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싫은 건가, 자살이 싫은 건가
노무현이 싫은 건가, 자살이 싫은 건가
  • 박지호
  • 승인 2009.06.07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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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집착하는 한국 기독교,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한국과 미국의 일부 교계 지도자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그의 죽음을 비판했다가 여론의 비난을 샀다. 한국에선 김진홍 목사가 "자살하는 사람들을 말려야 할 자리에 있던 분이 자살로 삶을 끝낸다는 것은 심히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했다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았고, LA에서는 온누리교회 유진소 목사가 노 대통령이 자살을 선택한 것은 "함량 미달의 미성숙한 행동"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미주뉴스앤조이>는 LA 기독교연구실천아카데미 운영위원들을 비롯해 LA 지역 몇몇 목회자들과 평신도에게 노 대통령의 죽음을 대하는 교계의 반응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아무리 옳은 지적이라도 시기가 부적절하다는 생각에는 목회자들 사이에도 이견이 없었다.

이정근 목사(유니온교회)는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노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비판하는 것은 선교적 측면에서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침묵했어야 한다고 본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가주교회협의회 회장인 한종수 목사도 비슷한 생각이다. 한 목사는 교협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전제하면서, "지금은 교회가 사회를 위로하고 화평케 하는 데 마음을 모으고 기도할 때다.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국민들의 아픔이 가라앉고 난 뒤에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모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는 한 평신도는 "지금은 침묵할 때다. 목회자들이 제발 가볍게 행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무현이 돈을 먹었느냐, 자살이냐가 이슈가 아니고, 노 대통령이 꿈꾸던 세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게 먼저라고 본다. 죽은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천박하고 표피적인 기독교의 모습 때문에 노 대통령의 비전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모욕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한국을 불문하고 교회들이 노 대통령의 자살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허현 목사(이음교회)는 "교리적으로만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허 목사는 "이러한 사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살 문제로 접근한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교리로 간단히 재단해 버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교리적인 시각에 치우치는 것은 역사적·사회적 인식의 결여와 연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상진 전도사(풀러신학교)는 역사의식의 결여와 인문학적 소양의 부족을 주된 원인으로 봤다. "목회자들이 영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반면, 역사의식과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데는 게으르기 때문에, 이 죽음의 시대적 사회적 의미를 간과하고 개인적인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과 현 기득권에 대한 편애가 자살에 대한 비난으로 옮겨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김기대 목사(평화의교회)는 "한국 교회가 기득권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자살이 싫은 게 아니라 자살로 인해 파생된 전 국민적인 추모 열기가 싫고 두려운 것"이라고 해석했다.  앞서 발언했던 모 정치학자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는 "한국 교회가 기본적으로 자신들을 집권 세력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서적으로도 현 집권 세력에 가까우니 세상이 노 대통령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분위기가 불편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자살이냐 타살이냐 논쟁을 벌이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기대 목사는 "무형의 압력이 사람을 낭떠러지로 몰아 놓고 '혼자 떨어질래, 내가 밀어줄까' 했을 때 혼자 떨어졌다고 해서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반면 자살 행위라는 말도 있듯, 타살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한 곳으로 자진해서 들어가서 죽었다면 자살적인 성격도 있는 것이다. 에밀 뒤르켕이 나눈 자살의 구분 중에 아노미적 자살만이 우리가 우려하는 자살의 형태라고 볼 수 있으며,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모두 사회나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자살"이라고 정리했다.

박상진 전도사는 "노 대통령의 자살을 비판하는 교계 지도자들을 보면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정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설령 자살이 죄라고 하더라도 예수께선 그렇게 정죄하는 이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하지 않을까. 예수의 죽음은 타살이었지만 자살적인 성격이 있다. 반면 노무현은 자살을 선택했지만, 정치적인 타살의 성격이 강하다. 두 죽음 모두 의지적이고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유사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살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 전에 우리 사회의 위선과 이중성을 직면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목회자는 "자살을 미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교회가 자살의 부당성을 논하기 전에 이 시대의 삐뚤어진 이중성을 꾸짖어야 한다. 한국 검찰이 이건희 회장과 박연차 회장을 수사하는 태도가 달랐고, BBK 사건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조사할 때와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할 때가 달랐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장자연 리스트가 떴을 때는 <조선일보> 사주 관련 정보를 철저히 루머로 분류하며 여론을 통제했지만 박연차 리스트가 뜨고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했을 때는 반대로 행동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직면하고, 노 대통령이 가졌던 시대정신을 성찰할 필요가 있지만, 교회마저 노무현의 신화 안에 갇혀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허현 목사는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을 언급하면서, "노 대통령의 죽음이 불의한 권력에 의해 희생된 측면이 있어, 그의 죽음 이후에 노 대통령의 정신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 안에만 갇히면 안 된다고 본다. 인간적인 노무현은 탈권위적이고 민주적인 인물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오류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기대 목사는 "노 대통령의 죽음이 불쌍하고 안타깝지만, 우파든 좌파든 그의 죽음을 과장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김 목사는 대신 노 대통령이 추구했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성찰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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