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지 않나요?"
"위험하지 않나요?"
  • 이태후
  • 승인 2007.04.09 12: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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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우리 동네에서 날마다 넘치는 은혜를 누리며 살다

▲ 우리 동네는 필라델피아에서 총기 사고가 많이 나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은 사실이다. (이태후)
내가 사는 동네는 '위험한 곳'이다. 필라델피아 시민들에게 North Philly는 우범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템플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Broad Street 서쪽으로는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템플대학 경찰과 필라델피아 경찰청도 내가 사는 곳 두 블록 전까지만 순찰한다. 필라델피아에 사는 한인들 사이에서는 우리 동네는 차를 타고 지나가서도 안 되고, 혹시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게 되면 절대로 차를 세워서는 안 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3년 전 여름에 Gateway라는 대학생 빈민 선교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였다. 어느 날 저녁, 참석한 학생들이 우리 집에 와서 함께 토론을 하고 있었는데, 바깥에서 서너 발의 총소리가 울렸다. 학생들을 진정시키고 나가보니, 길 건너편에 어떤 사람이 총에 맞아 죽은 채 길에 누워 있었다. 흥분한 동네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니, 마약과 연관된 보복성 살인 사고였다. 3년 전에는 필라델피아 시에서 일주일 사이에 열 건의 총기 사고가 있었는데, 그 중 세 건이 우리 동네에서 일어났다. 신문에 총기 살해 사건이 난 지역 지도가 나왔는데, 우리 동네는 빨간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얼마나 위험한지를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다.

3년 전에 우리 동네에 있는 Messiah College 분교에서 부탁을 해서 학생들에게 내 사역을 소개한 적이 있다. 메시야대학은 펜실배니아 주도 Harrisburg에 본교를 둔 기독교 대학인데, 학기마다 50-60명의 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살며 템플대학에서 강의를 듣는다. 30여 분 정도 내 사역을 소개한 후 내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혹시 우리 집 근처에 들어와 본 적이 있습니까?" 50여 명의 학생들 가운데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았다. 겨우 여섯 블럭 떨어져 있는데, 그들에게 내가 사는 골목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아니,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안전 수칙을 철저하게 잘 지키고 있는 셈이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한 학생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 동네에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어느 동네에 사는지 알고 나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묻는다. "거기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 학생도 그런 뜻으로 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 학생이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다. "내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학생은 자신이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은 아마도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신변의 위험, 총기 사고, 나를 향한 차별/적개심, 혹은 가난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처음에 이 동네로 들어올 때에는 나름대로 낮아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웃들과 친해지면서 그래도 이제는 많이 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불쑥 고개를 내미는 우월감, 자기중심적 사고방식 등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그들을 섬기겠다고 다짐하고는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높은 곳에 서서 내 이웃들을 판단하는 나 자신이 내게는 걸림돌입니다.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자꾸 내 시각에서 판단하고,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 그런 내 모습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무엇이 특별히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갑작스런 질문에 생각나는 대로 대답한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잘한 대답이었다. 정말이지 신체적 위험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상대적인 개념이다.

내 친구들 중에 The Simple Way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사는 곳은 Kensington이라는 동네다. 한때는 필라델피아의 공단지역으로 중산층 노동자들이 살던 곳인데, 공장들이 다 빠져나가면서 을씨년스런 빈 건물들만 휑하니 남고, 실직한 이들이 빈민으로 전락한 동네다. 미국에서 가장 순도 높은 헤로인(99%)이 거래되고, 길거리는 폭력과 매춘으로 얼룩진 곳.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Kensington에 친구를 방문하러 간다고 하면 그들은 내게 이렇게 경고를 한다. "거기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가려고 합니까?" Kensington에서 만난 내 친구의 이웃들에게 내가 어디 사는지를 알려주면 그들은 놀란 눈을 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North Philly? 그렇게 위험한 곳에 어떻게 살지요?" 내가 보기에는 Kensington이나 우리 동네나 별 차이가 없는데, 서로 남의 동네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 약도 오른편에 템플대학이 보인다. 우리 동네는 이 대학 건너편에 있다. 온통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곳이라는 뜻이다. (이태후)
우리 동네가 위험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통계가 우리 동네를 필라델피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범지역임을 증명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의 안전을 사람의 기준과 방법으로 도모할 수 있으랴. 무릇 육체를 멸할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능히 영혼을 멸할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했는데, 내게 육체적 해를 가할 수 있는 이들을 무서워하는 것은 정말이지 한심하게 느껴진다.

상식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가 안전하다고 가르친다. 정말 그럴까? 한밤의 적막을 깨는 총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 조용한 교외에서 부유하게 사는 이들은 그들 나름의 문제로 잠 못 이루고, 영혼이 병들어간다. 상담 전문가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있다. "빈민가에서는 서로 죽이고, 교외에서는 자살한다." 빈민가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서로를 해치지만, 교외에 사는 이들은 모든 걸 다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과 우울증으로 마약 중독에 빠지거나, 심해지면 자살을 하게 된다.

4년 전에 필라델피아 교외의 부유한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실패해서 내가 아는 교사가 상담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 학생은 자살계에 들어있었다. 이미 자기 파트너가 자살을 해서 자기 차례였는데 실패를 한 것이다. 그 학생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열 개 정도의 자살계가 그 학교에 있었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목을 조르는 놀이가 유행해서 그 여파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이 늘고 있다. 부족한 것 없이 다 갖춘 아이들이 심심해서 목을 졸라 - 스스로 목을 매거나 친구들이 목을 졸라서 실신하기 직전에 풀어준다 - 환각 상태에 빠지거나, 잘못하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기도 한다(Choking Game). 이래도 조용한 교외가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는 이처럼 방탄 장치가 되어 있는 사이로 돈을 주고받는다. 이런 것이 생명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은 서로를 죽이지만 부유한 사람은 스스로를 죽인다. (이태후)
우리 동네가 위험하다구? 그렇게 말하는 건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더 위험한 적인 교만, 권태감, 우울증, 탐욕, 음란, 시기, 성공/출세 지상주의 등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소치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신체의 위협은 상대적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해를 입지 않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교외의 게이트 커뮤니티에 살아도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위험한' 우리 동네에서 나는 하루하루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나를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삶이 아마도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사모하는 삶이 아닐까?

이태후 목사 / 템플대학 IVF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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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빈 2018-05-30 17:27:28
아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