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선교사 1명이면 엉터리 대통령 장로 100명 안 부럽다
진짜 선교사 1명이면 엉터리 대통령 장로 100명 안 부럽다
  • 김종희
  • 승인 2009.06.17 18: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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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종 지향적 선교는 하나님 영역 침범하는 헛된 짓

올 3월에 '울트라 펀더멘털 선교사의 사역 성공담'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관련 기사 보기) ESL을 도구로 사역하는 선교사 딕 할아버지(74)와 섀론 할머니(62)에 대한 것인데, 그들 이야기를 조금 더 하려고 한다.

우리 가족이 이들 부부와 사귄 지 6개월이 조금 지났다. 처음에 섀론과 아내는 거실에서 주로 TV 드라마와 요리에 대해서 대화했다. 딕과 나는 작은 방에서 성경 이야기를 소재로 대화했다. 때로는 두 집을 오가면서 함께 식사를 했고, Walmart, BJ's로 장을 보러 다녔다. 얼마 전에는 한국 사람들이 뉴욕으로 관광을 오면 반드시 들러야 직성이 풀리는 Woodbury outlet과 Tanger outlet에도 갔다. 올해 새로 지은 Mets 팀의 전용 구장인 Citi Field도 몇 번 같이 갔다. 영어 공부를 빙자로 노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쓴 셈이다.

그렇게 가깝게 지냈는데,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가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를 들은 딕은 "We'll miss you"를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서로 연락하며 지낼 방법을 찾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딕은 아침에(한국에서 나는 저녁에), 밤에 늦게 자는 섀론은 저녁에(한국에서 아내는 아침에) 매일 전화하자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면서 크게 웃었다. 070 전화기가 있기 때문에 국제 전화도 공짜로 할 수 있는 세상 아닌가.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이메일로 보내면 자기가 교정해서 답장해주겠노라고 했다. 한국판 싸이월드라고 할 수 있는 Facebook에 가입하라고 해서, 얼마 전에 가입했다.

우리가 돌아가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이들은요?" 하고 묻는다. 많은 한국 부모들이 우리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녀만 미국에 남겨 놓거나 데리고 돌아갔다가 한국 학교에 적응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되돌아오는 경우가 태반이기에, 이런 질문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우리도 아이들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둘 다 데리고 돌아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의 상심은 걱정만큼 크지 않았다.

   
 
  ▲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야구장을 가고, 함께 햄버거를 먹으면서, 선교 대상에서 친구로, 한 걸음 더 나가서 가족으로 진화했다.  
 
"아이를 맡아주겠다"

약 보름 전 딕은 우리 부부를 놀라게 하는 얘기를 꺼냈다. 딕도 우리에게 아이들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은 너무 어려서 부모와 함께 지내야 하지만, 할 수 있으면 몇 년 있다가 큰애만이라도 다시 이곳으로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만 괜찮다면 우리 아이를 자기가 데리고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농담하느냐고 했더니, 두 부부가 진지하게 의논했단다.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시간을 갖고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며칠 뒤 다시 얘기했다. 두 부부는 정말 진지하게 의논한 것 같다. 아이를 언제 데려오려고 하는지, 신분은 어떻게 되는지, 의료/교육 문제에 대해서 누가 법적으로 책임져야 하는지 등등에 대해서 우리 의견을 물었다. 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구체적인 얘기를 나누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뜻밖의 너무 큰 행운이어서가 아니었다. 사귄 지 6개월밖에 안 된 한국 사람에게 이런 호의를 제안하는 것이 미국 문화에서 가능한 일인가 싶어서였다.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 특히 백인들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앞뒤 잴 것 다 재고 따질 것 꼼꼼히 따진 다음에 뭔가를 결정하고, 그러고 나면 그것에 대해서 자신도 철저히 지키고 상대에게도 확실히 지킬 것을 요구하는 식이다. 이 부부는 이것저것 다 고려한 다음 우리에게 조심스레 제안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선교 대상'에서 '친구'에서 '가족'으로 진화하다

며칠 전 함께 점심을 먹다가 딕과 섀론에게 "당신들은 진짜 선교사"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호의를 베푼 답례로 입에 단 소리를 한 것은 아니다. 둘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나 귀를 기울였다. 그날 내가 그들에게 했던 얘기의 골자를 지금 독자들과 나누려고 한다.

딕과 섀론은 지금도 중국 교회에 가서 ESL를 가르치면서 선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처음에는 선교 대상이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단체로 만나지 않고 개인적으로 만났다는 것이다. 함께 밥을 먹고, 장을 보고, 야구장을 가고, 서점에 갔다. 아내는 불고기와 김치를 만들어서 그들에게 주었고, 딕은 케이크를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었다. Mother's Day에는 두 사람에게 선물도 주었다. 그렇게 함께 지내는 동안 우리의 신분은 '선교 대상'에서 '친구'로 바뀌었다. 딕은 친구라는 말을 자주 했다. 두 사람이 우리 애를 맡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던 즈음에는 '친구'에서 '가족'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물론 뒤에 'in God'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짧은 기간에 우리 관계는 이렇게 진화했다.

식구이기에 우리는 이들 부부가 교통사고로 잃은 자식 이야기, 둘이 재혼한 이야기, 엄마나 아빠가 다른 자녀들 간의 분위기 이야기, 두 사람의 성격 차이로 인한 갈등 이야기, 암 투병을 하는 섀론과 아내를 돌보는 남편 딕의 애환 이야기 등, 그들의 삶과 생각의 많은 부분을 듣고 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 대해서 - 적어도 우리가 영어로 설명해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 아는 것이 가장 많은 미국인이 되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내게 자꾸 뭔가를 가르쳐주려 했다. 나는 그들을 통해 영어를 배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런 만남 자체를 소중히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나를 가르치려는 호의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더 친해지는 길을 애써 만들어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딕은 우리를 친한 친구, 한 식구로 대하게 되었다. 급기야 자녀를 맡아줄 것인가, 자녀를 맡길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도 터놓고 고민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선교사와 선교 대상 사이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 것이다.

   
 
  ▲ 할로윈 축제 때 예린이가 썼던 가면을 쓰고 아이들을 놀래는 딕 할아버지와 아내의 한복을 입어보고 "beautiful"을 연발하는 섀론 할머니.  
 
성공한 선교사인가 실패한 선교사인가

기존의 선교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 대한 이들 부부의 사역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들은 우리에게 6개월 넘게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돈을 제법 썼다. 그러나 결과는? 그 시간과 노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자했다면 훨씬 '풍성한 열매'를 거뒀을지 모른다.

많은 선교사 또는 전도자들이 상대방에 대해서는 쥐꼬리만큼도 모르거나 아예 관심도 없으면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만 되뇐다. 상대방이 내 선교의 수단이나 대상이 될 뿐이지, 친구가 되어주고 가족이 되어주려는 마음은 없다. 그런 선교사나 전도자에게 자기 삶의 아픔, 고민을 나눌 사람은 없다.

물론 요즘에는 그리 무식하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대신 이른바 '관계 전도'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관계 맺음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에서도 '상황화', '토착화'라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옛날 같으면 자유주의, 인본주의 신학의 산물이라고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관계라는 것도 수단에 불과하다. '관계 맺음 그 자체가 바로 선교'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요즘 봉사 활동을 하러 해외에 나가는 이들도 대개 봉사를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할 뿐이지, 궁극적으로는 복음 선포, 노골적으로는 개종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많은 선교 단체들이 전략적 차원에서 NGO로 위장했을 뿐이지, 속내는 개종을 노리는 선교가 주목적이다. 상대가 개종했는가 여부가 선교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개종 지향적 선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투성이다. 독선적이 되고, 일방적이 되고, 폭력적이 되고, 무례하게 되고,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천상천하 유하독존'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태도에 대한 일반인의 솟아오르는 적개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태도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영역을 인간이 침범해서 맘대로 휘젓고 다니는 행위라는 것이다. 개종은 선교사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몫이다. 선교사는 그저 선교를 열심히 할 따름이다. 그들과 관계를 맺고, 삶을 나누고,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는 것, 그것 자체에만 충실하면 된다. 거기에는 성공과 실패가 없다. 하나님이 개종을 선물로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다. 하나님 맘이다. 그런데 자기가 개종을 시키려고 혈안이 된다. 개종에 실패하면 낙심한다. 그런 이들에게 해줄 말은 한마디뿐. "니가 하나님이니?"

딕과 섀론도 내 생각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노력하는 선교사들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선교사의 경우는 그래도 현장에서 뭔가를 깨닫고 생각을 바꿀 수 있지만, 파송하거나 후원하는 교회들이 여전히 그런 생각을 고수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데 공감했다. 몇 명이 개종했는지, 몇 명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몇 개의 교회를 세웠는지, 사람은 간 데 없고 숫자에만 연연하는 교회와 선교회에다가 보고할 숫자가 변변치 않은 선교사는 '실패자'일 수밖에 없다. 딕과 섀론도 그런 처지와 비슷하다.

"당신들은 진짜 선교사"라고 한 내 말이 그들에게 어떤 격려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진심이다. 낯선 이방인과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고, 자기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선교사가 아니면 누가 '진짜' 선교사란 말인가.

'백해무익'이라는 말이 있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말도 있다. 예수를 희한하게 믿는 장로 대통령 100명 아니라 1,000명 있는 것이 하나님나라 관점에서는 '백해무익'이다. 하지만 이런 진짜 선교사 한 명 만날 때 우리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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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Yang 2009-06-19 00:14:43
머리 속에 가득차 있는 생활화된 '계산'적 사랑을 예수님은 가르치신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그런 헛사랑에 빠져있읍니다. 사랑을 입으로 하긴 보단 손으로 그리고 걸어가서 눈으로 가슴으로 하고있읍니다. 다른 사람에게 묻기 전에 나 부터서 '비효율성'사랑을 헤찰 않고(한눈을 팔지않고) 한결같이 해나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