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숙이는 우리 모두의 아픔입니다'
'향숙이는 우리 모두의 아픔입니다'
  • 이현준
  • 승인 2008.11.19 22: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전한 예배와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된 계기

미국과 북한 관계가 좋지 않은 시기에 떠난 이번 방북 여정을 많은 분이 걱정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짧은 기간, 북한·중국·대한민국 그리고 미국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비교했고, 또 많은 분을 만났습니다. 북한 동족의 고통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과 아픔은 2000년부터 제 가슴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당시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찬양 예배를 준비하던 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아모스 5장 22~23절이었습니다.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찬양 예배를 준비하는 저에게 하나님은 그만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민하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은 고형원 전도사님이 만든 '그날'이라는 찬송을 주셨고, 그저 '귀'로 듣기만 했던 북한 동족들의 상상 못할 고통과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셨습니다.

그때부터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예배와 찬양을 온전히 드릴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경배와 찬양이란, 그분의 심정을,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줄 아는 '자녀'들만이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온 세상 향한 유일한 소망, 하나님의 손과 발인 교회와 교인들이 아니면, 정말 이 세상은 소망 하나 없다는 것을. 교회와 교인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유일한 '대책'이라는 것도.

   
 
  ▲ 아빠와 할아버지와 사는 향숙이는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는 너무도 예쁜 8살짜리 여자 아이입니다. (사진 제공 : 기윤실)  
 
2003년 기윤실 유용석 장로님과 함께 북방 선교 여정을 처음 다녀왔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나님은 충분히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참으로 미약하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나누는 귀한 일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음은 저에겐 진정 축복입니다.

2005년 평양을 8일 동안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행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찬양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세 번째 여정.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북녘 땅, 내 동족들, 5년 만에 다시 가는 길, 제 눈에는 나진과 선봉의 겉모습은 그리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안내원 동무는 10여 년 전 고난의 행군 이후 요즈음이 제일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전에 비해 길거리에 나와 앉아있는 분들은 줄었고, 저희와 함께 북한 국경을 지나는 중국 사람(조선족)들은 다 쌀 한 부대씩을 안고 들어갑니다. 중국은 최근 곡물 파동 이후 모든 곡물의 북한 유입을 중지했습니다. 그래서 동족의 궁핍은 더 심각해진 듯합니다. 한 사람에 한 부대씩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쌀(약 10kg)은 아마도 북한 시장에선 '큰돈'에 팔리는 것 같습니다.

중국인들의 보따리 장사로, 오히려 평양보다 '물건'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나선(나진 선봉 시)의 장마당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확장되어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싱싱한 수산물(게)도 몇 마리 샀는데, 미국에 비하면 무척 싼 값이었지만 우리 동족이 사 먹을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거의 모든 물건은 ‘Made in China’였고, 말도 안 되는 환율 차이로 인해 중국 돈은 북한에서 엄청난 가치를 발휘했습니다. 마치 과거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돈 가치를 즐기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익숙하게 외부인을 따라다니면서 밥 사먹을 돈을 애청하는 아이들에게, 눈에 띄지 않게 슬쩍 돈을 준 것도, 5년 전엔 얼어서 단 한 푼도 주지 못했던 미안함 때문이었습니다.

국가 사이는 '적대 국가'로 되어 있지만, 정작 동족을 돕는 일의 대부분(?)은 미국 출신의 NGO, 선교부, 교회와 교인들이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분명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한 것은 '진실'입니다. 진심으로 하는 사랑의 손길 말입니다. 섬김의 마음은 어느 누구도, 어떤 사상도 체계도 막을 수 없습니다.

기윤실 유 장로님을 통해서, 그분과 함께 일하는 분들을 통해서, 그리고 북녘 땅 동무들과 동지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을.

이번 여정을 떠나는 길에 '북한'을 왜 돕느냐고, 차라리 굶겨 죽도록 내어버려둬야 한다는 망발을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행여나 그 불이익이 자신들에게 돌아올까 해서 불편해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북한을 돕은 건 힘이 들어 도움이 필요한 내 이웃을 돕는 것입니다.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 곁을 지나쳤던 제사장과 서기관처럼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당신들은 그저 못 본채 애써 고개 돌리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종교꾼'인 당신들은 정말 '그날'을 어떻게 맞이하려고 합니까. 저는 되레 묻고 싶습니다.

찬양을 드리며,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아픔'을 함께 나누노라면 정말 놀라는 일이 있습니다. 성도의 무관심, 교회의 무관심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무관심은 죄입니다. 미움도 죄이지만 '무관심'도 죄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서 4장 17절)

   
 
  ▲ 오직 하나님밖에는 이 아이들을 '돌볼' 분이 없으니까, 이런 아이들을 포함해 조선족 자녀들에게 주는 '태환 장학금'은 그래서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장학금 수여식 모습. (사진 제공 : LA 기윤실)  
 
이번 여정 중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한 아이를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향숙'입니다. 이향숙. 엄마는 탈북자였습니다. 아빠는 가난한 조선족 남자입니다. 엄마는 3년 전 북한으로 끌려가 소식이 없고, 아빠는 중풍을 맞아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합니다. 향숙이를 지극 정성 돌보시던 할머니마저 2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아빠와 할아버지와 사는 향숙이는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는 너무도 예쁜 8살짜리 여자 아이입니다.

제가 섬기는 찬양 공동체의 한 집사님이 향숙이를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씩 일을 진행하려고 하는 가운데, 이번에 향숙이를 세 번째 만났습니다. 탈북자를 엄마로 둔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엄마들은 거의 다 없습니다. 북으로 갔던지, 아니면 남한으로 가버렸습니다. 아직까진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세걸이·향매·옥경이 그리고 향숙이. 가슴에서 이 아이들을 향한 축복의 간구가 나옵니다.

오직 하나님밖에는 이 아이들을 '돌볼' 분이 없으니까, 이런 아이들을 포함해 조선족 자녀들에게 주는 '태환 장학금'은 그래서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어느 누구하나 제대로 관심 기울여주지 않는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만찬을 베풀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일은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장학금 전달식을 마친 뒤, 저는 잊을 수 없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순진함이 있었습니다.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이 거의 모두 와서, 장학회 이사들(목사님들과 유 장로님)에게 감사의 말을 하면서, '잔'을 채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물과 주스를 한 잔씩 받아 마시면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아이들, 아직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의 아이들이 정말 예뻤습니다.

향숙이를 보면서 우리 모두의 아픔을 느꼈습니다. 이 시대 아픔, 분단된 조국의 아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아픔입니다. 인간들이 만든 체제와 이념과 나라가 준 '생이별'의 슬픔과 고통, 가난의 환경이 주는 고단함과 슬픔.

언제나 끊임없이 저들과 함께 슬픔과 고통, 아픔을 '함께하는' 손길이 있도록 소망합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손과 발'입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위로하셨고, 도우셨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수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이고,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저들을 통해 동족들은 위로를 받고, 도움을 받고, 사랑을 받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조금씩 누룩 넣은 빵처럼 부풀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행하고 계십니다. 언제나 남은 것은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그 일에 나도 쓰임 받을 것인지, 아니면 '구경꾼'으로 남을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향숙이가. 빠른 시일 내에 입양되어 올 수 있도록 모두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Sola Gloria Deo.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