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단을 밀어낸 '하람비'의 힘은 어디서?
갱단을 밀어낸 '하람비'의 힘은 어디서?
  • 박지호
  • 승인 2009.10.15 13:07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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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람비', 스무 여섯 해 동안 패서디나 빈민가에 희망을 심다

일명 '피의 교차로'(blood corner)라 불렸다. LA 근교 패서디나 북서쪽, 하워드 거리와 나바로 거리가 만나는 곳은 남가주 전 지역을 통틀어 낮 시간 동안 범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1982년 기준) 지역에서 우열을 다투던 갱단의 근거지가 그 교차로를 중심으로 마약 판매와 매매춘을 일삼았다. 대낮에도 총격전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다. 반대편 갱단원으로 오인 받아 총격을 받은 일도 있었기에, 당시 지역 주민들은 특정 갱단을 상징하는 색깔의 옷은 입지 못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일대 어느 지역보다 안전한 곳이 됐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하람비(표시된 부분)가 위치한 하워드 거리와 나바로 거리가 만나는 곳. 한때 남가주 전 지역을 통틀어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다.  
 
퍼킨스 목사가 '피의 교차로'로 찾아온 까닭?

   
 
  ▲ 퍼킨스 목사 부부. 17살에 호된 가난을 피해 고향 미시시피를 무작정 떠났던 퍼킨스 목사는 그리스도인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빈민가에 교회를 세우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민들의 자립을 도왔다.  
 
존 퍼킨스 목사가 '죽음의 교차로'로 터전을 옮긴 건 1982년이다. 고향 미시시피에서 아내 베라 여사와 함께 도시 빈민 선교를 하던 퍼킨스 목사는 사역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무렵, 패서디나로 거처를 옮겼다. 이들은 다른 곳을 마다하고 가장 위험하다는 동네에, 그것도 갱단의 본거지 한복판에 둥지를 틀었다. 갱들은 낯선 이웃의 출현에 집에 불을 지르고 짓궂은 총질로 환영 인사를 대신했다. 

퍼킨스 목사가 이사 간 파사데나 북서쪽 지역은 가난에 찌들고, 인종차별에 억눌린 사람들이 모여든 도시 빈민 지역이다. 퍼킨스 목사는 가난이 가정의 해체를 유도했고, 가정의 붕괴는 교육의 부재를 낳았다고 봤다. 교육의 부재는 리더십의 결여와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이어져 가난을 심화시킨다고 여겼다. 미래를 잃은 젊은이들은 마약 거래나 갱단에 소속되는 것으로 삶의 안정감을 찾으려고 했고, '감옥을 궁전처럼' 여기며 드나들었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고난을 선택했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퍼킨스 목사는 죽음의 교차로 한 모퉁이에 비집고 들어가 그들의 이웃이 되었다. '커뮤니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보다 '커뮤니티가 되는 것'이 변화를 일구는 첩경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퍼킨스 목사는 주변의 흑인, 라티노 빈민가 어린이들을 집으로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동네 아이들에게 그들은 선생님이자 친구이자 부모였다.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먹이고, 숙제를 봐주고, 함께 놀아주었다. 퍼킨스 목사의 이런 섬김이 '하람비'(Harambee Ministries)라는 교육 공동체를 잉태시켰다.

   
 
  ▲ 하람비 소극장에 그려진 벽화. 20여 년 전 이곳은 매춘을 하던 텐트가 있던 곳이다.  
 
'함께 변화를 일구자'

   
 
  ▲ 매년 여름 캠프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인턴을 모집한다. 6주 동안 학생들에게 다인종 문화 속의 도시 빈민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850불을 지급한다.  
 
하람비는 '함께 변화를 일구자'(let's get together and push)는 뜻의 아프리카 말로 변혁을 위한 연대와 화합을 의미한다. 하람비는 '사람을 키우는 일'을 존재 목적으로 삼고, 지난 26년간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지역사회 리더로 커갈 수 있도록 안전한 쉼터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가난과 절망이 쌓아올린 두껍고 높은 벽을 허물고 나올 수 있는 지역사회의 리더(Indigenous Leader)를 키워내는 게 하람비의 목표였다.

올해로 26년째를 맞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는 50여 명의 지역 어린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해마다 열리는 여름 캠프(83년부터)에는 60여 명의 어린이들이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누리고 있다.

6세부터 12세까지는 하람비사립학교(95부터)에 다닐 수 있다. 입학식날 '하람비사립학교에 들어가길 2년 동안 기도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지역에서 인기가 높다. 탁월한 교육 프로그램과 교사들의 헌신적인 섬김으로 'Teaching Like Jesus Ministries' 등의 단체로부터 '어린이 사역 최고 실천상' 등을 받기도 했다. 많은 사역 단체들이 하람비의 도시 빈민 지역 어린이를 위한 교육 모델은 응용하고 있다.

   
 
  ▲ 2세부터 40세까지. 하람비는 교육 공동체이자 가족 공동체다. 하람비의 역할은 학생들이 졸업한 이후에도 지속된다. 매주 한 번씩 졸업생들과의 만남을 갖고 진학, 취업, 가정 상담을 해주고 있다.  
 
'배움의 자리서 섬김의 자리로'

   
 
  ▲ 하람비 주니어 스태프로 참여한 지역 청소년들. 작년에는 주니어 스텝 학생들이 500불을 모아서, 입술갈림증 어린이의 수술비를 지원하기도 했다.(사진 제공 : 하람비)  
 
하람비는 학생들에게 '배움의 자리로 들어가 섬김의 자리로'(Enter to Learn, Exit to Serve) 나아갈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13세에서 18세 사이의 청소년은 '주니어 스태프'(89년부터)라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주니어 스태프는 청소와 저학년들의 공부를 돕고 일정액을 장학금으로 지원받는다. 2008년에는 44명이 참여했고, 총 4만 6,000불이 지급됐다. 2008년, 노스웨스트 패서디나 지역에서 가장 많은 청소년을 고용한 단체가 하람비였다.

그렇게 하람비는 절망과 가난으로 찌든 어둠의 교차로를 조금씩 밝혀나갔다. 하람비를 드나드는 동네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마약을 팔던 이들도, 매춘을 하던 천막도, 총질을 해대던 갱단도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기 시작했고,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북서쪽 패서디나 빈민가의 '성시화'는 그렇게 조용히 진행됐다. 

하람비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졸업생들이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하람비를 다녔던 마키스는 마약 중독자였던 가족들과의 삶을 단절하고, 이웃을 돕고 싶다며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하람비 사역을 돕고 있다. 또 알콜 중독으로 아버지와 두 형을 잃은 커티스는 하람비를 졸업하고, 경찰학교에 들어가 임관을 앞두고 있다. 주니어 스탭으로 일했던 빅터는 하람비 학생들을 자신의 이발소로 초청해 무료로 섬기고 있다. 
 

   
 
  ▲ 퍼킨스 목사를 이어 지난 10여 년 동안 카라스코 부부가 하람비의 살림을 꾸려오다, 지금은 부르더호프공동체 멤버들이 하람비 사역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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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i99.com 2011-05-07 18: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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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맨 2009-12-03 14:17:05
참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虛車 2009-10-18 16:21:04
이런 기사들을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하나님의 선교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 다시 마음을 추스리게 됩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smokybear 2009-10-17 09:21:27
세상을 조금씩 바꿔고자 하는 노력과 그 결실. 참 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