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라는 피해 의식이 피의 보복을 부른다"
"약자라는 피해 의식이 피의 보복을 부른다"
  • 박지호
  • 승인 2009.01.1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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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시온주의자' 와스코우 랍비, “이스라엘은 무시무시한 잘못 저질러”

가자 지구에 폭격을 멈추고 휴전을 선언했지만 이스라엘을 노려보는 전 세계인의 시선이 여전히 매섭다. 스스로를 '좌파 시온주의자'로 규정하며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아더 와스코우(Arthur Waskow, 'The Shalom Center' 설립자) 랍비는 이스라엘이 “무시무시한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반전 운동을 이끌었던 그는 <뉴스위크>가 선정한 미국 사회에 가장 영향력 있는 랍비 50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지난 1월 13일부터 17일까지 필라델피아에 열렸던 ‘Peace Gathering'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함께 집회에 참석했던 허현 목사(LA 이음교회)가 통역했다. 

   
 
  ▲ 아더 와스코우(Arthur Waskow) 랍비는 유대인 평화 운동 단체인 'The Shalom Center' 설립자다.  
 
와스코우 랍비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전쟁으로 통제하려는 이스라엘 정부의 욕심이 가장 큰 잘못이라고 진단했다.

"스스로를 피해자 내지 약자로 규정하는 사람이 엄청난 힘을 가졌을 때,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를 가져온다. 바로 이것이 가장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인데,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그런 존재이며, 이번 전쟁이 그런 상황이다."

와스코우 랍비는 이스라엘 정부가 가진 피해 의식과 두려움에 주목했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힘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조차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막강한 경제력과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고 있다. 와스코우 랍비의 이런 지적에는 자신이 강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무력을 일삼는 이스라엘을 향한 따끔한 비판과 함께 역사적인 상처로 인해 여전히 두려움에 갇혀 있는 이스라엘 사회를 향한 안쓰러움이 담겨 있다.

"미국이 9·11 이후에 겪었던 것을 생각해봐라. 이스라엘은 그보다 훨씬 심한 일을 지난 60년 동안 겪었다. 그들은 여전히 두려움과 악몽에 사로잡혀 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사태가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공포감, 언제든 다른 중동 국가들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모든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공격하는 것이다."

우파 유대인들로부터 "꼴도 보기 싫다", "너는 유대인도 아니다", "역겹다"는 등 수없이 많은 협박 편지와 전화를 받아왔지만, 와스코우 랍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회를 향해 쏟아지는 일부 비난에 대해선 입을 열어 변호했다. 불과 수십 년 전에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또 다른 차원의 홀로코스트를 저지르는 것 아니냐는 비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히틀러가 저지른 홀로코스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홀로코스트는 나치가 애초부터 인종 청소를 할 작정으로 저지른 일이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를 위협하고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인종 청소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이스라엘을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하면 모를까.”

그는 이스라엘 정부와 일반적인 유대인들을 동일하게 여기는 시선도 경계했다. 미국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 중 대다수는 자신의 생각에 반대하겠지만, 평범한 유대인의 3분의 2는 자신의 의견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정부를 이스라엘 국민들이나, 미국에 있는 유대인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 정부가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을 미국 시민이 다 동의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정부가 잘못하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비판과 직결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 와스코우 랍비는 이스라엘을 정부와 사회로 나눠서 설명했다. 정부를 향해선 비판을 가했지만, 후자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선 해명했다.  
 
와스코우 랍비는 이스라엘 정부와 사회를 동일시하면서 비판할수록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스라엘 정부와 사회가 더 강하게 결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사회에도 크게 세 가지 부류가 있다고 말했다.

"시온주의자라고 똑같은 건 아니다. 첫째는 우파적 시온주의자다. 가자 지구에 대한 폭격을 정당하게 여기고 무력 침공을 지지하는 부류다. 이들은 유대인이 강력하게 통치하는 영토와 국가를 원한다. 둘째는 좌파적 시온주의자다. 이들에게 국경은 무의미하다. 팔레스타인과 유대인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원한다. 셋째는 포스트 시온주의자다.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는 것이 시온주의의 목표였고, 그 목표가 달성이 됐기 때문에 새로운 과제를 모색하자는 그룹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갈등을 피해 의식에 의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던 그는 양쪽의 안전을 보장해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제안했다. 와스코우는 미국을 비롯한 유엔과 유럽이 나서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보장하고,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했다. 현재로선 미국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오바마 정부의 대외 정책에 첫 번째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 조약을 맺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두 나라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중재자가 있어야 한다. 미국이 신속하게 개입해서 평화 조약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오바마 정부 외교 정책의 첫 번째 과제가 될 것이다. 양쪽 모두가 극도의 분노와 공포에 휩싸여 있다. 누군가 옆에서 옆구리도 찌르고 잔소리하면서 독촉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존재는 미국밖에 없다.”

그렇지만 오바마의 개인적인 리더십으로는 중동 평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고 했다. 미국 정부가 개입할 수 있도록 대중적인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와스코우 랍비는 강조했다. 그는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활동하는 평화 운동 그룹과의 적극적인 연계를 제안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변화를 촉구하는 현지 비판 세력들과 연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안 중 하나다. 이런 활동을 통해 이스라엘 사회 스스로가 문제점을 자각하고, 자발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도와야 한다.”

와스코우 랍비는 자신이 세운 The Shalom Center를 비롯해 미국 내에 있는 유대인 평화 단체인 Jewish Alliance of Justice and Peace나 the 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AIPAC) 같은 단체들을 소개했다. 이런 단체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들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또 현재 각 종교 그룹 안에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평화 운동의 에너지를 각 종교의 지도자들이 나서서 결집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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