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 평화의 사람
그리스도인 = 평화의 사람
  • 최태선
  • 승인 2009.04.2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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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사람들 II…평화의 세 가지 개념

오늘 아침 운전을 하면서 유난히도 경적을 많이 울렸습니다. 물론 이유 없이 경적을 울리지는 않았습니다. 운전자들이 너무도 이기적이었습니다. 위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좋게 말하면 운전자들이 너무 용맹스러웠습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책도 있는데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경적을 울렸던 제 자신도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경적 소리에는 제 안의 분노와 타인에 대한 꾸짖음과 경멸이 담겨있었습니다. 물론 '운전대를 잡으면 수도승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 뒤로 숨고 심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제 안의 온유함이 분노와 명분을 이길 만큼 승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늘 아침도 제 주변에 평화를 이루는 일에 실패했던 것입니다.
 

   
 
  ▲ 하나님나라는 평화입니다. 남을 정복하려는 사람은 평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 '샬롬'은 세 가지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인간과 인간들 사이의 평화입니다. 다시 말해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평화를 말합니다. 두 번째로 인간과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평화입니다. 결국 세 가지 방향이란 인간의 온전한 전 존재를 의미합니다. 유대인 핀차스 라피데는 사유를 통해 '샬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안녕과 치유, 건재함, 호의 그리고 고요한 영혼, 순례, 행복 그리고 사회적 조화는 서로를 보충해서 온전하게 해주는 구성 요소들로 하나이며 동일한 샬롬이다. 이것은 정치, 사회, 자연 그리고 신학이 모두 다 들어있는 성경처럼 나뉠 수 없다. 하나의 하나님 아래에 있는 단 하나의 세계 질서의 부분들이다."

결국 히브리어 '샬롬'은 하나님 아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좋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평화와 감사 속에서 삶을 즐기고, 서로에 대해 기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화를 대신하는 헬라어는 '에이레네'입니다. '에이레네'란 인간의 영혼 안에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서로 적대적인 세력들을 화해시킬 때 생기는 '조화'를 의미합니다. '에이레네'가 의미하는 평화는 동시에 평온함입니다. 우리가 내면의 평온한 공간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서로 적대적인 생각과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덜 괴롭게 됩니다. 초기 수도승들은 이 평화의 헬라적 개념을 따랐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내적인 고요의 공간으로 가는 길인 명상은 그래서 내적인 평화에 이르는 중요한 길이었습니다. 평화를 뜻하는 라틴어는 '팍스'인데 이 단어는 '파시스시'에서 연유합니다. '팍스'는 대화를 통한, 협상을 통한 그리고 계약을 통한 평화를 의미합니다. 로마인들에게 평화는 민족들과 계층들 간의 다양한 이해를 조정하여 균형을 이룰 때 생겼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법이 곧 최고의 평화의 수단이었습니다. 법은 타협의 산물입니다.
 
평화에 대한 이 세 가지 개념은 서로를 보완해 줍니다. 샬롬으로써의 평화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지배하게 될 때, 우리가 내적인 공간을 그분에게 내어드릴 때,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평화의 근원이시며 공여자이십니다.

내적인 조화인 '에이레네'로서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고, 우리로부터 시작하는 적대적인 것들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우리 안에서 고요와 사랑의 내적인 공간으로 침잠할 수 있는 명상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다투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사랑이고, 무엇보다 먼저 우리 안의 내적인 다툼을 극복하는 사랑입니다. 팍스에 필요한 것은 서로 대화를 통해 균형을 이뤄 모두가 잘살 수 있도록 하는 합의입니다.

적을 정복하려 들면 나 또한 평화를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정복당한 사람은 언젠가는 승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되면 다시 일어나 계속 싸우게 됩니다. 따라서 오로지 좋은 균형이 이루어질 때만 모두가 평화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평화를 이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부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기로 한 사람들은 성숙한 방식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삶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은 모든 것을 이루어내야 하는 자녀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위임을 받고 이 세상에 나와 온 세상에 하나님의 평화를 퍼뜨리는 아들과 딸들입니다.

그들은 아버지께서 당신의 정신으로 활동하라고 자신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이 아들과 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다합니다. 평화를 창조하고, 평화를 조성하는 과제를 이루기 위해서 말입니다.

개신교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평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음을 고백합니다. 천주교의 영향으로 평화를 말하는 것은 이단이라는 생각이 그동안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나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평화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미성숙의 극치입니다.

'샬롬'은 우리에게 하나님 통치의 온전한 실현을 강조합니다. 특별히 개신교 신자들에게 '에이레네'의 평화가 주는 교훈은 의미심장합니다. 이제는 밖으로의 시선에서 눈을 돌려 내면으로의 긴 영적 여행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좋은 균형을 이루어내는 수단으로서의 '팍스'의 의미 또한 중요합니다.
 
평화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 세상은,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하면서 자신을 투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기다립니다. 화해의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을 기다립니다.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사람을 기다립니다. 그가 하는 말 자체에서 화해가 공명되어 나오는 사람을 기다립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바로 피조물들까지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딸)들입니다.(롬8:10)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이 복된 주님의 말씀을 잊고 지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할 때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고백하고 감사하였지만 정작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임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며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부터라도 내 주변을 돌아보고 과연 오늘 내가 Peace Maker로 살았는가 확인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무한정 양보 운전은 기본이겠지요?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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