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때문에 내가? 나 때문에 예수가!
예수 때문에 내가? 나 때문에 예수가!
  • 김종희
  • 승인 2008.11.2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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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목사의 목회 칼럼 '두 개의 무신론 광고'를 읽고

   
 
  ▲ American Humanist Association이 워싱턴 DC 일대를 운행하는 로컬 버스에 무신론을 주장하는 광고문을 게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얼마 전 버지니아에 있는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가 교회 홈페이지에 '두 개의 무신론 광고'라는 제목으로 목회 칼럼을 썼다. 칼럼 제목 그대로, 무신론 관련 단체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무신론을 주장하는 광고를 보고 쓴 글이다. 김 목사는 무신론 운동이 이제는 하나의 종교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이 기독교의 본질을 오해하고 왜곡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당사자 허락을 받지 않고 칼럼 전문을 게재하는 것이 몹시 죄송스럽지만, 평소 친분은 이럴 때 악용하라고 쌓아놓는 법.

                                                        '두 개의 무신론 광고'

얼마 후, 와싱톤 부근을 운행하는 지하철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나붙을 것이라 합니다. “Why believe in a god? Just be good for goodness' sake”(왜 신을 믿는가? 그냥 선을 위해 선해지십시오.) 신으로부터의 보상을 바라고 선행을 하려 하지 말고, 선 자체를 위해 선행을 하자는 뜻입니다. 이 광고는 전미 무신론자 협회(American Humanist Association)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영국에도 유사한 단체가 있습니다. British Humanist Association이 그것인데, 이 단체에서는 이미 런던 시내의 버스에 다음과 같은 광고문을 붙였다고 합니다. “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아마도 신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을 버리고 인생을 즐깁시다).

이 광고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무신론 운동이 이제는 하나의 종교가 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근에 베스트셀러로 팔린 몇 권의 무신론 변증서로 인해 무신론 운동이 큰 힘을 얻은 것 같습니다. 이 협회가 머지않아 종파와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신을 믿지 않는 것도 하나의 믿음입니다. 과연 이 믿음이 무신론 변증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하고 인류를 더 복되게 할지, 잘 관찰해 볼 일입니다.

둘째, 기독교만 두고 말하자면, 이 두 광고는 기독교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축복을 미끼로 하여 선행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오해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물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만,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과 다릅니다. 기독교가 선행을 가르치고 격려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본성이며 또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선하게 사는 것이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모두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보상을 바라고 선행을 하지 않습니다.

셋째, 영국 무신론자 협회의 광고는 기독교의 본질을 더욱 왜곡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심판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강조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의롭고 선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심판에 대해 말씀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위협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의 능력으로 선하게 살도록 격려하셨습니다.

넷째, 영국 무신론자 협회의 광고가 보여주는 가장 치명적인 오해는 종교가 인생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인식입니다. 종교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구속하여 불행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이 오해합니다. 물론, 기독교가 그렇게 왜곡된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본질은 인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하게 하는 것에 있으며,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속되는 것이 진정으로 자유 하는 길이며,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이 진실로 인생을 만끽하는 길입니다.

미국과 영국의 무신론자들이 알지도 못하고 목소리를 높여 외치는 것을 보려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작년에 미국의 기독교 전문 여론조사 기관인 바나 그룹에서 책을 하나 냈다. < unchristian >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나쁜 그리스도인>(살림)으로 번역되어 올해 나왔다. 이 책은 비기독교인이 기독교인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3년 동안 전국적으로 10번도 넘게 설문조사를 하고 심층 인터뷰를 한 것을 분석해서 정리한 일종의 보고서다. 특히 20대 중반 이상 젊은이들의 반응에 무게를 두고 연구했다.

그랬더니 대충 여섯 가지로 기독교인에 대한 인상이 그려졌다. '기독교인은 위선적이다, 지나치게 전도에 집중한다, 동성애를 혐오한다, 안일하다, 정치적이다, 타인을 함부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좋은 점은 당최 보이지가 않는다. 영어로 된 책을 볼 때는 "미국 기독교인들 아주 개판이군" 했는데, 우리말로 된 책을 보니까 "한국 기독교인들 아주 아수라판이군" 싶다. 책을 보면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현실을 보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처럼 리얼하다.

   
 
  ▲ 왼쪽은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전문 여론조사 기관인 바나 그룹이 '비기독교인이 기독교인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는지'를 3년간 조사해 분석한 보고서 < unchristian >이고, 오른쪽은 우리말로 번역된 <나쁜 그리스도인>이다.  
 
만약 김영봉 목사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칼럼을 쓴다면 무신론자들의 광고문을 보고 나서 쓴 앞의 칼럼과 논조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고, 본질을 왜곡하고 있고, 이로 인해 가슴이 답답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책도 설마 무신론 운동에 기여하기 위해 출판된 건 아니겠지? 한국에 워낙 음모론이 판을 치다 보니까, 그거 비판하다가 나도 모르게 음모론의 늪에 빠져버린 것 같다.

김영봉 목사의 칼럼을 읽은 소감 세 가지. 첫째, 칼럼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둘째, 전반전만 끝내고 후반전은 시작도 안 했네, 셋째, 고약하다.

첫 번째 얘기는 반복할 필요가 없겠다. 두 번째 얘기를 하려니 짧은 한 편의 칼럼을 두고 별 걸 다 주문한다고 사방에서 핀잔이 날아올 것 같다.

김영봉 목사는 무신론자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나의 의문은 간단하다. 무신론자들만 이렇게 오해를 하고 왜곡하고 있을까. 이들은 왜 기독교를 오해하고 왜곡하고 있을까. 오해와 왜곡의 책임이 무신론자들에게 있을까.

만약 무신론 변증가들이 기독교의 근본 교리라고 일컫는 것들, 가령 천지창조, 예수 동정녀 탄생과 죽음과 부활과 재림, 종말과 내세 같은 것들을 들고 나와서 무신론을 주장한다면 "쟤들은 우리가 아무리 설명해도 들을 맘이 전혀 없어" 하고 포기할 수도 있다. 다원주의자들에게 기독교의 유일신 교리가 통할 리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김영봉 목사가 칼럼에서 설명한 내용들은 모두 우리 스스로가 기독교의 본질을 오해하고 왜곡하고 거기에 맞춰 그렇게 살고 있는 것들이다. 기독교의 본질을 지키고, 그것을 따르고, 그러다가 오해를 받는 것이 아니다.

무신론자들의 오해와 왜곡은 결과일 뿐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이 여기에 들어맞을 것 같다. 굴뚝에 연기 나도록 군불은 누가 땠을까. 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부채질은 누가 했을까. 바로 우리다. 우리가 기독교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다. 우리가 기독교의 본질을 단단히 왜곡시켰다. non-christian이 범인이 아니다. unchristian,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예수 믿는 자의 모습을 도무지 갖고 있지 않은 예수쟁이들이 범인이다. 원래 예수에 단단히 미쳐서 예수의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붙이는 '예수쟁이'가 여기서는 '나쁜 그리스도인', '고약한 그리스도인'으로 변질되었다. 누가 변질시켰나. 남이가, 우리 자신이가?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예수 때문에 욕을 먹고 있는가, 예수가 우리 때문에 욕을 먹고 있는가.' 막말로 예수가 자기 스스로 한 말과 행동 때문에 욕을 먹고 구타를 당하고 가래침을 받는 거야 우리가 어쩌겠나. "무너진 성전을 삼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느니 "내가 하나님 아들이다"느니 하는 말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 그건 자업자득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애먼 우리가 욕을 먹는다면, 어떤 이는 억울하게 여길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자랑스레 여길 수도 있다. 근데 예수가 하지도 않은 말을 마구 해대고 예수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마구 저질러대니, 뻘짓 하는 우리 때문에 예수는 얼마나 억울할까.

기독교의 본질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무신론자들을 볼 때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가슴이 찢어지고 속이 터질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고약하다. 김영봉 목사는 전반전만 뛰고는 벤치로 들어와버렸다. 쉬는 시간이 끝났는데도 운동장이 조용하다. 관중석에 앉아서 후반전을 기다리던 나는 급한 성질을 짓누르지 못하고 운동장으로 뛰쳐나왔다. 유니폼도 안 입고, 준비 운동도 전혀 안 했다. 전반전에 뛴 선수는 적의 골문을 향해 열나 발길질을 했는데, 후반전에 나온 선수는 우리 편 골문에다 대고 졸라 발길질을 해대고 있다. 김 목사는 아마 성질 급한 내가 알아서 운동장으로 달려나가서 뻘짓을 할 거라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성질 급한 놈만 욕먹는 게 세상 이치다. 어찌 아니 고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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