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밀에서의 짧은 하룻길
반디밀에서의 짧은 하룻길
  • 양국주
  • 승인 2009.07.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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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햇살 같은 아프간에서

   
 
  ▲ 반디말은 태고 이래로 드러나지 않았던 우주적 공간이 바다 밑 형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처녀지랍니다.  
 
아프간의 대지가 살아 숨 쉬는 영혼의 고향, 반디밀로 갑니다. 바미얀에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 반디밀을 보지 않고서는 아프간을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연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태고 이래로 드러나지 않았던 우주적 공간이 바다 밑 형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처녀지이기 때문입니다. 유엔 아프간 지원 기구에서 헬기를 지원해주어 힌두쿠시 4,000미터를 넘나드는 아찔한 곡예 끝에 바미얀에 도착합니다.
 
2001년 탈레반에 의해 철저히 부서진 만다라 불교의 진수가 형체만 남고 부처는 사바세계를 떠났습니다. 불타가 남기고 간 공간에서 사람들은 한 치 땅을 빼앗고 빼앗기는 진퇴의 놀음에 나라와 나라가 동원되고, 온 천지에 깔아놓은 지뢰에 밟혀 죽음으로 떠나기가 바쁜 형국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프간 납치 사건이 터진 때가 두 해 전 같은 7월이었습니다. 마땅한 불전도 없고 예불 거리도 없어 먼 산에 남긴 부처의 그림자에 합장만합니다. 잃어버린 부처를 찾으려는 것보다 돈독에 눈이 어두운 이들이 그 빈 공간에 버려야할 욕망의 흔적을 담아 사리공양을 하려나 봅니다.
 
지친 노새에 피곤한 몸을 의지했던 예수처럼 아프간 사람들의 지친 다리도 쉼을 얻는 다리공양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바람결에 풀풀 날리는 먼지를 산소처럼 들이키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자비로운 하나님의 은혜가 보다 속히 임했으면 합니다.

반디밀로 가는 해발 3,300미터 고지에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퇴적층의 연속입니다. 늙고 피곤한 자연의 육신이 모두 아프간에 자리 펴고 누웠나봅니다. 그래도 온 몸에 감기는 바람 속에는 카불에 비추어 10도나 낮은 냉기를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푸르른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이 아니라면 실제 느끼는 체감 온도는 쌀쌀맞기 그지없는 애인의 눈매를 닮았습니다.
 

   
 
  ▲ 반디밀로 가는 고지대에서 느끼는 체감 온도는 쌀쌀맞기 그지없는 애인의 눈매를 닮았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무지 설렙니다. 가을이면 이 모습으로 서울에서 여러분을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제는 '원더풀 아프가니스탄’으로 붙였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그러나 앞서가며 길 안내를 하던 바람결 먼지가 지옥으로 꺼진 듯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신천지가 보입니다. 구름마저 넘지 못하고 우뚝 솟은 바위기둥에 걸려 있습니다. 앞서가던 차량 한 대가 또 다시 먼지 속에서 자취를 드러냅니다.
 
한하운이 보리피리 불며 소록도 가던 길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톳길 오백 리로 불렀지만 반디밀 가는 길은 그야말로 끝 모를 장관입니다. 누구를 찾아 떠난 길일까요? 그리운 사람의 냄새가 그리고 그들이 살다간 흔적을 찾아 나선 순례의 길. 우리들 영혼의 숨결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함입니다. 

꿈결 같은 반디밀은 아직도 남았건만 마음은 이미 여섯 호수의 절반을 돌았습니다. 아프간 유일의 국립공원. 1년의 3분의 2를 눈 속에 갇혀 지낸 탓인지 관상동맥경화에 걸친 노인처럼 마르고 지치고 비비꼬인 자연이지만 보아주는 이 없는 들판에 들국화가 벌거벗은 몸매로 춤을 춥니다. 국화 특유의 진한 향냄새가 천지에 그득합니다. 

   
 
  ▲ 반디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 들판에 들국화가 벌거벗은 몸매로 춤을 추고, 특유의 진한 향냄새가 천지에 그득합니다.  
 

반디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아 영겁의 세월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원색의 물감을 흩뜨려 뿌린 듯 하늘 끝이나 낮은음자리표의 아랫마을까지도 자연은 온통 순결 그 자체입니다. 어쭙잖은 몇 마디 말로써 설명을 한다는 것이 그 본질을 오히려 더럽히는 듯하여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사진 속에 반짝이는 햇살을 담다가 너무나도 경건해짐을 느꼈습니다. 이토록 자연은 우리 모두를 경건으로 이끄는 비밀을 간직한 듯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신비입니다. 아프간 유엔에서 정치특보로 일하는 무자파르 알리입니다. 유엔 조정관이신 송혜란 선생과 함께 일하는 그를 처음 대하고 아프간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 사람의 영혼 속에 가득함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토록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 사람이 있을까 싶어 제가 비교되는 아픔을 무릅쓰고 사진을 박았습니다.
       

   
 
  ▲ 어쩌면 이토록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 사람이 있을까 싶은 무자파르 알리.  
 
아프간의 비밀스런 본질은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지으시고 마음에 살갑게 여기신 창조의 근본 사람에게 있습니다.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향수, 비록 대도시의 화려함은 없을지라도 때 묻지 않은 창조의 원형으로서의 순수함이 넘치는 역사의 고향입니다. 빈말 같지만 많이 보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당신. 우주적 본질이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모습입니다.

지난 세기 유럽 정벌에 나섰던 몽골인들이 아프간에 하자라는 이름으로 무려 230만 명이 삽니다. 특히 다이쿤디와 바미얀 주에는 몽골반점을 가진 후예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 나라로 찾아갈 길 잃은 버림받은 족속입니다.

탈레반이 이 지역을 습격했을 때 이들이 살기 위해 산천을 떠돌며 피해 살던 이야기는 여러 권의 책으로 엮어낸다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조국 몽골이 지지리도 궁색하게 살다보니 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인근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도 파리 목숨처럼 끌려온 우리 조선의 후예들이 삽니다. 이 아침 이들에게도 우리의 사랑과 관심이 조금만이라도 넘쳤으면 합니다. 정작 이들에게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부유해진 조국이 있지만 정작 돌아갈 형편이 아닙니다. 집 떠난 의붓자식처럼 이들을 받아줄 사회적 배려가 없는 탓입니다. 자신의 희생이 두려운 탓이요 나눔이 인색한 탓입니다.

반디말은 그 짧은 하룻길에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가르침을 주는 곳입니다. 바미얀 몽골족의 후예인 하자라 족의 고등학생들을 만나 어깨를 안아주었습니다. 이들의 나이가 14살입니다. 제 아이가 일찍 장가를 갔더라면 손녀뻘 되었을 아이들입니다. 오늘도 싱그러운 햇살 같은 아프간의 축복을 함께 기원합니다.

양국주 / 열방을섬기는사람들 국제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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