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삶에 가치를 불어주고 떠난 손님
주인의 삶에 가치를 불어주고 떠난 손님
  • 김종희
  • 승인 2008.10.1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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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이민자의 아픈 현실 담은 영화 [ the Visitor ]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체력도 문제지만, 지루함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는 한국을 거쳐서 인도까지 다녀와야 했다. 오가는 길을 모두 합하면 비행기 안에서만 족히 48시간은 넘게 지내야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실질적인 준비가 필요했다. 아이들이 즐겨 보는 Portable DVD Player를 살살 꼬드겨서 빼앗았다. 배터리 하나로는 몇 시간 못 버틸 것이 분명해 100불이 넘는 배터리를 급히 하나 더 주문했다. Fox에서 방영되어 한때 인기를 끌었던 '24 시리즈'를 챙겼다. 내용은 좋은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보다는, 내용은 형편없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들어줄 영화가 필요했다. 폭력성을 조장한다면서 Fox를 비판했지만, 지금은 그저 고맙기만 하다.

자리에 앉은 다음 기대는 거의 하지 않은 채 기내 영화 목록을 살펴보기로 하고 리모컨을 돌렸다. 'the Visitor'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제목인 걸로 봐서 개봉되었어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워밍업 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한 번 더 봤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봤고, 두 번째는 스토리를 메모하면서 봤고, 세 번째는 느낌에 무게를 두면서 봤다. '24 시리즈'보다 훨씬 재미가 없는데도 비행기는 어느새 알래스카를 한참 지나고 있었다.

게으르고 무능하고 냉정한 경제학 교수

   
 
  ▲ 피아노를 배우다가 중간에 포기한 월터 베일 교수는 타렉에게서 북을 배웠다.  
 
커네티컷에 있는 한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월터 베일은 20년 동안 한 과목만 가르쳐왔다. 학생이 며칠 늦게 제출한 과제물을 야멸치게 퇴짜 놓은 그는 정작 학기가 시작됐는데도 강의 계획표를 제출하지 않았다. 2006년 강의 계획표에서 ‘6’자를 지우개로 지우고 ‘7’자를 써넣는 장면은 20년 전 대학 다니면서 봤던 한국 교수의 모습과 똑같았다. 세미나에서 논문을 발표하라고 하자 책을 저술하는 일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강연을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아예 책을 쓸 계획도 없었고, 논문도 남이 쓴 것에 자기 이름을 슬쩍 얹었을 뿐이었다. 인간성을 보나 실력을 보나, 무엇 하나 온전히 갖춘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뉴욕 맨해튼에 작은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맨해튼에 온 그는 자기 아파트에 두 명의 낯선 사람이 자기 허락도 없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리아 출신의 타렉이라는 남자와 세네갈 출신의 자이나부라는 여자는, 좋게 말하면 손님(the Visitors)이고 정확하게 말하면 불법 침입자였다. 월터의 집에서도 그렇지만 미국 땅에서도 그랬다.

이들은 비록 불법 체류자이기는 해도 악당이나 테러리스트는 아니었다. 친구에게 속아서 이 집에 들어온 이들도 사실은 피해자였다. 월터에게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거리로 나간 두 사람은 오늘 당장 머물 방조차 구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다. 그 모습을 본 월터가 집을 마련할 때까지 자신의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다. 커네티컷과 맨해튼의 물이 다른 것일까. 불성실한 학생에게 냉정하던 그가 침입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모습이 전혀 안 어울려 약간 당황했다.

월터가 외출하고 아파트에 돌아오니 타렉이 팬티만 입고 북을 치고 있었다. 타렉은 그런 자세로 연습하는 것이 습관이라고 했다. 한동안 피아노를 배우다가 포기했던 월터는 타렉이 치는 북 소리를 귀 기울여 들었다. 야외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은 월터는 플라스틱 드럼통을 뒤집어놓고 뚜들기는 거리의 흑인들 주변에 머물렀다.

하루는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월터는 타렉의 북을 조심스레 쳐보았다. 때맞춰 집에 돌아온 타렉이 북 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다리를 살짝 벌리고, 북을 안듯이 양 무릎 사이에 끼어 넣고, 안쪽 아래를 살짝 들어 올려 고정시키도록 했다. 리듬에 맞춰 북을 가볍게 툭툭 치라고 했다. 북은 머리로 치는 게 아니니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뻣뻣하더니 이내 자세가 부드러워지고 손동작도 리드미컬해졌다. 얼굴 표정도 풀렸다. 신이 난 둘은 함께 북을 쳤다.

월터는 혼자서도 꾸준히 연습했다. 둘은 북을 둘러매고 공원으로 나갔다. 타렉은 흑인들 틈에 끼어 신명나게 북을 쳤다. 처음에는 쭈빗거리던 월터도 합류했다. 양복을 입고 북을 치는 백인은 월터가 유일했다. 한바탕 난장이 벌어졌고, 월터도 거기에 완전히 몰입했다. 얼마나 혼을 빼놓고 북을 쳤는지 손바닥이 얼얼했다.

   
 
  ▲ 평생 동안 말 한마디 걸 이유가 없을 것 같던 다양한 이방인들 속에서 함께 북을 치고 있는 양복 입은 백인 교수.  
 
음악을 사랑하는 시리아 출신 타렉과 늘 불안에 쫓기는 세네갈 출신 자이나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경찰이 불심검문을 했고, 타렉은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두 개의 북을 짊어지고 혼자 집에 돌아온 월터는 타렉의 애인 자이나부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자이나부는 평소 불안해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며, 미래에 대한 불길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타렉은 퀸스에 있는 이민관리국 구치소에 수감됐다. 월터는 타렉을 꺼내기 위해 이민 전문 변호사까지 고용했다. 면회를 할 수 없는 자이나부를 대신해서 월터가 면회했다. 수백 명의 불법 체류자가 여기에 구금되어 있었다. 생뚱맞게도 자유의 여신상 그림이 ‘미국의 힘, 이민자들’이라는 문구와 나란히 벽에 붙어 있었다. 월터는 "지금 커네티컷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너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타렉은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얼마나 연습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둘 사이를 가로막은 두꺼운 유리창에서 유일한 소통 도구는 전화기뿐이다. 월터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테이블을 북처럼 쳤다. 타렉은 한 손으로 수화기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자기의 심장을 가볍게 두들겼다. 이런 모습을 ‘심심상인’(心心相印)이라고 한다.

불길함은 여성 고유의 모성적 본능에서 나오는 직감 중 하나일 게다. 타렉의 애인 자이나부뿐만 아니라 타렉의 어머니 모나도 내내 불안에 떨며 살아왔다. 미시건에 살고 있는 모나는 며칠 동안 연락이 끊긴 아들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음을 감지하고 아파트로 찾아왔다. 월터와 모나는 함께 구치소를 가지만 이번에도 월터 혼자 면회할 수밖에 없었다. 월터는 이미 갇힌 자와 아직 안 갇힌 자 사이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구치소에 수감된 아들을 놓고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모나는 아들의 집(사실은 월터의 집이지만)에 기거하게 되었다. 그래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야만 했다. 미국에 망명 신청한 것이 거부되어 추방 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 모나는 그 통지서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9년 동안 불안감에 휘감긴 채 살아왔다. 타렉의 추방은 불가피해 보였다.

모나는 자이나부에게 아들과 함께 다녔던 곳을 안내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맨해튼과 스태튼 아일랜드를 오가는 배를 탔다. 가까이서 자유의 여신상이 보였다. 타렉이 자유의 여신상 바로 밑에서 폴짝폴짝 뛰었다고 회상하면서 함께 웃었다. 즐거웠던 과거에 대한 회상은 고통스런 미래를 암시하는 법. 그러나 고통 가운데서도 사랑이 싹트고, 희망이 샘솟기도 하는 법.

단정하고 침착한 모나에게 월터는 시나브로 마음을 빼앗겼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지만 월터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는 한참 늦게야 학교로 돌아갔다. 몸은 커네티컷에 있지만 마음은 타렉과 모나에게 가 있었다. 타렉이 준 타악기 연주 CD만 듣고, 식사를 하면서도 몸을 흔들고, 운전을 할 때도 손바닥은 연신 핸들을 두들겨댔다. 한밤중에 팬티만 입고 북을 쳤다.

맨해튼에 돌아온 월터는 구치소로 면회를 갔다. 추방을 앞두고 이송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난 죄를 짓지 않았어. 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이 안에는 테러리스트는 없어.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만 있다고. 난 음악만 하면서 살고 싶어.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이야". 타렉은 절규했다. 어디로 이송될지도 알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은 모나는 "시리아랑 똑같군" 하고 개탄했다.

   
 
  ▲ 비록 유리창이 눈에 보이는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지만, 그들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우정과 신뢰는 막을 도리가 없다.  
 
모나와 월터의 순수하고 맑은 사랑

그 와중에 월터는 모나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타렉이 생일 선물로 사준 오페라의 유령 CD를 즐겨 듣고 웬만한 가사는 다 외운다고 자랑했던 것을 월터는 기억하고 있었다. 브로드웨이에 가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우산 하나 받쳐 든 채 비 오는 거리를 걷고, 식당에서 와인을 마시며 건배를 했다.

그는 모나에게 자신의 허상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겉으로는 바쁜 척하지만, 실은 책도 안 쓰고 가르치는 일도 무의미하게 여기는 자신을 고백했다. 다음 학기를 쉬기로 했다. 무엇을 할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불안하기보다는 되레 가슴이 설레었다.

이송됐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구치소로 달려간 월터. 구치소 직원들은 사뭇 딱딱하게 반응했다. 화가 난 월터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도 사람이다. 착한 사람이야.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 구치소에 들어와서 월터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온 모나는 택시 안에서 "타렉이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흐느끼며 월터 품에 안겼다. 모나는 시리아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월터는 미안함을 감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날 밤 모나는 월터의 침대에 들어왔고, 월터는 모나를 따뜻하게 안아서 위로해주었다.

계절은 겨울로 바뀌었고, 월터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월터는 북을 매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맨해튼 거리를 가로질러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타렉은 전에 지하철역에서 연주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월터가 타렉 대신 그 자리에 앉았다. 지하철이 굉음을 질러대면서 들어오고 나갔다. 요란한 굉음 사이로 슬픔이 가득 담긴 경쾌한 북 소리가 새어나오면서 영화는 끝났다.

   
 
  ▲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함께 보는 월터와 모나. 월터에게 북을 가르쳐준 타렉. 이런 손님들로부터 월터는 사랑을 배워나간다.  
 
미국의 주인인 월터가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미국의 손님들(the Visitors)은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월터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그 손님들은 월터의 삶에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불어넣어주고 떠나간 셈이다.

한국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아침 일찍 인도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 비행기에는 좌석에 개인 DVD Player가 없었다. 전면에 설치된 커다란 화면에서 월터와 모나와 타렉과 자이나부가 다시 보였다. 헤드폰을 끼지 않았는데도 북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구치소에서 월터가 테이블을 치자 타렉이 심장에 손을 얹었을 때의 느낌처럼, 왼쪽 가슴에 손을 대어보니 북 소리에 맞춰서 내 심장도 살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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