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비슷한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와 비슷한 사람은 누구인가?
  • 추응식
  • 승인 2009.05.1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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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과 이웃하려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 가서 박사 학위를 받고 다시 서울대학교로 와서 교육학과 교수가 된 사람이 TV에 나와서, 공부 많이 할 필요가 없다고, 인생을 사는데 학벌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면, 언뜻 들었을 땐 맞는 말 같긴 한데, 왠지 완전히 공감이 되지 않는 구석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는 할 것 다해 놓고 다른 사람보고는 하지 마라 하면 듣기에 따라서는 약간 얄미운 마음도 들 수도 있겠습니다. 지난달 강기철 형제님, 이혜숙 자매님, 양승철 형제님. 김은배 전도사님하고 강화도 봉사 갔다 오는 길에 이 이야기 하고는 많이 웃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이 잘되려면 먼저 서로 비슷한 부분이 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끼리 잘 통하고, 어른들은 또 노는 물이 비슷한 어른들끼리 잘 통합니다. 동물도 보면 잠자리는 잠자리끼리 소통이 잘되고, 새들은 류가 같은 자기 새들끼리 소통이 잘돼 먼 길 같이 이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 요즘 아파트의 애완견들은 사람과 생활하니까, 나중에는 자신이 사람인줄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요즘 아파트의 애완견들을 보면 개들끼리 살지 않고 사람하고 한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귀염 받으면서 사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개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낫다'거나 '내가 어릴 때 저 개처럼 사랑받고 자랐으면 내 성질이 지금 이렇게 안 되었을 텐데···'라고 말하며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가 정말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이들은 만남 자체가 서로 동등한 조건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개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람이 일방적으로 마음에 드는 개를 선택했고, 동거 생활도 물론 개와 합의 없이 사람이 일방적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는 환경도 사람이 개집에 들어가서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익숙한 사람 집에서 개가 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개는 개끼리 살면 안 해도 되는 번거로운 일들을 감수해야 합니다. 밖에 갔다 오면 반드시 온 몸을 씻어야 하고, 대소변도 개처럼 아무데나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정해진 곳에서 보아야 합니다. 시골 개들처럼, 동네에서의 자유로운 연애는 상상도 할 수 없고, 때로는 개의 가장 기본적인 의사 표시인 짖는 일도 제한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살기 위해서는 주인에게 잘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인이 귀엽다고 더 잘해주니까요. 그래서인지 전에 함석헌 선생님께서도 '개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충성한다'고 하시면서 '개보다는 존재로 사는 소가 좋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개가 이렇게 사람처럼 살다보면, 나중에 자기가 사람인줄 착각하고 다른 자연산 개들을 보면 '웬 개들?' 하면서 이질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소통이 안 되죠.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착각을 하면서 사는 면이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개는 같은 개들끼리 살 때, 더 소통이 잘되고 자유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도 '우리는 똑같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잘 통한다'고 생각하는 그룹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결속력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해병 전우회, 고대 동문회, 호남 향우회입니다. 그러나 이 조직들이 겉으로 보이는 결속력만큼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인간적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잘은 모르지만 다소의 과장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묶는 '군대, 대학, 출신 지역'이라는 것이 본질적 가치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좀 덜하지만 아마도 전라도다 경상도다 하는 지역주의는 이와 비슷한 예가 될 것입니다. 어느 지역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상한 이미지를 강요받고 서로 배타성을 갖고 느끼도록 조장되었습니다. 한 때 이것은 우리 사회의 악성 인프라로 자리 잡아 공직, 기업체 등의 인사에 적용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모든 껍데기로부터 해방을 말하는 교회에서도 이런 우스꽝스러운 배타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하고 먼저 비슷해져야 하는가 하는 가르침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 해병 전우회는 잘 뭉치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직들이 겉으로 보이는 결속력만큼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인간적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이와 비슷한 경우를 고등학교 동문회에서 느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데 뒤풀이 모임에서 공직에 있는 친구와 사업을 하는 친구 몇몇이 '이제는 우리 TK가 이렇게 해야 한다' 등의 배타적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대체 내가 왜 여기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동창들은 만나지만, 동창회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저희 교회 한완상 박사님은 제 고등학교 선배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제 기억에 2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내색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마 제가 후배인지 모르고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점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새길교회의 자연스런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같은 학교니, 같은 동네 출신이니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맺어주신 수많은 인연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별 것 아닐 수 도 있습니다. 별 것 아닌 것을 별 것으로 너무 추켜세울 때,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제가 앞에서 소통이 잘되려면 서로 비슷한 면이 좀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하고 생각하는 것과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것은 다른 것 같습니다.

우선 우리는 우리와 비슷하고 소통이 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체로 경제력, 학력, 사회적 지위, 나이, 종교, 취미 등이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부류들끼리 모여 이웃이 됩니다. 저도 이번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내 이웃이 누군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딴에 제가 그래도 좀 수수하고, 경제적, 학력,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대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놀아보면 예수교인 냄새도 좀 나는 사람이라고 은근히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과도 좀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선 분당 빤질빤질한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부유하고 건강한 자들을 이웃으로 하고 있습니다. 빤질빤질한 집에서 빤질빤질한 음식을 먹으면서 반질반질한 사람들과 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러면서 어쩌다 남을 위한 일을 조금만 하여도 마치 예수님처럼 살기라도 했던 것처럼 스스로를 미화하기도 하고, 실제는 어려운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부류로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성숙한 예수교인이라도 된 양, 그들의 친구인 척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 실체도 모르면서, 예수님 껍데기만 두르고 제가 뭔가 교회 밖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애완견이 사람과 오래 살다보면 자기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그 자체이십니다. 우리처럼 욕망의 누더기를 더덕더덕 걸치고 그것을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과는 다르십니다. 우리는 누구를 변호사라 부르고, 또 누구를 회장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누구를 창녀라고 불렀고, 누구를 세리라 불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람을 나누었고 정체화 했습니다. 계급장이 그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저희들은 교회가 다르면 사람이 다른 줄 알았습니다. 종교가 다르면 더더욱 다른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음을 잊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은총을 주신 것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유 코드라는 것도 잊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오셔서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사랑하신 그 모습을 그냥 그림으로만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입술 끝에만 주님이 머무시도록 했습니다. 저희 온 몸을 주님께 드리지 못했습니다. 저희들은 주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저희들의 비슷한 사람은 배부르고 건강한 자들이었습니다. 저희들과 소통이 잘되는 사람도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인지만 살폈습니다. 내가 누구의 이웃이어야 하는지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은 제사장을 이웃하려 하였습니다. 레위인을 이웃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과 비슷하지 않은 사마리아인을 이웃이라 하였습니다. 왜 이웃인지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그 보잘 것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 자기보다 약한 자가 먼저라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셨습니다.

   
 
  ▲ 우리의 진정한 이웃이 누구입니까.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의 짧은 생, 욕망을 위해 달려 왔음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종교조차 장식으로 생각했습니다. 내 비슷한 교회를 찾았습니다. 세속적 지위에 걸맞은 교회를 찾았습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는 교회를 찾았습니다. 내가 편한 교회를 찾았습니다. 내가 도움을 줄 교회가 아니라 도움을 받을 교회를 찾았습니다. 뜻을 생각하기 전에 내 이익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이익을 찾는 그 눈이 저희 눈이 되었습니다. 욕망으로 치장된 그 누더기가 이제 우리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 눈과 그 겉모습이 비슷한 사람들과 우리는 소통하고 있습니다. 욕망의 결합이 우리들의 만남이었습니다. 나누기 위한 만남에는 인색했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찾으시고 나누신 그 사람들을 저희들은 찾지 않았습니다. 냄새나는 늙은이가 싫었고, 거칠고 막무가내인 가출 아이들이 싫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때 쓰는 장애인이 싫었습니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손상되지 않은 생명이십니다. 그 생명은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작용했습니다. 그 작용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우리들 앞에 섰습니다. 보여주시기 위해 섰습니다. 그 모습은 제사장의 모습도 종교 지도자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가서 소통하고 사랑하셨던 바로 그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늘나라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 살아가는 그런 나라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 나라를 잊지 않도록 때로는 삶의 행간 속에서 살짝 보여주시기도 하십니다. 살짝 본 이야기 두 가지하고 마치겠습니다.

저는 예배당에 다니면서 꿈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저 혼자 청소를 깨끗이 한 다음 그 곳에 멍청하게 드러누워 있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결혼한 뒤, 집사람에게도 그 꿈을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 꿈이 드디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88년 이사 갔던 문정동 새길교회였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정말 혼자서 청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청소를 끝낸 뒤 긴 의자에 누워있으면 여기서 시간이 멈췄으면 할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그 뒤 교회에는 주간에 교회를 지키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전도사가 오셨고, 때로는 잠깐씩 다른 사람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부터 그 사람들과 둘이서 청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동안은 한 청년이 교회에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청년은 혼자 숙식을 하며, 입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동안은 그 사람과 청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청소가 끝나면 둘이서 냉장고의 밥을 꺼내 먹었습니다. 그 때는 서로 잘 몰랐고, 말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엌에 서서 둘이서 밥을 먹던 중, 그 사람이 갑자기 "근데 아저씨,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건 왜 묻나? 그냥 사람이다, 왜?" 이런 식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사람은 "궁금해서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 너머 신구 대학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선생이다" 하니까 그 사람이 갑자기 놀란 듯이 "아니, 교수님이 지금까지 청소를, 교수님이 어떻게 맨 날 와서 청소를 합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야, 여기가 교회다, 교회!"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은 무릎을 꿇으면서 "제가 잘못 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잘못이라고 느낀 그를 보면서 청소년을 갓 넘긴 청년이 정말 내공이 강하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제가 요즘은 장사 때문에 옷을 비슷하게 입고 다니는데 그때는 정말 편하게 입고 다녔기 때문에 뭐하는 사람인지 알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나이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 뒤 그 사람은 동료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 그 사람은 가끔 '우리 교회는 신학을 신앙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하는 등 신학적인 부분을 저에게 일깨워주곤 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80년대, 공동생활을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봉은사 옆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려서 저보고 선생님이라고 불렀는데 그 중에는 나이가 많아 저보고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락부락하고 험상 굳게 생긴 그는 마음잡고 살아 보겠다고 우리 공동체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밤에 그와 소주를 한잔하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는 예쁜 여자를 좋아해서 자기 어머니 닮은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저는 이 사람의 어머니가 참 궁금했고, '참 미인이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어느 날, 지금 자기 어머니가 광명에 계시는데 생신이라면서 우리를 초대하였습니다. 실은 생신을 핑계 삼아 저한테 감사를 표시하려고 일부러 만든 자리 같았습니다. 광명에 가서 그 어머니를 뵀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체구가 큰데 어머니는 매우 왜소했고 다리까지 불편한 노인이었습니다. 저로서는 그가 왜 어머니 같은 사람과 결혼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술이 제법 들어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그는 옆에 있는 어머니를 안으면서 또다시 저에게 말했습니다. "형님, 우리 엄마, 정말 예쁘지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이구! 이놈아, 놔라" 하시더니 벌떡 일어나 나가셨습니다. "성당 가나?" 하니까 "그래" 하시면서 마실 가듯 집 앞의 성당으로 가셨습니다.

이 사람들과 함께 살 때, 저는 곽선희 목사님 설교를 들으러 소망교회에 자주 갔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에게 교회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교회 사람보다 이 사람들이 저하고 더 비슷했고, 소통도 훨씬 더 잘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곳이 더 교회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만나지만 교회이야기는 여전히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여 저하고 비슷한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제가 어떤 사람과 비슷해야 합니까? 날마다 주에게 묻게 하여 주시옵소서.

추응석 / 새길교회 교우

이 기사는 새길교회 추응석 형제가 2009년 3월 22일 평신도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는 새길교회에서 설교한 내용 전문입니다. 새길교회는 담임목사가 설교하지 않고, 평신도가 한주씩 돌아가며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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