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안 먹으려면
욕 안 먹으려면
  • 김은정
  • 승인 2009.02.25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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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쩍쩍 아들이 엄마식 미국 영어 35

   
 
  ▲ 카트에 살짝 닿아도 'Excuse me'라고 말하세요.  
 
영어를 우리말보다 더 잘하는, 젊은 한국인 청년 옆 자리에 앉았습니다. 근데 그 청년이 실수로 가만히 앉아 있는 제 발을 차는 거예요. 살짝 찬 게 아니라 확실히 서로의 발이 거칠게 닿았죠. 저는 당연히 사과를 기대했는데(미국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하고 지금 우리가 미국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침묵…. 그럴 때 제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게 아, 간단한 말이지만 이럴 때 할 말을 안 하면 미국 사람들한테 괜히 욕을 먹겠구나. 다른 영어는 잘하면서 그런 매너는 없으니까. 그 청년은 영어는 열심히 배웠지만 영어를 쓰는 문화에는 익숙해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럴 때 'Excuse me'라는 말을 서로 기대합니다. 개인의 공간(personal space)에 대해 법석을 떠는 문화이기 때문에 내 어깨가 아주 살짝만 남에게 닿아도, 아니 닿지 않고 너무 가까이만 가도 'Excuse me'라고 해야 욕을 안 먹습니다.

영어만 잘 해도 안 되고 그들의 문화와 통용되는 예의도 알아야 욕을 안 먹습니다. 누가 내 카트에 부딪혀서 'Excuse me' 하면 또 'That's ok'로 맞장구 쳐주는 것도 기억하세요. 이런 게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꼭 알고 있어야 하는 미국 사람 대하는 상식이랄까요. 내 의도가 아니었는데 괜히 욕먹을 필요 없잖아요.

복잡한 식료품 가게(그로서리 grocery)나 월마트(Walmart) 같은 데서 카트끼리 부딪히는 경우가 많죠? 이럴 때 '나이스'한 미국 사람들은 'Excuse me'라고 합니다. 그럼 우리는 더 '나이스'한 사람들이니까 'You go ahead(먼저 가세요)'라고 말해줍시다. 'Ahead(어헤드)'는 '앞으로'라는 뜻이에요. 'You' 없이 'Go ahead'도 많이 써요.

아니면 어떤 사람이 자기 카트로 복도를 가로 막고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물건을 고르고 있어요. 어떤 미국 사람들은 참 인내심도 많아서 그 사람 물건 다 고를 때까지 기다리고도 있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럴 때 숨이 넘어가기 때문에 'Excuse me, but can I go around?(미안하지만, 제가 좀 지나갈 수 있을까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다 'Sure'나 'Oh, I'm so sorry'라고 하며 비켜주지, 절대 못 비킨다는 사람 저는 여태 미국 살면서 한 번도 못 봤어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아무 말 없이 내 카트를 저 사람 카트에 부딪히며 그냥 뚫고 지나가면 욕을 먹는 겁니다. 미국 사회에서의 예의란 그렇지 않으니까요. 한국에서도 상냥하게 물어보고 지나가지 않나요? 이제부터는 영어로도 그렇게 해 봅시다.

그런데 내가 물건을 보며 뒷걸음을 치다가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딪혔어요. 'Sorry about that(미안하게 됐어요)' 하셔야 되겠죠. 거기다 'I didn't see you there(제가 못 봤어요)' 그러시면 더욱 좋죠. 알고 보면 얼마나 간단한 말입니까? 이런 말을 하고 안 하고, 나의 인간성의 차이를 보인다는 겁니다.

지나가는 미국 사람이야 내가 영어를 잘하는지 미국 온 지 얼마 됐는지 알게 뭡니까? 그런 상황에서 사과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얼굴을 찌푸릴 뿐이죠. 괜히 욕먹지 말고 할  말은 하고 지나갑시다.

근데 부딪힌 정도가 심해서 상대방이 좀 다친 거 같아요. '다치셨어요?' 하고 물어 보려면 'Are you hurt?' 얼마나 간단한 말입니까? 여기 문법 설명이 뭐 필요가 있고 단어 실력이라고 할 게 뭐 있습니까? 다만 'hurt(헐트)'를 발음하실 때 좀 굴리면서 해 주세요.

저에게도 천추의 한이 되는 이 'r' 발음은요, 한국 사람이 발음하기가 아주 어려워요. 혀를 똘똘 말아 굴리면서 발음해 주세요. 그게 안 되시면 그냥 말을 바꿔서 'Are you ok?(괜찮아요)'라고 하세요. 그 말이 그 말입니다.

이런 말이 제가 가르쳐 드릴 때는 다 아시는 것 같아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머리가 하얘지면서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답니다. 미리미리 열심히 연습해 두셨다가 실전에서 써먹어 보면 스스로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느껴지는데요. 저도 다 경험해봐서 안답니다.

한국에서 뼈가 굵었어도 처음부터 영어가 잘 되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가만히 있었는데 영어가 그냥 저절로 잘 되는 그런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요. 다 민망하고 한 맺히는 순간을 넘고도 포기하지 않고 오늘의 영어 한 문장 외워보는 그런 사람만이 머지않은 그날에 영어가 됩니다.

카트나 몸이 닿으면.
Excuse me.

이에 대한 대꾸로.
That's ok.

먼저 가세요.
You go ahead.

미안하지만 제가 좀 지나갈 수 있을까요?
Excuse me, but can I go around?

미안하게 됐어요.
Sorry about that.

제가 못 봤어요.
I didn't see you there.

다치셨어요?
Are you hurt?

괜찮아요?
Are you ok?

김은정 /  코넷

* 이 글은 김은정 씨가 쓴 <굿바이 영어 울렁증>(로그인 출판사)에 실린 글입니다.

경희대 영어교육과 졸업.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에서 TESOL 석사 학위 취득. '굿바이 영어 울렁증' 저자. 전 미주리주립대 ESL 강사. 현재 U.T. Arlington ESL 강사. Texas Wesleyan University 심리학과 교수인 남편과 이름이 '아들'인 아들 그리고 딸 조아와 Fort Worth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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