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개혁주의자의 따끔한 외침
철저한 개혁주의자의 따끔한 외침
  • 김회권
  • 승인 2009.07.2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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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철수 목사의 [하나님나라], 한국 교회 내면 성찰을 위한 지침서

하나님나라는 성경의 중심 메시지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 메시지다. ‘하나님나라’라는 말 자체는 세상 나라의 귀족과 왕후장상(王侯將相)으로 살아가는 데 만족하는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불길한 메시지다.

구약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전방위적인 소명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왕들과 제사장들, 고위관리들과 지주들에게 나아가 “야훼 하나님께서 보내서 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찢고 자복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 두루마리를 찢든지 양자택일하라”고 소리쳤다.

   
 
  ▲ 박철수 목사가 쓴 <하나님나라>.대장간 출판  
 
목회자요 신학저술가인 박철수 목사의 <하나님나라>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전폭적인 전향을 요구하는 강경하면서도 섬세한 책이다. 이 책은 성경의 중심 메시지인 하나님나라를 쉽고 설득력 있게 선포하고 있다. 그는 단지 하나님나라를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읽는 이로 하여금 그 하나님나라의 복음에 순복하든지 아니면 반발하든지 양자택일의 결단을 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 책은 성경에 충실한 보수적인 책이면서 동시에 급진적인 책이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시민이면서도 세상에 속하며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처지를 깊이 고려한 실천적인 관심 아래서 저술되었다.

이 책은 하나님나라와 몇 가지 기독교 신앙의 중심 주제들을 적절히 교직한 조직신학적 저작이면서도 동시에 성경 계시의 순차적인 전개를 존중하는 성서신학적인 저술이다. 저자는 공관복음서로부터 시작하여 지중해 일대의 그레코로만(Greco-Roman) 문명권을 향해 파죽지세로 확장되는 하나님나라의 궤적을 증언하는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을 거쳐, 완성을 향해 치닫는 하나님나라의 역동적 행로를 그리는 요한계시록으로 나아간다.

저자는 ‘하나님나라’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신약성경을 통독하도록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 중요한 명제를 선언하거나 주장할 때마다 저자는 적절한 성경 말씀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2,000년 교회사를 통해 검증된 정통 신학자들의 신학적 통찰을 적확하게 활용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한국 교회라는 특수한 목회 상황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자신의 목회 실천을 통해 터득된 지혜에 바탕하고 있다. 거의 어떤 주제에서도 저자는 균형 잡힌 관점을 제시한다. 격렬한 예언자적 파토스는 냉철한 철학자적인 논증으로 서로 균형을 잡아준다.

그동안 미시적이고 내면적인 신앙 주제들(믿음, 복음, 회개)로 간주한 주제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보수적 교회들에서는 거의 다룰 수 없는 딱딱한 쟁점들(사회 윤리적 과업이나 환경 문제 등)도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에큐메니칼(Ecumenical) 교회 진영과의 대화를 열어가는 데 좋은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50여 명 이상의 주요 기독교 사상가, 저술가, 그리고 신학자의 글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 인용도 단편적이고 기계적인 인용이 아니라, 적확하고도 절제된 인용이나 인증이다. 이런 광범위한 기독교 저작들의 섭렵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관통하고 흐르는 저자의 신학 전통은 철저하게 개혁주의적이며 좋은 의미로 보수적이다.

저자는 중요한 주제를 천착하고 논증할 때 바울, 칼빈, 아브라함 카이퍼, 디트리히 본회퍼, 헤르만 리델보스, 조지 래드, 헨드리커스 벌코프, 한스 요아힘 크라우스, 프란시스 쉐퍼, 오스칼 쿨만, 존 스토트, 리차드 마우, N.T.라이트, 김세윤 등 철저하게 개혁주의 진영의 저술과 사상에 기대고 있다.

우리가 이 <하나님나라>의 저자를 철저한 개혁주의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는 인간의 죄성을 통렬하게 자각하며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이 없이는 어떤 구원도 가능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그는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 원리를 꼭 붙들고 있다.

둘째, 그는 무엇보다도 예언자적 영성, 사회변혁적 영성, 그리고 온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화란개혁주의적인 신학과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칼빈적인 신학 사상을 참신하게 되울리고 있다.

책의 여러 곳에서 보이는, 동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여러 도전적 상황들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예리하다(가난한 자, 생태, 교회의 기복주의적 경향). 말씀의 중심적 지위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성도들이 직면한 상황을 말씀 안에서 자리 매김하고 분석하고 그것에 대한 응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개혁주의적이다.

셋째, 교회의 선교를 통해 확장되는 하나님나라를 말한다. 교회에 관해서 말하는 모든 갈피에서 우리는 저자의 예언자적인 고독, 울분, 탄식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교회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시아 일곱 교회 중 다섯 교회를 향하여 주님이 가지셨던 간절한 탄식과 아픔을 공유하는 고립된 예언자와 같은 자리에 서 있다.

한국 교회의 현재 모습에 크게 실망한 저자는 그만큼 더 교회 갱신을 희구하고 있으며, 교회 갱신을 통한 하나님나라 운동을 앞세운다. 미시오 데이(mission Dei)가 아니라 교회를 통한 선교(missio ecclesia)에 치중한다. 그래서 교회 갱신은 그에게 첨예한 주제가 된다. 이처럼 저자는 폭넓은 사회 윤리적 관심을 뒀음에도 교회의 우선적 역할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개혁주의 신앙 노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글은 힘이 있고 간절하고 애절하다. 급진적이지만 섬세하다. 밖과 남을 향해 외치는 그 음성은 실상 자신을 향한 각성의 다짐이기도 하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적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참된 가치와 원칙을 지키려고 거룩한 고집을 내세운다. 그들은 개인 윤리가 강한 분들이다. 성경 중심 가치의 보수에 그들의 완강함은 때로는 경원감(敬遠感)을 자아내지만 대부분 신뢰와 존경심을 자아낸다.

박철수 목사는 자신이 믿는 신앙 원칙대로 살고자 기회주의적 처신을 경멸하고 성공을 위한 변통보다는 원칙과 가치 중심으로 사는 보수주의적 목회자다. 그는 스스로 교회의 규모를 줄여가면서까지 복음 진리를 목회 현장에 실천하려고 한다. 그의 고집스럽고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 말씀 순종 실험이 안온한 위로를 바라고 중산층적인 삶의 향미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가시 돋친 말씀이 되고 마치 사랑이 모자란 괴팍한 목회자의 채찍질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이 점이 그의 동역자들과 친구들로 하여금 저자의 목회 궤적을 부러워하게 하면서도 두려운 시선으로 주목하게 한다.

우리는 책 전체에 걸쳐서 한국 교회를 향한 질타의 목소리를 중심음으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채찍질하는 내면의 성찰이다. 그가 펼치는 말의 결은 무교병처럼 순박하고 우슬초처럼 청명하다. 사특함이 없다. ‘예’와 ‘아니오’가 분명하다. 어떤 주제에서든지 얼버무림이 없다. 사색적이고 관조적인 글을 충분히 쓸 수 있는 저자지만 이 책은 그 성격상 다소 긴박한 호소체와 단언적인 직설어법이 주조음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네 부류의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추천한다. 목사님과 신부님, 장로님, 권사님들이 읽기를 원한다. 저자의 간절한 탄식과 호소에 마음을 열고 책을 읽어 가면 일단 영적 정화 효과를 느낄 것이다. 비판을 수긍하는 영혼은 영혼의 정화를 경험하는 법이다. 저자의 분노와 탄식에 공명하다 보면, 성경의 예언자들과 사도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교회를 향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시선과 조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이 책을 한국 교회의 주류에 실망하고 냉소적이 되어가는 기독 청년들에게 추천한다. 평소에 성경을 읽지 않는 기독 청년들은 교회 목회자들이나 교회 모습에 대한 실망을 통해 신앙이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청년들은 신앙을 발생시키는 근본 원천인 성경과 그 성경 안에 계시 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성경의 중심 메시지를 단숨에 요약한다.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부각시킨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은 동시에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죄에 대하여 분노할 줄 모르고 지상 권력을 장악한 자들의 부드러운 기도 소리에 잠들어버린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다. 이 책은 이런 균형을 잘 잡아주고 있어서 기독 청년들에게 풍성한 영적 자양분이 될 것이다.

셋째, 저자의 다른 책들(<축복의 혁명>, <돈과 신앙>,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이 그렇듯이 이 책은 단지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를 단숨에 소개받기를 원하는 신앙 추구자에게 신선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국 교회의 반기련이나 안티기독교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나 한때 교회에 다녔으나 이제 교회 반대에 앞장서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 책에는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아니라면 터뜨릴 수 없는 가슴 아픈 분노가 있다. 신적 파토스라고 불리는 가장 주도면밀한 의지적 분노가 있다. 그것은 이성을 잃었기 때문에 오는 분노가 아니라, 감정과 이성이 절묘하게 균형을 잡은 신적 분노다. 그것은 사랑과 분노, 기대와 좌절이 한 묶음이 되어 분리될 수 없는 복합 감정으로서의 분노다.

안티기독교 사이트들은 2,000년 기독교회의 역사가 이런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에 응답하기 위한 숱한 허물벗기의 역사였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 세상 어떤 민간기구나 단체도 교회만큼 자기 갱신적이거나 역동적이지 않다. 오로지 하나님의 교회,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만이 이렇게 부단한 정직한 자기비판과 자발적 갱신 노력을 경주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속한 개혁 교회는 항상 스스로 개혁됨으로써 세상을 개혁하는 교회다. 그래서 저자는 철저하게 자기를 분석하고 쇄신하려고 하는 기독교 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종교는 자기 성찰과 쇄신의 힘을 보유한다. 어떤 민간적 결사체도 교회만큼 치열하게 자기 갱신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요구하는 수준의 자기 비판적 갱신 노력을 추구하는 한국 개신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한국 사회 전체의 희망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준열한 자기비판을 통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한국 개신교회가 한국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나라 신학은 자기를 하나님 뜻에 복종시키려는 자들의 신학이다. 성경 말씀이 내뿜는 거룩한 탐조광 앞에 벌거숭이 죄인으로 드러난 우리가 하나님께 자복하고 그동안 외면했던 이웃 사랑의 명령에 순복할 때 하나님나라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김회권 / 숭실대 기독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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