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정치적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신앙이 정치적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 김성민
  • 승인 2009.07.30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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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짐 월리스의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꾸는 7가지 방법]

출판사에서는 제목을 정할 때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한다. 책의 성격을 잘 보여주어야 할 것이고 독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도록 주목성이 좋아야 할 것이다. 특히 번역서인 경우 아무리 원제가 좋다고 하더라도 번역된 언어가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든 경우 과감하게 다른 제목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짐 월리스가 쓴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꾸는 7가지 방법>은 편집부가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 한국의 대통령이 기독교 장로라는 것과 한국 교회가 방향을 잃은 이명박 정권을 세우는 데 일조했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크다는 점 때문이다. 이슈와 관련된 책을 출판할 때는 이런 정황을 무시하기 힘든데 이 책의 제목은 그런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제목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원제목은 ‘The Great Awakening’<대각성>이다. 같은 책이 영국에서 ‘Seven Ways to Change the World’라는 부제로 출간되었는데 이 부제를 제목으로 선정한 것 같다. ‘대부흥’이나 ‘대각성’이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미국적일 수 있다는 염려다.

사실 ‘대각성’이라는 말은 ‘큰 깨우침’이나 ‘다시 크게 눈뜸’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살리는 쪽으로 제목을 달아도 좋았을 것이다. 차라리 종교적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여전히 부족한 종교적 용어의 한계와 의미를 갱신하는 노력을 보이는 책으로 인식시켰다면 어땠을까. 짐 월리스의 모든 책은 그런 식으로 기획되었다.

이 책 또한 기독교의 정치 참여나 사회 변화에 대한 기존의 종교 우파적 접근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에게 기존의 정치 참여 방식을 반성하고 종교(기독교)가 사회에 참여하는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의 강조점을 살렸어야 했다.

   
 
  ▲ 짐 월리스의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꾸는 7가지 방법>.  
 
종교적 용어로 사회에 참여하는 길

짐 월리스의 글을 읽으면 개인적 영성과 사회적 또는 공동체적 영성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의 대표적인 책 <회심>(IVP)이 그렇고 <하나님의 정치>(청림)는 더욱 그렇다. ‘회심’이나 ‘하나님의 정치’이라는 용어는 미국 상황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용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부흥은 흔히 정치가 붕괴했을 때, 즉 정치가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정치 변화를 위해 사회운동이 일어나는데, 최고의 운동은 대체로 어떤 영적 토대를 지닌다.”(19).

개인의 새로운 ‘소명의식과 헌신’이 사회정의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실천의 힘으로 바로 이어지는 신앙의 부흥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종교 우파의 정치적 실패는 역설적이게도 신앙의 진보성 또는 급진성을 새롭게 자각하게 했으며 이것은 ‘진보적 복음주의자’ 내지 ‘복음적 진보주의자’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이제 도식적 패러다임의 구분으로 규정하기 힘든 새로운 형태와 성격의 운동이 일어나는데, 짐 월리스가 보기에 이것은 거의 ‘대각성운동’의 성격을 지니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것이다.
   
짐 월리스는 ‘신앙과 영적 가치관’이 정치의 흐름을 바꿀 수 있고, 신앙이 공적 생활을 증진시키는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나아가 영적 갱신이 사회정의를 쟁취하는 데 도움을 주며, 부흥이 개혁에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올곧고 일관된 영성이 필요하며, 반대로 건강하고 살아있는 영성을 위해서는 사회정의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적 헌신이 필수적이다.

우파적 방식으로 종교의 언어를 ‘폭력적’이고 전제적인 언어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기독교의 복음적 가치를 사회성 가운데서 성육신적으로 체화하는 방법론적 또는 의식적 고민과 실천이 우리에게도 과제로 주어져 있다.

복음은 문제 해결의 방법론이자 영성적 실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람은 존 하워드 요더다. 짐 월리스의 대부분의 사상은 그에게 기대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월리스가 요더와 다른 점은 그 자신이 정치적 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월리스는 요더의 사회 윤리와 예수의 정치를 삶으로 체화하려고 하면서도 신앙이 공적 이슈에 영향을 미치도록 실천하는 영성적 운동가이다.
   
정치적 이념에 대한 논리적 일관성에만 지나치게 사로잡혀서 정작 도덕적 일관성이나 종교적 신념의 일관성을 희생하는 경우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한국 상황에서도 새로운 정치적 풍토 또는 기독교인의 사회 참여의 대안적 의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민 지배와 전쟁의 경험, 그리고 독재 정권의 폭압적 트라우마를 내재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역사적 반성과 이념적 논의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전제임에 틀림없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어디 있느냐의 문제는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자주 간과하는 주제여서 사회적 문제와 이슈들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회정의를 위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이슈로 보이는 ‘도덕적 운동’은 폐기되기보다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도덕적 정치’와 ‘가치 지향적 정치’를 하면서도 우파적인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때 ‘사랑과 정의의 혁명’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혁명에 공동체적으로 헌신하는 영성이 중요하다. 복음을 정치적 도구로만 사용하는 종교적 우파와 거리를 두면서도 이 시대에 해결되어야 할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눈감지 않는 종교적 원칙에 대한 각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복음적 급진주의를 지향한다는 것

가난한 자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의를 올바로 실현하는 것은 성경과 복음의 가르침이자 신앙의 핵심이다. 불의를 싫어하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약자들에 대한 권리를 옹호하는 실천은 매우 급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대안적 가치를 삶으로 실천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행동이다”(105).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가시적으로 이 세상에 보여주고 사랑과 정의를 삶의 방식으로 채택하며 실천하는 대안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상황에서 국가의 ‘공동선’에 대한 책임 추궁은 교회가 예언적으로 감당해야 할 종교적 행동이자 영성운동이다.
   
짐 월리스는 보수주의자들이 옹호하는 문화와 가치관의 중요성이나 개인의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사회적 책임이나 공평한 기회의 보장과 제공을 모두 담아내는 대안적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현대의 정치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정치가 나아가야 할 뚜렷한 방향으로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두 정치 이념의 화해와 실천이다. 이를 위해 월리스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치 지향적 정치를 추구하면서도 그 가치의 적용을 위해서라면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신앙적 또는 정치적 대안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종교적이면서 정치적인 7가지 헌신

월리스가 이전에 출간한 책들과 이 책의 다른 점은 종교적이면서 정치적인 헌신을 정리한 7가지 부분이다. 이 7가지의 용어들은 모두 사회 변혁을 위한 전략적인 원칙을 의미하면서도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구체적인 헌신이 가능한 실천적 목록이기도 하다. 포용과 기회, 청지기와 갱신, 평등과 다양성, 생명과 존중, 가족과 공동체, 비폭력적 현실주의, 통전성과 책임.

이 7가지의 원칙의 공통점은 종교적인 가치와 정치적인 가치를 분리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모두는 복음적 가치의 목록이기도 하지만 보수적 정치와 진보적 정치가 선호하는 용어들의 만남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종교와 정치가 새로운 차원에서 만나고 보수와 진보가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이념적 대립을 뛰어넘는다. 이 모두가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방향의 원리이자 실천 원리인 셈이다.
   
짐 월리스의 말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정치가로서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 정치의 방향은 가치 지향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실천을 담아내는 일종의 영적 흐름에 의해서 주도될 것이다. 한국 상황에서도 촛불집회를 대표하는 새로운 시민사회운동의 흐름이 생겨나면서 사회 참여에 대해 이전과 다른 차원에서 인식하고 행동하는 새로운 사회 참여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가치 지향적이면서도 실천적 운동에 대해 ‘가볍게’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문제 해결을 위한 현장에서의 봉사적 참여에는 진정성이 있고 집중도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독교는 ‘사회 참여를 어떻게 할까’라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기독교 자체의 종교성에 대한 ‘대각성’ 수준의 반성과 새로운 신학적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월리스의 충고에 귀 기울여 ‘혁명적 기도’와 ‘겸손한 예언’ 그리고 ‘성육신적 급진적 실천’ 등의 신앙으로 치열하게 사회 변혁의 길을 고민하고 준비할 때다.

김성민 목사는 고신대 신학대학원과 서강대 대학원(철학 석사)을 졸업했다. 인문학이 세상과 교회의 소통과 변혁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복음과상황>에 다양한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SFC 간사로 캠퍼스와 연구소 그리고 출판부에서 사역하다가 현재는 휴직 중이다.

* 이 글은 <복음과상황>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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