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왕자 이야기
막내 왕자 이야기
  • 백종국
  • 승인 2008.12.31 15: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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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부유한 나라에 강하고 지혜로운 왕이 살고 있었다. 이 왕은 아름답고 총명한 자녀들을 많이 두고 있었다.

왕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그의 자녀들이 백성들을 사랑하고 잘 이해해서, 자녀들이 백성들에게 지혜로운 통치를 베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은 그의 자녀들이 아직 철이 들기 전에 그들을 돌볼 하인 가족을 한 집씩 묶어서 각기 백성들 사이로 가서 살게 하였다.

그들의 신분은 극비 사항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이 왕의 자녀들인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어떠한 특권도 누리지 못하게 했으며 도리어 평균 이하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때가 되고 기한이 차면 다시 왕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동안 백성들 사이에서 겪었던 일들은 백성들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잘 다스리도록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었다. 왕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도 예외 없이 이 과정에 참여해야 했다.

하방(下方)의 삶은 여느 백성들과 다를 게 없었다. 모든 게 부족하고 도리어 더 불편했다. 특히 어리광만 부리다가 갑자기 하방을 당하게 된 막내 왕자는 더욱 힘들어했다. 더구나 어려서 백성들 사이로 들어왔기 때문에 궁궐에서의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백성들 사이에 살면서 어느덧 그들의 삶에 동화되고 있었다.

여느 백성들처럼 사소한 이익과 천박한 욕구에 휘둘릴 수도 있었다. 남이 가진 것과 나의 부족한 것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괴로워할 수도 있었다. 좀 더 나은 옷, 좀 더 맛있는 음식, 좀 더 멋진 집을 가지기 위해 남을 속이고 착취하거나 심지어 희생시킬 수도 있었다.

이 무명의 고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그는 다행히 대체로 그러지 않았다. 딱 한 가지 점에서 막내 왕자는 다른 일반 백성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련하지만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왕궁 생활의 기억이었다.

아련히 남아있는 그 기억은 그가 지금 보는 모든 것의 가치를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백성들이 좀 더 가지고자 비싼 값을 치루는 옷과 음식과 집들은 왕궁에서 공짜로 주어지는 것들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다름없었다.

좀 더 비싼 집과 좀 더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 왕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라는 거짓 주장도 그를 유혹할 수 없었다. 왕궁 보다 비싼 집이 어디 있으며, 왕자보다 높은 지위가 어디 있으랴.

욕망의 분출에 만사를 맡기면 왕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야망도 강하고 지혜로운 왕이 통치하고 있는 한 부질없는 것이었다.

막내 왕자의 관심사는 그를 다시 왕궁으로 부르실 왕의 마음이었다. 그가 나를 다시 부르실 것인가? 내가 과연 그의 부름에 합당한 자인가? 나는 그가 원하는 바 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그의 즐거움이야말로 곧 나의 진실한 즐거움이 아니었던가?

만일 내가 백성들에게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베풀기 위해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다면 능히 그 일을 감당하겠다는 마음만으로도 아버지는 기특하게 여기실 터이었다.

아직 어리고 철은 덜 들었지만 그 기억이 그가 취할 태도를 말해주고 있었다. 미래를 약속하는 과거의 기억이 그의 현재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 것도 특별히 주어지지 않았지만 막내 왕자는 그 기억 하나만으로 백성들 사이에 머무는 동안 삶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백종국 /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UCLA 방문교수), 한국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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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2009-01-03 08:58:36
설명 감사합니다. 평안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