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예루살렘?
백 투 예루살렘?
  • 김동문
  • 승인 2009.02.12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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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서진은 오해, 동진 역사도 분명 있어

'백 투 예루살렘', '복음의 서진',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 자손 간의 갈등' 등 다양한 신조어들이 한국 사회에 넘쳐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하여 '땅 밟기'와 '선포하는 선교 운동'이 괘를 같이 하고 있다. 그 안에는 은근한 정복론과 문명충돌론, 친유대주의, 반이슬람 시각, 그릇된 민족주의조차 뒤엉켜져 있다. 그것만 있다는 말이 아니다. 한국 교회를 움직이고 있는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하여 되짚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글쓴이 말)

   
 
  ▲ 젊은 청춘 남녀의 최고의 관심은 사랑과 일이다.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한 이집트 커플의 모습에 종교색으로 덧칠할 그 무엇은 없다. (사진 제공 김동문)  
 
지난여름은 뜨거웠다. 특별히 이슬람권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레바논에서는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죽어갔고 다른 한 곳에서는 평화 행진을 둘러싼 갈등이 컸다. 한국 기독교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도 논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논쟁은 서로 마주쳐지지 않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교회 공동체 밖의 사람들은 궁금해 했을 것이다. "왜들 저렇게 난리일까? 도대체 왜 정부가 하지 말라는 짓을 사서 하려는 것이야?" 이런 궁금함은 기독교 공동체 밖의 것만이 아니었다. "왜 기독교 일부 공동체는 이슬람 세계에 다 걸기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짚어보고자 하는 것이 이번 가사의 관심이다. 여러 가지로 그 이유를 추론할 수 있겠지만(물론 당사자들이 동의할지 안할지는 모를 일이다) 복음의 서진론(西進論)에 바탕을 둔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을 중요한 이유로 들 수 있다.

"우리는 결코 좌절하거나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복음의 서진, '백 투 예루살렘 비전'을 위해 끝까지 전진할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 시대를 감당하며 역사의 막힌 벽을 뚫고 우리 세대에 왕의 대로를 구축할 것이다. 우리의 행진은 계속 되어야 한다. 이 땅의 어떤 정사와 권세도 우리의 믿음의 행진을 막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도들을 지키시며 약속하신 대로 끝까지 함께 하시며 모든 위협에서 지키실 것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전진할 것이다. 연약하여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은 무너질지라도 하늘에 속한 사람들의 행진은 그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최바울 씨(인터콥 대표)의 '아프가니스탄 평화 축제-의미와 과제' 중)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이 이제는 한국 선교 운동의 기본 이슈가 되어버렸다. 아니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의 연원이나 역사에 대하여 다루는 것은 번거롭다. 다만 한국의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의 근간을 이루는 키워드인 복음의 서진에 대해서는 지적이 필요하다. 복음의 서진 논리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편견이다. 우리가 배운 (서양) 세계사를 세계사로 오해하는 것이나 (로마 천주교) 교회사를 교회사로 오해하는 것도 금시초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교회사의 중심에는 로마 교회만 있지 않았다. 복음은 서진으로만 이뤄지지 않았고 동진의 역사 또한 분명하고 선명하다.

주후 50년 전후 교회는 이미 로마 교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교회,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 예루살렘 교회, 터키의 콘스탄티노플 교회 등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던 시기가 있었다. 동서 로마 제국으로 정치적 분열이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교회도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로 분열되었다. 이후의 역사나 교회사에 대하여 우리들이 대한 것은 서로마 제국과 로마 천주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회사와 서양 세계사였다. 당연한 결과였다. 우리들은 교회사를 미국이나 유럽 기독교인들을 통해 접했고, 세계사를 유럽 중심의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배웠기 때문이다. 유럽 중심 사관에 의해 무시당하고 잊혀 졌지만 동방 교회나 동방 세계사는 여전히 흘러왔다.

넓은 의미의 동방 교회는 복음의 동진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이미 2~3세기에는 오늘날의 중동은 물론이고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지역에까지 복음의 확장을 이뤄냈다. 동방 교회사나 중동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살펴보면 이 같은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중심으로 한 북아프리카 사역과 아라비아 반도 사역, 사도 도마가 인도에까지 복음을 전했다는 교회의 전통, 시리아 교회를 중심으로 한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까지의 복음의 동진이 있었다는 흔적들은 적지 않다. 순교자 저스틴(103~165년)이나 터툴리안(155~230년) 같은 이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바울이 마케도니아 환상을 보기 이전까지 그 또한 복음의 동진 대열에 함께 했었다고 볼 수 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현장에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복음은 서진만이 아닌 동서남북으로 뻗어졌고 그 가운데 아라비아에서 온 믿는 자들을 통해 동진도 있었을 것이다.

중동은 복음의 그루터기

복음의 동진 역사에 대해서 바로 이해하는 것은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다수의 무슬림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는 서구의 종교이며 서구 이데올로기라는 거부감을 넘어서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슬람은 전통 종교이고 기독교는 서구의 외래 종교라는 인식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복음의 동진을 고려하면 이슬람 이전에 기독교가 꽃을 피웠다는 사실과 다수의 무슬림 조상 때부터 하나님을 섬겨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복음의 동진 역사를 염두에 둔다면 이른바 '백 투 예루살렘 운동'에서 말하는 예루살렘에까지 복음이 전파되는데 장애물로 자리하고 있다는 58개 이슬람 국가에 대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더 이상 중동과 중앙아시아 이슬람 국가 58개국은 부담스런, 넘어서야 할 어떤 타깃이 아니다. 복음의 불모지가 아니라 복음이 확장되고 꽃을 피웠던 지역, 복음의 그루터기가 남아있는 지역으로 이 지역을 이해하여야 한다. 복음의 선포나 확장을 위한 '백 투 예루살렘'이 아닌 복음의 회복을 위한 발걸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슬람 이전 꽃을 피웠던 중동의 믿음의 공동체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결국 복음의 동진에 대한 이해는 은근한 문명충돌론적 선교를 넘어서도록 도울 것이다. 복음을 통한 땅의 회복이나 정복에 대한 생각을 다듬어줄 것이다. 선교 현장에서 '우리가 처음은 아니다'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거기 계셨고 계시며 계실 것을 고백하여야 한다. 또한 나보다 더 앞서서 허다한 주님의 사람들이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생뚱맞게도 글을 마무리하면서 갖게 되는 궁금함이 있다. 복음 전파의 종착점은 있는 것일까? 선교는 땅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체 안에서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실제적인 종착점이 될 수 있는가? 성경 시대의 땅 끝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던 그 시절 그 끝에 이르면 낭떠러지가 있어 죽는다고 했던 '그 땅 끝'을 말한다.

여러 가지 궁금함이 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해석 방법에 따라 다양한 입장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은 또한 이스라엘의 회복, 예루살렘의 회복을 꿈꾸고 있다.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의 주체들은 친이스라엘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체질적으로 그렇게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라크 전쟁이 나자 그렇게도 많은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이 바그다드로, 바그다드로 러시를 이루었지만 레바논에 전쟁이 나서 수많은 사상자가 나고 아픔을 겪는 그 현장은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을까? 만일 레바논이 헤즈볼라가 이스라엘하고 싸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김동문 / 선교사

이 글은 지난 2006년 김동문 선교사가 쓴 것으로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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