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맑은 샘이 될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맑은 샘이 될 것'
  • 이승규
  • 승인 2009.05.27 2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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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예배 드류대학교서 열려…5월 28일 저녁 7시 맨해튼서 추모식

   
 
  ▲ 이날 예배에서 설교를 한 문동환 목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사진 앞에 국화꽃을 바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는 예배가 5월 27일 저녁 8시 뉴저지에 있는 드류대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 예배는 드류대학교에 다니는 한인 신학생들과 뉴욕 유니온신학교에 다니는 한인 신학생들이 주최했다. 약 50명이 모였다.

   
 
  ▲ 추모사를 읽는 김이석 목사. 김 목사 역시 목이 메어 몇 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추모 예배에 모인 사람들은 예배 시작 전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영상물을 시청했고, 이것이 끝나자 숙연한 분위기에서 예배를 시작했다. 김이석 목사가 추모사를 할 때는 여기저기서 훌쩍이며 우는 소리도 들렸다. 김이석 목사도 여러 차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추모사 전문 참조) 부모를 따라 온 2세들은 어른들의 표정을 살피며 분위기를 파악하기에 바빴다.

   
 
  ▲ 예배 준비 위원들이 상록수를 부르고 있다. 이 노래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고에 나와 불렀던 노래다.  
 
추모사가 끝나자 예배를 준비한 준비위원들이 상록수를 불렀다. 1절과 2절은 준비위원들이, '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는 3절은 모두 같이 불렀다.

문동환 목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은 다음에 모이는 사람들을 보면 그의 가치를 알 수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해 악한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고 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소망은 빈부격차를 타파함으로 국민 모두가 신나게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은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설교 전문 참조)

   
 
  ▲ 이 여성은 직접 국화꽃을 준비해 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바쳤다.  
 
설교가 끝나고 예배 참석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사진 앞에 헌화를 했다. 5월 28일 저녁 7시에는 맨해튼 32가 한인 타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이 열릴 예정이다.

   
 
  ▲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조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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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여성은 조문을 하고 난 뒤 울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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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동환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다음은 문동환 목사의 설교 전문이다.

마음이 맑아야
 

 마 5:1-10 신명기 34:1-4, 10

성서는 마음을 중시한다. 마음이 맑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선한 열매를 맺는다고 깨우친다.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돈에 눈이 어두워지지 않고 권력에 미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했던 것과 같은 모두가 신나게 사는 사회를 이룩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새 내일이 창출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의 선교 초기부터 새 마음을 강조하셨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자비를 베푸는 자는 복이 있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다. 평화를 위하는 자는 복이 있다. 옳은 일을 하다고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

이것은 다 맑은 마음의 여러 모습이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사셨다. 마태복음서 기자는 예수님이 이 소중한 가르치심을 산 위에서 말씀하셨다고 기록했다. 그 기자는 예수님을 두 번째의 모세와도 같은 분이시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모세야 말로 맑은 마음의 소유자라고 본 것이 된다. 모세가 어떤 마음의 소유자냐 하는 것을 우리는 그가 어떻게 그의 일행을 마치셨느냐 에서 본다. 신명기 마지막 장에 보면 야훼 하느님은 모세를 모압 땅 느보산 비스가 봉우리에 세우고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게 하신 뒤 여호수아가 출애굽 공동체를 이끌고 그 곳으로 들어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모세의 삶은 비스가 봉우리에서 끝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범인들은 불평을 하게 마련이다. 이때까지 애써온 자기를 무시하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모세는 이에 대해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깨끗이 그것을 받아 드렸다. 그가 간절히 원한 것은 그동안 이끌어온 떠돌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의 관심의 전부였다. 그가 애굽 바로 왕을 찾을 때 심정이 그것이었다.

출애굽 공동체가 금송아지를 만들어 야훼의 분노를 샀을 때 그가 야훼 앞에 나가서 한 말을 생각해 보라. 그는 "차라기 자기 이름을 하느님의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간청했다. 그 처참하게 살던 떠돌이들을 가나안 복지에 정착시키는 것이 소원의 전부였다. 그래서 신명기 기자는 "이때까지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나타난 일이 없다"고 그를 예찬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예언자들의 심정도 그랬다. 탐욕에 사로잡혀서 죽음의 길로 가는 무리들을 향해 예레미아 선지는 이렇게 외친다.

"앞으로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가문과 새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 귀담아 들어라. 그날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줄 새 계약이다. 내가 분명히 말한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 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이웃이나 동기끼리 서로 깨우쳐 주지 않아도 될 것이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렘 31:31~34 요약)

그날이 되면 고난을 통해서 마음이 맑아져서 모두 하느님의 마음을 환히 알게 된다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도 같은 말을 한다. 그날에 "내가 정화수를 끼얹어 너희 모든 부정을 깨끗이 씻어 주리라. 온갖 우상을 섬기는 중 묻었던 때를 깨끗이 씻어주고 새 마음을 넣어주며 새 기운을 넣어 주리라. 너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리라. 그리면 너희가 내가 일러준 교정을 따라 살 수 있고 나에게서 받은 법도를 지킬 수가 있으리라. 그러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돌 것이요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될 것이다" (에스겔 36:22~29 요약)

고난을 통해 마음이 깨끗해 질 때 삶의 길을 명확히 보고 하느님나라 시민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도 이와 같았다. 간악한 세력에 밀려나 목자 없는 양처럼 두루 헤매는 떠돌이들을 보시면서 그들이 깨닫고 당당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하는 일 그 한 가지가 삶의 목표였다. 이것을 위해 일생을 던졌고 이를 위해 십자가에 달렸었다.

십자가 위에서도 그는 불의한 재판을 질책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 무지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이런 맑은 마음을 가진 자의 죽음은 역사를 심판한다. 그리고 그 마음에서 흐르는 생수가 만물을 소생하게 한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라. 그가 정치범으로 비참하게 돌아가셨으나 그의 죽음은 그를 정죄한 자들을 엄정하게 심판했다.

그리고 역사는 그를 온 인류의 구주로 높이 칭송을 했다. 한국 전태일의 죽음도 그렇다. 그의 맑은 마음이 박정희의 추한 죄상을 밝히고, 수많은 민중을 정의의 길로 인도했다. 미국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수 백 년에 이르는 백인들의 죄상을 밝히고, 미국 천지의 정의의 샘물이 흐르게 했다.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생각해 보자. 인간적인 그에게 물론 약점들이 있다. 그러나 그의 심정은 맑기만 했다. 그의 소망은 동과서가 화합하는 것이었다. 갈라진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나라를 미국의 예속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언론의 폭행을 물리치고 사법권의 독립을 이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빈부격차를 타파함으로 국민 모두가 신나게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은 것이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약자들의 아우성 소리를 들으면서 맑은 마음을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그랬는데 어처구니없게 그에게 독립을 지원 받은 사법이 오히려 그에게 반격을 해 왔다. 그리고 '조중동'이 이를 침소봉대를 해 비참한 누명을 씌우려고 했다. 추한 죄명으로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려 했다. 그는 자기의 무죄를 변호하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포기했다. 진흙탕 물에서 싸우는 것은 진흙탕 물을 더 뒤집어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끗이 손을 때기로 했다.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더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깨끗이 삶을 접은 것이다.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끝내는 자살은 죄라고 비판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불교도인 그에게 있어 이것은 책임 있게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런 깨끗한 마음의 죽음은 역사를 심판한다. 모두의 눈이 밝아져서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맑은 마음의 종결은 솟아오르는 샘물과 같아 흙탕물을 밀어내고 맑고 깨끗한 시내를 조성해 물고기들이 신나게 꼬리치게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이 백성의 삶에 맑은 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생수의 흐름을 본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영령이여, 편히 쉬소서. 우리도 그대의 마음을 본받아 흙탕물을 제거 하리이다. 모두가 신나게 사는 새 내일을 창출 하리이다"라고.


다음은 김이석 목사의 추모사 전문이다.

추모사
 

당신의 죽음을 두고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울에 의한 부산 타살! 서울대에 의한 상고 타살! 부자에 의한 빈자 타살! 악에 의한 선 타살! 대기업에 의한 포장마차 타살! 개떼의 인간 타살! 맘몬의 야훼 타살! 친청러미일의 민족주의 타살! 몰상식의 상식 타살! 압제의 해방 타살! 돈의 얼 타살! 어둠의 밝음 타살! 자본의 노동 타살! 도시의 촌락 타살! 주류의 비주류 타살! 도곡동의 구룡 마을 타살! 있는 자의 없는 자 타살! 잿빛 돌의 푸른 물 타살! 강대의 약소 타살! 조 단위의 억 단위 타살! 5급수의 1급수 타살! 황소개구리의 맹꽁이 타살! 다수자의 소수자 타살!'

하나님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자살은 내몰린 자살 즉 타살일지도 모릅니다.

'가족을 압박하는 것처럼 좋은 방법도 없다.' 이 말은 해결사의 말도, 빚쟁이 추심업자의 말도 아닙니다. 법을 지키고 국민을 지킨다는 우리나라 현 검찰총장의 말입니다. 판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리 등은 한국에서는 책에만 존재하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아방궁에 산다고 몰아대던 언론과 항상 다투면서도 이런 일에는 합심하는 검경이 가족을 친우들을 희롱하고 몰아감으로 내몰린 자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살한 사람은 교회에서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왜 추모 예배를 하느냐고 합니다. 그런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자발적 자살 같은 타살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가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가셨죠. 밤이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시면서 잘 피하셨음에도 사역 마지막에는 스스로 몸을 드러내시고 죽이려고 벼르는 악마의 입에 머리를 들이미셨습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이 허리띠의 주인이 이렇게 매여서 끌려갈 것'이라는 사도행전 21장 아가보의 예언을 들은 성도와 친우들이 말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죽음을 향해 갑니다. 다른 때에는 성벽을 바구니를 이용하면서까지 도망갔으면서 이제는 알면서도 죽으러 갑니다. 스스로 죽으러 가는 순교는 자살일까요? 타살일까요?

하나님!

저는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은 예수 믿고 복 받은 나라라고 항상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님 세대의 고생과 은덕 때문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항상 이야기하시던 못 먹고 힘들게 살던 시대를 이제는 옛날이야기처럼 듣고, 이제는 많은 유학생이 나와서 공부하고, 마주치는 관광객 중 한국인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고 말입니다.

한국은 항상 '공사 중' 공화국이지만 그래도 그것은 성장 중이기에 생겨난 성장통이고 정치가 아직도 주먹으로 치고받아야 하는 정치이지만 그래도 성숙 중이라고 믿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연이어 노무현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에는 너무나 국민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수많은 데모와 죽음을 거치더니 이렇게 성숙하고 성장했구나 하고요. 

하지만 당신의 죽음은 자랑스러움을 일거에 쓸어냅니다. 허탈합니다.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광주에서 죽였던 사람들은 잘 살고 있고 조 단위로 해먹었던 사람들은 아직도 떵떵거립니다. 독한 사람들이지요. 온 국민이 다 손가락질해도 잘 삽니다. 얼굴색도 변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착한 사람은, 약한 사람은, 순수한 사람은 잘 살 수 없는 건가요? 매연이 가득한 서울처럼 지금의 한국은, 양심적인 사람은, 뜻이 있는 사람은 견디지 못하게 합니다, 숨을 쉬지 못하게 합니다.

많은 사람이 갔습니다. 좋은 노래하던 김광석 씨도 가고, 우리 세대의 연인 최진실 씨도 갔습니다. 탤런트의 꿈을 키우던 장자연 씨도 권력과 자본의 성상납에 못 이겨 분노를 토하며 갔습니다. 몸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몸에 불을 지르고 갔습니다. 더군다나 소망을 보여줬던 당신마저 갔습니다. 힘이 없는 사람들은 가고 힘이 있었던 당신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갔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기대야할까요? 그냥 이 나라를 포기해야하나요? 더러운 나라라고 앉아서 욕만 해야 할까요?

작은 촛불을 피우며 대화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전경은 방패로 찍으며 이걸 대화라고 말합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닭장차로 둘러싸고 바람 안 불어서 좋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소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명박산성이라는 기상천외한 성을 쌓고 자신들만의 나라를 만듭니다. 대화라는 피가 통하질 않습니다. 마비된 몸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호소하나요? 어디에 우리의 한을 풀고 이야기합니까? 

먼저 하나님 당신에게 구합니다.

시편 기자가 말하듯이 '하나님이여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소서. 돈도 권력도 복수할 힘도 없는 우리는 원수를 쳐다만 봐야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토로할 곳조차 없습니다. 들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의 억울함과 분노를 들어주소서. 억울하게 목숨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소서.' 

하나님, 그렇지만 마냥 신원하는 기도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우리 역시 피 값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지만 그 억울한 피 위에서 조절되는 기름 값의 혜택을 우리가 보기 때문입니다. '이메가바이트' 대통령이 혹시나 베풀어 줄지도 모를 부동산과 풍요의 혜택과 떡고물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할 수 없어서 마지막 방법마저 없어서 죽음을 택했던 그런 사람들에게서 고개 돌리고, 먹고 살 일에 바쁜 우리를 용서하소서. 집값 떨어졌다고, 증시 떨어진다고 호들갑 떨며 우리의 친구였던 사람에게서 등을 돌렸던 비겁한 우리들을 용서하소서. 양심과 고통에 겨워 홀로 부엉이 바위 위에서 발을 저 나락으로 딛어야 했던 이의 말에, 또한 그와 같은 너무나 낮은 사람들의 호소에 살아있을 때 귀 기울이기보다 죽어서야 귀 기울이고 이마저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비겁한 우리를 용서하소서.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닥친 북한의 형제자매를 위해서 배고프게 기도하기보다 남는 음식이 있어도 버리면 버렸지 나누지 못하는 우리의 기름진 배를 용서하소서. 당신에게 하도 복만 구해서 이제는 먹고 살만해져서인지 이제는 민족의 희망이라기보다 개독교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우리를 용서하소서. 인생의 무게에 눌려 죽음으로 나아간 사람을 두고 기억하고 미안해하기보다 먼저 자살한 무능한 사람이라고 자격도 없는 지도자라고 판단부터 내리고 무슨 추모예배냐고 주님의 자비와 연민을 잃어버린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를 용서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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