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퀸즈한인교회 3대 담임 이규섭 목사
[인터뷰] 퀸즈한인교회 3대 담임 이규섭 목사
  • 박지호
  • 승인 2008.10.07 1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 하나 되는 일만 남았다"

"열 생명 얻는 목회 대신 한 생명 잃지 않는 목회를 하겠다." 퀸즈한인교회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된 이규섭 목사는 더디 가더라도 교회의 하나 됨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분쟁으로 교회가 몸살을 앓았던 자신의 목회 경험을 떠올리며, 하나님이 자신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역할을 주문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목사와의 인터뷰는 퀸즈한인교회가 공동의회를 통해 이 목사를 청빙하기로 결정한 다음날인 6일, 목회자 세미나가 열린 한미장로교회에서 있었다. 이규섭 목사는 서강대를 졸업하고, 총신대학신학대학원에서 역사학을, 클레몬트신학교에서 목회학을 공부하고, 칼빈신학교와 클레몬트신학교에서 상담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사역하고 있는 LA 동문교회에서 16년 동안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 이규섭 목사는 분쟁으로 교회가 몸살을 앓았던 자신의 목회 경험을 떠올리며, 하나님이 자신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역할을 주문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목사는 "이제 하나 되는 일만 남았다. 진정 하나 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퀸즈한인교회의 상황이 만만치 않다. 2대 담임이었던 고성삼 목사는 "아무리 노력해도 효율적인 사역이 이뤄질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계속해서 싸울 수 없으니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며 부임한 지 3년 만에 교회를 떠났다. 분쟁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는 퀸즈한인교회에 부임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냐고 이 목사에게 물었다. 그는 목회하면서 겪었던 일을 털어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16년 동안 목회하면서 두 번의 큰 어려움이 있었다. 목회를 시작해서 부임한 곳이 분쟁으로 갈라진 교회였다. 장로 2명에 교인이 고작 10여 명 남은 교회였는데, 교인들끼리 반목과 갈등이 심했다. '우리 교회가 왜 망한 줄 아느냐'며 서로 손가락질했고, 당회만 하면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 그때마다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많은 눈물을 뿌렸다. 그 장로님들이 결국 회개하고 서로 화해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면서 교회도 더욱 견고해지고 안정됐다."

"8년 전에 또 한 번의 어려움이 있었다. 부목사와 교인들 중 일부가 교회를 쪼개서 바로 앞에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교회와 나를 향해 비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당시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그 때 그 교회를 비난하는 대신 축복하자고, 싸우지 말자고 교인들을 설득했다. 그 교회는 1년 반 만에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없어졌고, 그 교회에 다니던(나를 반대하던) 안수집사 한 명이 교회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다시 교회에 나오라고 삼고초려를 한 적도 있다. 그분은 결국 다시 돌아왔고, 나와 더 없이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어려움을 겪으면서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배운 교훈도 많았고, 체득한 목회 철학도 있다는 것이 이 목사의 말이다. 또 그런 목회 철학을 퀸즈한인교회에서도 적용하는 것이 이 목사의 바람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깨달은 것이 '열 생명 얻는 목회를 하지 말고, 한 생명 잃지 않는 목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회를 진행할 때도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결코 시행하지 않는다. 한 사람씩 의견을 말한 뒤 반대 의견이 나오면 다음 달로 안건을 넘긴다. 모두 동의할 때 시행한다. 그러니까 불협화음이 없다. 뒤돌아보면 시간이 더 걸려서 그렇지 못한 일은 거의 없다."

"또 비본질적인 것은 100% 양보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교회(LA 동문교회)는 '위원장회의'라는 것이 있다. 의결 기관이 아니라, 일종의 사역 회의 기관이다. 담임목사는 참석하지 않고 수석부목사가 사회를 본다. 각 부서 위원장이 모여서 교회 살림이나 행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의논하는 자리다. 농구대를 살 건지 말 건지, 이번 행사 찬양대 지휘는 누가 할 건지 등을 의논하는 자리다. 당회에서는 주로 교회의 큰 방향을 결정하거나, 기도회를 하는 시간으로 사용한다."

질문의 범위를 좁혔다. 청빙하는 과정에서 퀸즈한인교회 당회와 마찰도 있었고, 퀸사모로 불리는 일부 교인들은 기존 당회를 반대하며 당회에 복귀를 시도할 텐데, 퀸즈한인교회에 당면한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지 물었다.

"가자마자 무리하게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거다. 적응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 이민 교회에 맞게 변형된 제자훈련을 도입해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교회가 안정을 찾아가도록 돕겠다. 건강한 교회는 그늘이 없어야 한다. 소외 되는 사람이 없도록 살필 것이다. 또 일꾼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일꾼을 더 세울 생각이다. 퀸사모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사실 우리 모두가 퀸사모가 아닌가."

개척해서 16년 동안 이끌어온 동문교회를 사임하고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배경과 동기에서 퀸즈한인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는지도 물었다. 

"언젠가 한 번은 교회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교회를 개척해서 지금까지 사역했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서나 나 자신을 위해서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목회 인생을 30년으로 잡았을 때 지금이 딱 절반에 해당되는 시기다. 때문에 몇 년 안에 교회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작년에 뉴욕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도 이 목사는 지원했었다. 이번에 다시 퀸즈한인교회 담임목사 청빙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 목사는 공교롭게도 뉴욕에 있는 교회들에 지원하게 됐다며 과정을 설명했다.

"뉴욕장로교회는 같은 교단에 소속된 교회였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지만, 당시 동문교회의 사정상 당장 부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실 퀸즈한인교회는 전혀 모르는 교회였다. 오히려 한국에서 관심을 보이는 교회들이 있었기에 한국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퀸즈한인교회에도 관심을 가져 달라는 제안이 왔고, 기도하면서 지원하게 됐다. 퀸즈한인교회는 뉴욕장로교회보다 더 열악하고 어려운 교회지만 더 마음이 쓰였다. 평소에 설교하면서 우는 경우가 드문데, 퀸즈한인교회에서 설교할 때는 하나님이 애통하는 마음을 주시더라. 얼마나 눈물이 나오던지. 나도 울고 교인들도 울었다."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소속인 이 목사가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퀸즈한인교회에 부임하게 되면서 이 목사가 교단을 탈퇴할 것인지, 아니면 퀸즈한인교회를 교단에 가입시킬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다.

이에 이 목사는 "교단 소속이 없는 교회로 부임할 경우 목사가 교단을 탈퇴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물론 임원 같은 역할은 맡을 수 없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교단을 떠날 생각은 없다. 퀸즈한인교회가 교단에 가입하도록 내가 고집할 이유는 없지만, 교인들이 원하면 가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