들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지요. 또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배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범불교대회에 참석한 이후 김 신부는 다양한 반응을 접했다. 불교계로부터는 어려운 걸음을 했다며 격려하는 인사가 줄을 이었다. 가끔 등산 가서 사찰에 들르면 김 신부에겐 입장료를 받지 않기도 했고, 주지 스님으로부터 차를 대접받기도 했다. 하지만 비판과 비난도 감내해야 했다.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김 신부를 향해 '종교 다원주의자', '하나님을 배반한 배교자'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 15만 명이 운집한 불교도들 앞에서 연대사를 낭독하는 김광준 신부. (출처 : 오마이뉴스)
"예수의 이름으로 핍박하고 차별할 텐가"

김 신부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는 것과 타 종교인을 존중하는 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황금률에 타 종교인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일신 사상을 가진 종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 기독교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지만, 현실적으로는 다문화·다종교 사회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이제 우리의 이웃은 지역적·공간적인 개념에 제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옆에 있는 타 문화인과 타 종교인들도 우리의 이웃입니다. 때문에 이웃 종교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더불어 협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김 신부는 또 자신의 믿음을 강조하는 나머지 다른 사람의 종교나 신념을 적대시하면 안 된다고 경계했다.

"열심히 전도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신앙을 남에게 억지로 강요해선 안 됩니다. 또 종교로 편 가르기 하고 차별하고 싸우는 게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요.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엄청난 핍박과 고통을 당했잖아요. 그런데 작금의 한국 교회가 타 종교인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고통을 주고 차별을 가하지는 않는지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김 신부는 타 종교를 비하하는 일부 목사들의 발언 역시 종교 간 갈등을 부추기는 주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최근 불교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장경동 목사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장경동 목사는) 기독교의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 아닙니까. 그분이 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개인적인 발언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발언입니다. 부흥회 가서 교인들끼리 나눈 이야기라고 하는 것도 변명이 안 됩니다. 정치인들끼리 술 한잔하면서 얘기한 것도 뉴스거리가 되고,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세상입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김 신부는 타 종교를 비하하는 일부 목사들의 발언 역시 종교 간 갈등을 부추기는 주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사진은 범불교대회 때 참석자들이 장경동 목사의 사진과 장 목사의 불교 비하 발언으로 보고 있는 장면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평화', 종교 간 협력을 위한 시대적 과제

김 신부는 이번 범불교대회에 참석하면서 그동안 매진해왔던 '종교 간 대화와 협력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절감했다고 말했다.

"한국이야말로 종교 간 갈등이 없는 나라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볼 때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겉으로는 평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웃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에서 나온 평화가 아닙니다. 타 종교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온 위장된 평화일 뿐입니다. 때문에 사소한 불씨 하나가 큰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겁니다."

한국의 초창기 종교 간 대화 운동은 종교 간의 이해와 협력이라는 소극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하지만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단순한 대화(Dialogue) 차원을 넘어서 구체적인 현장에서 힘을 합하고 연대하는 방향으로 종교 간 대화 운동은 진화해갔다.

"보편적 가치를 위해 함께 일할 때 진정한 종교 간에 평화가 싹튼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종교인들이 연합해 3.1 운동과 독립운동을 이끈 것도 그렇고, 군사 독재 시절 민주화를 위해 종교인들이 협력한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김 신부는 지금 이 시대에 종교가 협력해서 일구어가야 할 시대적 과제로 '평화'를 꼽았다.

"모든 종교가 공동으로 지향하는 가치 중에 '평화'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이제 다름을 존중하는 차원을 넘어서 평화를 위해 협력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종교 간에 다양한 신념이 있지만,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위해 힘을 합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교회의 사명이 아닐까요."

▲ 대한성공회 김광준(52·사진) 신부가 미주종교평화협의회가 주는 제1회 종교평화상을 수상했다.
지난 8월 27일 열린 '헌법 파괴, 종교 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대회'에서 기독교 성직자로서 연대사를 낭독했던 대한성공회 김광준 신부가 미주종교평화협의회가 주는 제1회 종교평화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12월 9일 LA 원불교 교당에서 열렸다.

미주종교평화협의회 측은 "김광준 신부가 범불교대회에서 용감하게 나서서, 종교 간 평화를 역설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아름다운 성직자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김 신부는 "이 상을 통해 그동안 형식적으로 해왔던 종교 평화 운동을 넘어서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평화 운동에 매진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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