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愚公)들의 삽질은 새해에도 계속된다
우공(愚公)들의 삽질은 새해에도 계속된다
  • 김종희
  • 승인 2008.12.25 2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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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막으려고 촌지 주는 목사…기사 나온 교회 도움 주는 목사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옛말이 있다. 노인네가 자기 집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옮기려고 한 삽 두 삽 부지런히 삽질을 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산을 옮겨주셨다는,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것은 신영복 선생의 글과 그림이다.  
 
자기가 쓴 기사 하나로 세상을 단박에 바꿀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면 과대망상증에 걸린 기자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아무런 변화도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를 모르는 무익한 기자임에 틀림없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옛말이 있다. 노인네가 자기 집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옮기려고 한 삽 두 삽 부지런히 삽질을 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산을 옮겨주셨다는,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 산을 옮긴다”는 성경 구절을 읽으면 이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산을 옮기는 믿음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하고 싶다.)

‘우공’(愚公)이라 하지 않았나. 남들 보기에는 어리석은 노인네에 불과하다. 그렇게 삽질해서 언제 산을 옮기냐고 비웃음을 받는다. 멀쩡한 산을 왜 파헤쳐서 세상을 지저분하게 만든다고 빈정거림을 당한다. 다들 ‘화평하다, 화평하다’ 하면서 호화 생활을 하는데, 혼자서 ‘이러다 망한다, 이러다 망한다’ 하고 떠들다가 욕만 실컷 얻어먹은 구약 성경의 옛 예언자들도 우공(愚公)들이었으리라. 기자도 어리석은 노인네(愚公)가 삽질하는 자세로 한 자 두 자 기사를 써나가야 하는 존재가 아닐까.

기자질은 칭찬보다는 욕을 많이 먹고, 환영보다는 눈총을 많이 받는 일임에 틀림없다. 아수라판 같은 곳만 취재하니 정서가 피폐해지기 십상이다. (딸랑이들을 기자라고 보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다.) 지쳐 나자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때로는 독자의 반응 하나가, 비록 그것이 단박에 산을 옮겨주지는 못할지언정 기자가 삽질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의 배후가 되어주기도 한다.

며칠 전 우리 기자가 뉴욕의 한 교회 문제를 취재했다. 취재해서 보고하면 다시 보강하라고 지시하기를 반복. 취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 기사를 못 쓰고 있다. “이 교회의 ㄱ 목사는 돈 문제에 있어서 깨끗하지 못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식의 기사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런 의혹이 있어서 취재해보니까 사실이더라”, 이런 기사가 우리에게 어울린다. 그러다 보니 사실 확인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당연히 당사자 목사를 만났다.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 기자에게 ㄱ 목사가 두둑한 봉투 하나를 쥐어주었는데, 그걸 돌려주고 나왔다고 한다.

우리가 쓴 기사에 어느 독자가 “먼저 뉴스앤조이부터 돈 문제에 법정까지 가는 추태를 회개해야지요” 하는 댓글을 달았던데, 솔직히 말해서 <뉴스앤조이>에 돈 문제는 정말 심각한 지경이다. 일하는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늘 돈이 없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근데 그런 문제로 법정까지 가는 추태를 벌이지는 않는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이번에는 그냥 피식 웃고 넘어가겠지만, 댓글이라도 근거도 못 대면서 허위 사실을 자꾸 퍼뜨리면 곤란하다. 이단들이 유포하는 낭설을 근거랍시고 들이댈 꿍꿍이는 알아서 거두시도록.)

돈 봉투를 거절하니 며칠 뒤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광고 협찬을 하겠단다. 호,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흠, 얼마짜리 광고를 제안할까. 예전에 30억 원 정도면 양심을 팔 의향이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으니, 30억 원을 제시할까.

알고 보니까 이런 식으로 먹고사는 교계 언론이 미국에도 제법 있다. (미국 언론 말고 한국 언론 말이다.) 딸랑거리는 기사 써준 다음 후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면 몽둥이질을 하더라. 실컷 딸랑거린 다음 후려치는 몽둥이는 뿅망치에 불과하다. 그렇게 먹고사는 존재를 생물학자들은 ‘붙어살이벌레’라고 하고, 일반인들은 ‘기생충’이라고 한다.

그 목사도 그런 기생충의 농간에 익숙했나 보다. 그런 식으로 로비할 돈 있으면 교회 재정이나 깨끗하고 투명하게 하시길 충고하면서 광고 제안은 사양하겠다. 다만 답례로 기사는 완성되는 대로 메인 화면의 머리기사로 예쁘게 올려주겠다.

기생충들끼리 공생하고 공존하는 방식을 동원해서 우리를 꾀는 것이 우리가 지치지 않고 기자질을 하는 힘이 되어주는 것은 아니다. “아, 저것들이 우리를 무서워하는구나”, 이런 걸 즐기면서 기사를 쓰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 '삽질하는 남자들'이라는 제목의 고흐 작품이다. MB가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고 '전 국민의 삽질화'와 '전 국토의 공사판화'를 추진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계속 삽질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은 다른 데서 나온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빈민가에서 사역하는 Andy Kim 목사 이야기를 얼마 전에 썼는데, 아직 기억들 하시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뉴욕에서 목회하는 ㄴ 목사를 만났다. 기자를 만난 ㄴ 목사는 기자에게 돈 봉투를 주지도 않았고, 광고하겠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내 밥값을 내주지도 않았다. 그럼 명색인 기자인 내가 밥값을 냈을라고?

(여기서 잠깐, 쉬어가는 코너. 기자랑 선생이랑 경찰이랑 목사랑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밥값은 누가 냈을까? 정답을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면 그동안 참 순진하게 산 것이고, 정답이 단박에 떠오르면 그동안 참 많이도 뜯기면서 살았겠다는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정답은 식당 주인이다.)

나는 ㄴ 목사랑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식당 주인이 계산했다. 그리고 계산서를 우리에게 들이밀었다. 계산은 식당 주인이 하고, 우리는 미국식으로 각자 자기 밥값을 냈다. 그러니 모든 목사와 모든 기자가 다 그 모양 그 꼴이라고 불신하지는 말기를.

목사랑 밥을 먹으면서 내 밥값을 내가 냈으니 영양가라고는 전혀 없는 점심을 먹은 셈이다. 하지만 진짜 영양가 있는 얘기를 들었다. ㄴ 목사는 자기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지들 중에서 한 군데를 추가해야 하는데, 내가 쓴 기사의 그 교회를 선교지로 지정해서 고정으로 후원하고 싶단다. 그리고 그 목사를 초청해서 사역 얘기를 듣고 싶단다.

ㄱ 목사가 머리를 조금만 더 잘 굴렸으면 ㄴ 목사와 같은 반응을 보였으리라. 그러나 마음이 깨끗할 리가 없으니 그런 머리를 굴릴 능력도 없을 것이 뻔하다. ㄴ 목사처럼 수준 높은 독자가 <미주뉴스앤조이>를 후원하지 않을 리가 없다.

ㄴ 목사가 그 교회를 후원한다고 해서 필라델피아의 번화가와 빈민가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높은 산이 낮아지고, 깊이 파인 골짜기가 메워지지는 않는다. 그 교회의 사역도 마찬가지고, 그 교회를 후원하겠다는 ㄴ 목사의 제안도 마찬가지고, 그 교회 기사를 쓴 기자도 마찬가지다. 다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진리를 묵묵히 실천할 따름이다. <뉴스앤조이>가 지난 8년이 넘도록 크게 흔들림 없이 기사 삽질을 한 힘이다. 헛똑똑이들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는 힘이다.

‘한 사람이 아홉 사람을 제치고 혼자서 열 걸음을 내달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미친 세상이다. 교회라고 해봐야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다. 오히려 남을 짓밟고 내가 올라서는 걸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속인다. 이런 미친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서, ‘아홉 사람과 함께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나만의 아홉 걸음을 과감히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몸소 실천하는 우공(愚公)들이 득실대는 <미주뉴스앤조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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