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목욕시켜드렸습니다"
"아버지를 목욕시켜드렸습니다"
  • 김종희
  • 승인 2009.02.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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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제 동생이 어렸을 때 아버지는 아들 둘을 데리고 공중목욕탕 가는 것을 즐기셨습니다. 옛날에는 부흥회가 보통 월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하지요. 아버지는 부흥사는 아니었지만, 부흥회 인도를 자주 하셨습니다. 부흥회 하는 교회 가면 목욕을 더 잘 하실 것 같은데, 굳이 토요일 오후에 가기 싫다는 아들을 앞장세우고 목욕탕을 가십니다.

요구르트 먹는 재미 하나 때문에 목욕탕을 갔습니다. 아버지 등을 밀면 "왜 그렇게 힘이 없냐"고 하시더니, 고등학생쯤 됐을 때는 "어렸을 때는 힘이 하나도 없더니 제법이네…" 하곤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대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끝이 났습니다. 아버지랑 공중목욕탕에 가지 않은 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묘. 비석에는 "평생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한 사람 여기 잠들다"라고 쓰여 있고, 무덤 위에는 최근 출간한 아버지의 책이 놓여 있다.  
 
며칠 전에 부모님 댁에 가서 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침대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주여, 힘을 주옵소서" 하고는 아들의 부축을 받아 애써 일어났습니다. 겉옷과 속옷을 하나씩 벗깁니다. 가슴에 선명하게 드러난 뼈와 축 늘어진 허벅지, 엉덩이에는 살이 하나도 없어서 마치 연시처럼 물렁합니다.

두 팔을 잡고 목욕탕으로 들어갔습니다. 욕조 안에 방석을 깔아서 엉덩이가 아프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샴푸를 바르고 머리를 감아드렸습니다. "어, 시원하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입니다. 손에 비누를 잔뜩 묻혀서 얼굴을 문지르고 때를 벗깁니다. 어린애처럼 눈과 입을 꼭 다물고 있습니다. 타월을 쓰지 않고 손으로만 때를 벗겨냅니다.

20년 전에는 아버지가 제 몸에 있는 때를 벗기셨습니다. 상황이 180도 반전된 형국입니다. 가슴에 비누칠을 하려는데 가슴에 달라붙은 갈비뼈가 마치 빨래판 같아서 비누칠이 잘 안 됩니다. 억지로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샤워를 해드립니다. 코밑과 턱에 비누칠을 한 다음 면도를 할 때도 아버지는 가만히 앉아 계십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등에 비누칠을 하고 때를 밀어본 적은 많지만, 아버지 머리를 감고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면도까지 해보기는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타월로 머리와 온몸을 닦아드리니 다시 침대에 누워서 바짝 마른 입술을 물로 축이면서 연신 "효자야, 효자" 하십니다.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아버지는 목욕은 하고 싶은데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는가 봅니다. 이번에도 두 손을 높이 들고 "주여, 힘을 주옵소서" 하고 일어나는데, 전보다 더 힘들어합니다. 지난주랑 똑같이 목욕을 하는데 더운 탕의 온기 때문인지 이마에서 땀이 흐릅니다. 눈에서 눈물도 흐릅니다. 이런 목욕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겠나 싶었습니다. 침대에 누운 아버지는 제 손을 잡고 가쁜 숨을 내쉽니다.

   
 
  ▲ 병색이 완연한 바짝 마른 몸으로 막내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번 주일에 갔더니 막내 매형이 와 있습니다. 아버지가 오늘은 매형이랑 목욕을 하겠답니다. 매형의 부축을 받아 목욕탕에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목욕한 지 한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아버지는 욕조에서 나오실 때는 절 부르시더니 제 부축을 받아서 침대로 돌아가셨습니다. 몹시 지친 것 같습니다. 매형도 물과 땀에 흠뻑 젖었습니다. 아버지랑 얘기를 나누던 막내누나가 나오더니, 아버지 가라사대 "아들은 딸(아버지의 두 손녀)을 많이 목욕시켜봐서 잘 하는데, 사위는 나를 정상인 다루듯이 한다"면서 아들의 솜씨에 손을 들어 주셨습니다.

융통성 없기는 평생 가나 봅니다. 아들보다 사위 솜씨가 훨씬 낫다고 하면 아들이 섭섭해하겠습니까. 장인 목욕시켜주는 사위가 어디 그리 흔합니까. 그런데 누나랑 사위에게 점수 깎일 발언을 하셨습니다.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아버지는 제 손을 꼭 잡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 "다음엔 네가 목욕시켜줘라" 하십니다. 평생 성경과 교회밖에 모르고, 가족들은 밥을 먹는지 자식들이 학교는 제대로 다니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머니 얘기로는 다섯 자식을 안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십니다.

꼬박 2년간의 암 투병 생활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코딱지만한 애정 표현(손을 잡는다든지, 효자라는 말씀을 하신다든지)을 하십니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켜드리는 목욕이 계속 됐으면 좋겠습니다만, 몇 번 더 해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아버지 임종 직전에 썼다가, 2003년 12월 2일 돌아가신 날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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