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숨진 곳으로 매일 출근하는 까닭은?
아내 숨진 곳으로 매일 출근하는 까닭은?
  • 박지호
  • 승인 2009.04.21 22: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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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성 집사, 아내 떠나보낸 곳을 이웃 사랑 위한 선교지로

매일 아침 아내가 숨진 곳으로 출근하는 노재성 집사(사우스베이선교교회). 아내가 숨을 거둔 곳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노 집사는 아내가 피 흘린 곳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바로 이곳에서, 이곳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노 집사의 아내(노혜숙)가 사고를 당한 지 올 5월이면 꼭 1년이다. 2008년 5월 12일, 아내가 운영하던 조그만 옷 가게(LA 가디나 지역)에 2인조 흑인 권총 강도가 들었다. 모자와 복면을 쓰고 가게에 침입한 이들은 카운터에 있던 노 씨를 향해 권총을 겨눴다. 놀란 노 씨는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 쳤고, 범인은 욕설과 함께 총을 쐈다. 무려 8발이 노 씨의 가슴과 머리로 날아들었다. 노 씨는 현장에서 숨졌다. 범인이 훔친 액수는 200달러에 불과했다.

   
 
  ▲ 강도가 권총으로 노 집사의 아내를 겨누고 있는 모습이 가게의 CCTV에 그대로 찍혔다. (출처 : < abc news > ) 가디나 시는 매년 2,000만 불의 시 예산을 투입해 별도의 경찰력을 운용하고 있지만, 노 집사의 가게가 있는 지역은 흑인과 라티노들이 사는 빈민 지역이기 때문에 경찰의 관리·감독이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한인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종종 피해를 당한다.   
 
흑인 빈민가에서 한국인 가게 주인이 권총 강도를 당했다고 하면, 이기적인 한인 업주가 자제력 잃은 흑인 손님에게 당했다고 넘겨짚을 수 있지만, 노 집사의 아내는 갱 단원이었던 젊은 청소년들이 저지른 단순 강도질에 무고하게 희생된 것이다. 범인은 사건 직후 경찰에 붙잡혔다.

사고 다음 날부터 가게 앞에는 손님들과 지역 주민들이 두고 간 꽃다발이 수북이 쌓였다. 아내와 친구처럼 지냈던 흑인 손님들은 울면서 가게 주변을 맴돌았다. 닷새 뒤에는 가게 앞에서 흑인 커뮤니티 단체들을 중심으로 촛불 집회가 열렸다. 가게 앞 넓은 주차장이 촛불로 가득 찼다. 손님을 비롯한 주민 300여 명이 참석했다.

노재성 집사는 아내가 유난히 가게에서 일하는 걸 즐겼다고 했다. 손님들을 친구처럼 대하며 함께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고 했다. 아내가 숨진 이후 손님들은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양말이 필요한데 돈이 없다고 하니까 그냥 줬던 일, 돈이 모자란다며 머뭇거리면 있는 돈만 받고 물건을 팔았던 일, 어떤 땐 아예 외상으로 물건을 주기도 했던 일 등 다른 가게에선 쉽게 경험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노 집사는 가게를 처분하기로 했던 마음을 바꿨다. 노 집사는 아내가 운영하던 옷 가게보다 규모가 더 크고 수입이 많았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모두 정리하고 아내가 하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생각하면 참 이상하겠죠.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곳에서 다시 일하니까요. 하지만 아내가 무고하게 피 흘리며 죽어간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계기로든 오고 가는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사고 이후 노재성 집사와 그의 딸은 국제 구호 단체인 월드비전을 통해 아프리카에 있는 어린이 두 명을 '후원 입양'(기자 주 : 가난한 나라의 특정 아동에게 매달 일정액의 후원금을 보내 굶주림과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후원 프로그램) 했다. 아내가 사고를 당한 5월 12일 태어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각각 한 명씩이다.  
 
험상궂은 흑인 손님이 들어올 때는 섬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아내가 죽은 곳에서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으니 오히려 손님들이 더 놀란다며 웃었다.

한동안 주변에선 노 집사에게 권총이나 무기를 휴대하라고 권유했지만 고민 끝에 거절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 때문이다. 아내의 장례식 때 '악을 선으로 갚으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경구로 남아 노 집사의 마음을 붙잡았던 것이다. 그래서 노 집사는 권총 대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손님을 맞는다고 했다.

노 집사는 아내가 죽고 가게에서 일하면서 생긴 작은 변화가 있다고 했다. 

"저도 흑인들 상대로 장사 많이 해봤습니다. 예전엔 흑인을 좀 무시했었죠. 얼굴도 새까맣고 못생긴 것 같고,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았고요. 그런데 아내 가게에 일하면서, 흑인 이웃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다 얼굴이 다르더군요. 잘생기고, 예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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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車 2009-04-26 12:58:25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뭐라 할 말이 없네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