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DJ를 그만 보내드리자'고 말하는가
누가 'DJ를 그만 보내드리자'고 말하는가
  • 김명곤
  • 승인 2009.08.25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의 부활 믿은 DJ, 영원히 부활한다

   
 
  ▲ 이우삼 올랜도 한인 회장이 22일 오후 6시 올랜도한인성당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198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김 대통령이 고문당한 흔적을 만져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김명곤)  
 
"저는 그의 고문당한 흔적을 보았습니다. 가까이에서 상처를 직접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고난을 극복했는지를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 이 분이 정말 민족을 사랑하는 분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2일 저녁 6시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벌어진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식에서 이우삼 한인 회장이 털어놓은 '증언'의 한 토막입니다. 그는 1982년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DJ가 가톨릭 소모임에서 털어놓은 신앙 고백과 인생 역정을 직접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우삼 한인 회장의 증언을 들으면서 전율 같은 것을 느껴야 했습니다. 침통한 표정으로 당시 장면을 회상하면서 그가 한 증언은 마치 예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성경의 기록처럼 생생하고 장엄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보다 전 세계가 DJ의 죽음을 더 슬퍼하는 것 같다"면서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자산에 대한 평가를 너무 절하하는 것 같다"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김대중은 숱한 투옥과 고문과 회유와 압력에도 굴하지 않은 댓가로 생사의 막바지에 까지 이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불사조처럼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그는 '죽어야 산다'는 진리를 누구보다도 잘 터득하고 있었고, '역사의 부활'을 굳게 믿고 역사 앞에 진실하고자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먼 훗날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두려워하였고, 당장의 안위와 개인의 영달 보다는 민족 공동체의 번영을 염두에 두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애증 관계 속에서 평생 경쟁자였던 YS가 마지막 순간에 화해를 선언하고,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전두환 씨도, DJ를 눈엣 가시처럼 여기며 속 불편해 하던 MB도 문병을 하고, 각계의 내로라하는 검은 양복들이 줄줄이 병상을 찾았습니다. 물론 이들의 문병과 조문행렬에 정치 공학적 속내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곧 죽을 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확인하고 싶은 속마음을 가진 자들도 더러 있었을 터 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문병이 어떤 목적이 되었든 DJ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DJ를 그만 보내드리자'고 말하는 어떤 사람들의 속내

그런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DJ가 서거하자마자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인물들까지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상찬'의 홍수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자니 모두가 '동교동계' 가신들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뭐 그중에는 의당 상찬을 할 자격이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담과 인신공격을 하던 자들조차 입에 침도 안 바르고 'DJ는 위대했다'고 복창하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나라당 당원 행사에서 "김정일이 공항에서 껴안아 주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치매든 노인처럼 얼어서 서 있다가 합의해준 게 6·15 선언이다"며 인신공격성 독설을 퍼부었던 여성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역사의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더군요. 이 여성 의원이 DJ의 '커다란 족적'이라고 수식 없이 애매하게 표현한 것이 혹 어느 날 또 한바탕 독설을 내뱉기 위한 복선인 듯도 하여 찜찜하기는 했지만, 일단 추모 분위기를 타고 DJ를 칭찬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여당 대표라는 분이 한 말은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앞벽 치고 뒷벽 치는' 말이어서 모두를 어안이 벙벙하게 했습니다. 이 분은 불과 수 주 전만 해도 DJ가 MB 정부를 향하여 '민주주의를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다가 환각을 일으킨 게 아닌가 여겨진다… 이제 김 전 대통령은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고 악담을 퍼부었다던 분입니다. 그러던 그가 DJ가 서거하자마자 "김 전 대통령은 나라의 민주화와 평화 통일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한국 정치의 큰 별이었다"고 추켜세우더군요.

   
 
  ▲ 올랜도한인성당에 모인 추모객들이 일어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김명곤)  
 
MB 정권의 언론 탄압에 앞잡이 역할을 해 DJ에게 상심을 안겨주고 있던 인사도 기자 시절 DJ와의 과거 인연을 내세우며 '울컥'했다는 소식도 들리던 터 입니다. MB뿐 아니라 이들 모두에게 '위선자!'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에 충분한 언사들입니다.

그런데요. DJ가 서거하자마자 튀어나온 말 가운데 그 '저의'가 특히 의심스러운 말이 있습니다. '이제 그만 DJ를 보내드리자'는 류의 말입니다. 이 말은 '그동안 민주화를 위해, 남북화해를 위해 DJ에게 너무 무거운 짊을 지게 했다. 이젠 우리가 그의 과업을 이어 나가야 할 때다'는 좋은 뜻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가령 전두환 같은 이가 '이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한 말이나 DJ 저격수 전여옥 의원이 '이제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갑니다'라고 말한 것은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이제 DJ를 보내드리자'는 말이 평소 김대중을 몸서리치게 미워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면, 'DJ와의 영원한 단절'을 바라는 속내가 숨겨져 있다고 밖에 해석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뒤 돌아서서 '거참, 잘 죽었다'며 미소를 지을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을 것인데요, 아마도 그들 가운데 조갑제, 김동길은 분명 포함될 것이고… MB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이에 속할 것입니다. 뭐 평소 DJ와 이런 저런 인연으로 엮여 한 배를 타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변절을 해버린 인물들, 아마도 정치 철학이나 신념을 공유하지 못하면서도 정치적 목적으로 DJ주변을 맴돌고 있는 치들도 이에 포함될 듯합니다.

이들이 김대중을 '그만 보내드리자'고 말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DJ의 '민주주의 세상', '남북화해' 유업을 따를 생각이 없거나, 그럴 자신조차 없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DJ를 어서어서 보내드리자'고 내뱉고 싶은 것을 꾹 참았을 것입니다. 국민장이냐 국장이냐 논란이 의외로 '빨리' 정리된 것이나, 9일이 아닌 6일로 짧게 치러진 것도 DJ를 서둘러서 빨리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이래서 가능한 게 아닐까요?

역사의 부활, 김대중의 부활

   
 
  ▲ 송기찬 할아버지가 임시로 마련된 분향대에서 분향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김명곤)  
 
그런데요, DJ 혐오증에 걸린 사람들이 'DJ를 빨리 보내드리자'고 주문을 외우고 또 외워도 김대중은 '보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북 조문단의 조문, 당국자 간 회동, 청와대 방문이 이뤄지며 잠시나마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것을 보며 역사 앞에 당당하게 살아온 김대중은 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뿐일까요.

한국 언론은 물론 AP통신을 비롯한 외신들도 '죽은 김대중이 남북에 화해를 다시 가져오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더군요. 뭐, 북 조문단의 조문이나 청와대 방문 등을 놓고 남북관계가 풀릴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는 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김대중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통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게 바로 '역사의 부활'이라는 것이겠지요.

역사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김대중의 부활은 끔찍한 일이고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들이 김대중의 부활을 극력 부인하기 위해 무덤에 흙이 마르기도 전에 'DJ 부관참시'에 우르르 몰려가는 그림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산 김대중에게 빨간 옷을 입혀 '홍코너'에 몰아넣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온 사람들이 죽은 김대중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은 '안 봐도 비디오'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DJ가 누굽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는 역사의 부활을 굳게 믿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역사 앞에 살아온 사람입니다. 역사를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죽여도 골백번 죽여도 부관참시를 해도 죽지 않습니다.

그가 섬섬옥수로 남긴 민주화와 남북화해의 흔적들, 애민애족의 흔적들이 생생하게 남아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있는데, '이젠 DJ를 그만 보내드리자'고요?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DJ가 가고 없는 오늘,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며 민족의 부활을 읊은 한용운 님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