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펀더멘털' 선교사의 사역 성공담
'울트라 펀더멘털' 선교사의 사역 성공담
  • 김종희
  • 승인 2009.03.17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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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죽인 가해자 용서한 선교사 부부, 딕 할아버지와 섀론 할머니

요즘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딕 할아버지(74)와 섀론 할머니(62)다. 둘은 선교사다. 몇 년 동안 체코와 멕시코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선교한 적이 있는데, 요즘은 뉴욕에서 사역하고 있다. 우리처럼 영어가 필요한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성경을 가르친다. 세계 각국의 이민자, 그것도 상당수가 영어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뉴욕에서 매우 유용한 선교 도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 부부를 일주일에 네 번이나 만난다. 식구 빼고 이들보다 더 자주 만나는 사람은 없다. 이들 입장에서 보면 나와 아내는 선교 대상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 그들 집에 가서 2시간 가까이 영어 공부를 한다. 그리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또 만난다. 둘은 우리 외에도 중국 교회에서 일주일 한 번씩 영어를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처럼 단독으로, 이렇게 자주 만나는 선교 대상은 없다.

우리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영어를 배우고, 둘은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부부를 상대로 선교하니, '처남 좋고 매부 좋은' 경우다. 가끔 함께 찍는 사진들은 그들의 적극적인 선교 사례의 하나로 소속 선교회에 보고되는 자료로서 유용할 것이다.

우리의 영어 공부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섀론과 아내는 드라마, 요리 등 공통 관심사를 갖고 대화하기 때문에 늘 우리보다 늦게 끝난다. 둘은 오늘도 집 근처에 있는 백화점 Macy's에 가서 쇼핑했다. 생활 영어를 연습한다는 걸 핑계 삼아 둘의 공통된 취미인 쇼핑을 손톱만큼의 양심의 가책도 안 느끼면서 즐기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영어 실력과 집안 소품들이 늘어날지는 몰라도, 아내의 믿음이 늘 것 같지는 않다.

이에 비해 딕은 타고난 선교사다. 그것도 울트라 펀더멘털 크리스천이다. 우리식으로 실감나게 표현하면 '꼴통 보수 개독교인'이다. 남부 지역 출신인 이들은 미국 바이블 벨트 기독교 신앙의 전형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이제는 바이블 벨트도 옛말"이라고 개탄할 정도다. "미국 기독교는 타락했다"고 그가 말하지만, 타락의 내용을 잘 들어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딴판이다. 그런 신앙관, 성경관을 내 혈관 속에 주입시킬 틈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 눈에 훤하다.

처음 만났을 때 그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던 우리는 두 부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서는 기독교 신자 대통령 조지 부시를 열나게 씹었다. 그들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우리가 그들 집에 가서 영어를 배우기로 한 첫날은 공교롭게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은 대통령 취임식이나 보면서 얘기하자"고 했더니, 'OK' 하면서도, 지금까지 대통령 취임식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FOX 채널로 보는데 공교롭게도 자막이 나오지 않아 자막이 나오는 다른 채널로 돌려달라고 요청했는데도 굳이 FOX를 고집했다. 평소 친절 만점인 딕은 이날따라 섀론이 뭔가 물어볼 때마다 고개도 안 돌린 채 "I don't know"만 반복했다. 두 시간 정도 보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일어서려고 하자, 마치 왜 이제야 그 말을 하냐는 듯이 두말 않고 문을 열어주었다.

이때 감을 잡았다. 알고 보니 대통령 선거 전에 교인들에게 오바마를 찍으면 안 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서 가벼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단다. "아, 아무리 영어를 공짜로 배우는 기회라 해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우리는 이내 가까워졌다. 때로는 되는 말 안 되는 말을 늘어놓으면서 성경 내용을 놓고 논쟁하기도 했지만, 친절하고 겸손하고 진지한 그들의 태도는 이런 여러 차이를 능히 극복하게 해주었다. 함께 쇼핑을 하고, 피자집, 햄버거집, 베트남 쌀국수집을 돌아다니면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딕은 아내에게 김치를 만들어달라고도 했다.

   
 
   
 
오늘 아침에도 변함없이 이들 집에 갔다. 변함없이 두 손을 맞잡은 채 기도로 시작했다. 오늘은 어젯밤 내가 쓴 글에 대한 얘기를 준비했다. 프레디 윈터스 목사를 살해한 범인, 윈터스 목사의 남은 가족이 범인을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증언한 얘기를 나눌 작정이었다. (관련 글 보기)

아, 여기서도 해프닝이 하나 벌어졌다. 월요일 아침 우연히 CBS의 한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 사연을 알게 됐다고 했더니, CBS는 너무 리버럴해서 자기는 CBS를 안 본다, FOX가 가장 밸런스를 잘 맞추는 언론이라고 갑자기 흥분해서 얘기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CNN은 어떠냐고 했더니, CNN이 원래 Cable News Network의 줄임말인데, 사람들은 Clinton News Network라고 부른다고 하더니만, 클린턴을 줄기차게 씹었다.

갑자기 벌어진 미디어 비평 코너가 쉬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이 구멍에서 빠져나가려고,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어느 채널이 보수적이고 어느 채널이 리버럴한지 구별할 줄 모른다"고 했더니, 노하우를 알려줬다. "하루 종일 FOX를 보다가 CBS나 CNN으로 채널을 돌려서 자세히 보면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젠장, 그 정도로 구별할 줄 알면 내가 일주일에 세 번씩이나 여기 와서 이러고 있겠나.

아무튼 오늘도 그렇게 시작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설명을 들은 다음 그도 자신이 아는 용서의 스토리 하나를 들려줬다. 나는 이어 손양원 목사가 자기 친아들을 죽인 살해자를 아들로 입양해 키운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순간 눈시울을 붉혔다. 미국 목사가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한국 목사의 용서와 사랑 얘기에 감동 먹은 것이라 짐작했다. 땡. 그는 자기 아들 얘기를 했다.

살아 있다면 32살이 되었을 아이는 22년 전인 10살 때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질주하는 밴에 치어 죽었다. 범인은 17살 된 어린 학생이었다. 아들이 죽은 바로 그날 딕과 섀론은 범인을 만났다. 둘은 아들을 죽인 그를 끌어안았고, 용서했다. 이번에는 내 눈시울이 붉어질 차례였다.

가슴 한가운데 뻥 뚫린 구멍은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작아지지만, 그래도 구멍은 완전히 메워지지는 않는 것 같다고 딕은 말했다. 지금도 아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천국에 있는 걸 믿기 때문에 아들을 죽인 청년을 용서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학교에서 그린 그림, 죽기 며칠 전 야구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 친구들이 그를 애도하며 지어준 시 등을 보여주었다. 너무 귀여운 아이였다. 70이 넘은 할아버지 가슴 안에는 10살짜리 귀여운 아들이 잠들어 있었다.

프레디 윈터스 목사 가족의 용서와 사랑 스토리는 방송을 통해 전국에 퍼져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나도 이 스토리를 읽는 독자들이 사순절 기간에 벌어진 죽음, 용서의 사건을 통해 부활의 의미를 새롭게 묵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사를 정리했다.

그러나 딕 할아버지와 섀론 할머니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생긴 10살짜리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고 포옹한 -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그것도 22년이나 지난 - 이야기가 내 마음에 더 깊이 들어오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하루걸러 아침마다 만나는,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용서의 힘을 보여준 사람이 바로 우리 옆에 있었다.

앞으로는 딕 할아버지가 FOX만 보자고 하면 그렇게 해줘야지. 부시 칭찬하면 맞장구 놓아줘야지. 오바마 흉보면 같이 욕해줘야지. 딕 할아버지는 목이 곧을 대로 곧은 나를 개종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 힘은 울트라 펀더멘털리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포옹한 사랑에서 나온다. 도대체 무엇으로 그걸 이길 수 있겠는가.

헤어질 시간이다. 손잡고 기도할 시간이다. 마칠 때는 내 차례다. 오늘은 딕에게 선물을 하나 주어야겠다. 이번에도 되는 말 안 되는 말 섞어서 처음 영어로 기도했다. 딕 할아버지, 좋아서 죽으려 한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굴이 벌게졌다. 자기를 만난 지 불과 몇 개월 안 됐는데 영어로 기도를 하다니!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걸 보면서 아마 자기가 엄청나게 탁월한 영어 선생인 걸로 착각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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