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지점에서 예수를 보기 원한다면…
낯선 지점에서 예수를 보기 원한다면…
  • 양정지건
  • 승인 2009.05.29 2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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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규항이 읽은 마가복음, [예수전] 출간

   
 
  ▲ 출판 직후 <예수전>은 인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어 있다. 순수하게 성경 텍스트를 가지고 쓴 책이 이 정도의 판매고를 올리는 사건에서 신학자들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김규항이 4년 만에 책을 냈다. 공적 영역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처음 내는 단행본이다. 이전에 발간한 책들은 칼럼 모음집이었다. 그의 글은 역시나 간결하고 날카롭다. 잘 벼른 문장 속에 주제 의식을 오롯이 담아내는 글쓰기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책의 구성 역시 담백하다. 마가복음 전체를 강독하는 방식이다. 200주년 신약성서를 그대로 인용한 후 이에 대한 해석을 이어간다. 3년 동안 진행된 마가복음 세미나 모임에서 얻은 영감을 김규항이 정리했다. 절제와 여백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 디자인 역시 <예수전>의 전반적 기조 간결함에 부응한다.

그러나 글의 내용은 녹록치 않다. 맘먹고 손에 들면 두 시간에 독파할 수 있는 분량이지만 글에 함축된 내용은 심오하다. 김규항의 요청처럼 묵상하고 곱씹어가며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처음 원고 분량을 절반으로 줄여 뼈만 남겼다는 그의 말이 허언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독서를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볼 지점도 여럿이다.

예수 따르미는 선량한 자본주의자 아닌 특별한 사회주의자

가장 눈이 가는 부분은 김규항의 바리새인 해석이다. 바리새인은 기독교인에게 여러 모로 뜨거운 감자다. 복음서에 종종 등장하는 예수의 호된 꾸짖음, 때로는 욕설의 화살은 그 끝이 바리새인을 향하는 것이 많다.

김규항에게 바리새인은 “고통 받는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변혁이 아니라 동정과 시혜의 방식으로 접근하여 고통의 구조를 영속화 하는 저명한 사람들”이다. 쉽게 풀어 쓰면 고통의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려 하지 않고 체제 안에서 변화를 꿈꾸는 사회운동가, NGO가 바리새인이라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기독교인은 누구인가. 가난한 이웃을 돌볼만한 여유가 있는 “선량한 자본주의자”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철저한 악의 체제임을 깨닫고 이를 바꾸려는 일에 헌신하는 “특별한 사회주의자”가 진정한 예수 따르미다. B급 좌파를 자처하는 김규항에게 자본주의는 예수가 반대하던 악의 체제 바로 그것인 것이다.

그 칼끝이 자본주의를 향하던 때보다는 훨씬 무디지만,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겸허히 반성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진보주의자들의 분열과 자기반성 부재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보수 교리에 익숙한 기독인이 읽어볼 만 한 <예수전>

<예수전>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에서 비롯된다. 3년 넘게 진행된 평신도 성경 연구 모임에서 <예수전>이 시작했다는 사실은 '수많은 교회에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을 각종 성경공부 모임은 과연 무엇을 생산했나' 하는 질문을 불러온다. 짜여진 질문에 정해진 답을 내놓는 성경 연구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하겠다.

평신도 모임에서 나온 예수에 대한 책이 대중의 광범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5월 19일 현재 <예수전>은 알라딘, YES24, 교보문고에서 인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어 있다. 교회 주변 이야기를 다룬 책이 아니라 순수하게 성경 텍스트를 가지고 쓴 책이 이 정도의 판매고를 올리는 사건에서 신학자들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교리에 익숙한 기독인에게 <예수전>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예수 이적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건에 담긴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규항의 주장은 어떤 사람에게는 신앙의 기초를 흔드는 불온한 목소리로 들릴 수 있다. 또한 예수의 육체 부활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부활이 사실인가보다 부활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예수전>이 거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마가복음 전체를 철저하게 사회주의자 시각에서 읽는 것이 억지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지나치게 끼워 맞추기식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가능한 지점도 간간히 눈에 띈다. 가령 예수의 제자들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부분이라든가, 물 위를 걷는 예수 사건에서 자본주의 극복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해석을 위한 해석이라는 비판을 불러온다.

몇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예수전>은 보수 교리에 익숙한 기독인들이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익숙한 시선이 아닌 낯선 지점에서 예수를 보기 원한다면, 늘 하던 성경공부 방식 아닌 다른 방법으로 예수에게 다가서길 원한다면, 이 책을 들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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