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는 십자가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드라큘라는 십자가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 송병주
  • 승인 2009.10.27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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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 재해석1] 실천적 신비주의로서의 십자가

1. 드라큐라는 왜 십자가를 두려워하는가?

   
 
  ▲ 드라큘라는 십자가를 무서워하긴 하는 것일까?.  
 
소위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십자가를 메고 다닌다. 악귀를 막고 쫓기 위해서. 드라큘라가 십자가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하겠는가. 나무 작대기 두 개를 교차하면 나무의 어떤 에너지가 증폭되면서 나무의 파워가 강해지는가. 아니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모든 십자가에는 예수님의 원한(?)이 배여 있어서 모든 귀신들이 무서워한다고 해야 하는가. 그래서 십자가를 앞세우고 밤길을 걸어가면 드라큐라뿐 아니라 달걀귀신, 처녀귀신, 더벅머리 총각 등 모든 잡귀들은 십자가 보호막으로 인해 덤비지 못하고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신앙적인 것일까? 미신적인 것일까?

2. 그 이름보다 능력 있는 십자가(?)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릴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이름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할 때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능력을 주셨다. 신앙은 어떤 도구와 형식을 준수했다고 신통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가 그런 능력이 있다면 예수님의 이름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드는 드라큐라 앞에서 두려워 떨며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지 못하고 십자가만 찾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면, 그 이름의 능력은 나무 작대기 겹친 것보다 못하다는 것인가?

신앙은 '형식의 종교'가 아니라 '마음의 종교'다. 형식과 주문을 갖추어서 능력이 발생한다고 본다면, 그것은 '행위 마법'에 불과할 것이다. 아직도 종교 형식에 대한 외적 준수가 자신의 종교성의 가치를 보장해준다고 생각한다면 신앙이 아니라 미신이다.

3. 그러나 마늘보다 능력 없는 십자가

어떤 의미에서 한국인에게는 십자가도 필요 없다. 드라큐라는 서양 귀신이라 마늘 냄새를 무서워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에게는 십자가도 굳이 필요가 없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김치를 먹을 때마다 마늘을 먹는 것과 같기에 한국 사람들의 트림과 입 냄새에는 마늘 냄새가 배어 있다. '꺼~억.' 트림 한 번하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아니 이미 핏속에 마늘 냄새가 배어 있어서 물려도 드라큘라는 그 송곳니부터 녹아내릴 것이다.

결국 드라큐라를 퇴치하는 데는 예수님의 이름도 십자가도 필요 없이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 결국 그 이름보다 능력 있는 십자가는 마늘보다 능력 없는 십자가가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십자가는 마늘 냄새에 내성이 생긴 한국 산 드라큐라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니면, 서양에서 온 종교라 십자가는 서양 귀신에게만 효력이 있을까?

4. 미신이냐 신앙이냐

   
 
  ▲ 십자가는 실천적 신비주의다. 그깟 귀신과 싸우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란 얘기다.  
 
교회 식당에서 밥을 담을 때 솥 안에 십자가를 주걱으로 그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 십자가 목걸이와 액세서리로 삼아서 사용하는 모습도 본다. 필자는 이런 것이 다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앙인이라는 것을 공적으로 드러내고 스스로 신자다운 구별된 삶을 살기를 결심하는 마음에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십자가를 그렸기에 소화가 잘되고 건강해질 것을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미신이다. 십자가 장신구를 몸에 부착했기에 악한 기운을 막고 보호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미신이다.

5. 실천적 신비주의로 십자가

십자가는 '실천적 신비주의'이다. 종교적 황홀경에 심취해서 자아 해체를 경험하는 것이 신비주의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에 실천적인 동참하는 매우 현실적인 신비주의이다. 그 누구도 살고 싶지 않은 십자가의 잔을 받을 수 있는 삶은 신비 그 자체이다. 십자가의 능력은 바로 실천적 신비주의로서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십자가의 능력은 귀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치열한 현실과 이기적인 자아와의 싸움에서 나타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능력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각인하고 그분의 삶을 따르고 싶은 본질적인 영적 욕망 곧 성령의 소욕을 일으키는 것이다. 십자가에는 바로 '자기희생과 사랑의 능력'이 나타나기에 위대한 능력을 가진 것이다. 악귀를 물리치고 자기 능력을 나타내는 어떤 신기한 능력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를 보면 드라큘라가 떠나고 귀신이 두려워한다는 것은 미신이다. TV나 영화가 만들어낸 전설 같은 이야기는 신앙이 아니라 미신이다.

6. 생각 보따리를 묶으며

눈에 비친 그림자의 모양으로 예수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서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흘을 금식하고 괴로워하던 권사님 한 분을 보고 필자는 심각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착시 현상으로 인해 예수님 얼굴이 보이냐 안 보이냐는 관찰력의 문제를 가지고 구원의 문제로 여기는 황당함이란. "지난 30년간 예수를 믿었는데 새신자도 보이는 그 얼굴이 왜 내게 안보이냐? 지난 신앙생활 다 헛했다"며 실망하던 모습보고 "정말 헛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나는 보인다"고 안도하는 다른 분들의 모습이었다.

십자가의 능력은 십자가를 감당하는 실천적인 삶에서 나타나는 능력이다. 고난과 역경의 환경 속에서도 주의 길을 걸어가는 삶에서 그 십자가의 능력이 나온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 십자가의 능력이 나온다. 드라큘라는 십자가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입에서 '예수'의 이름이 선포될 때, 드라큘라가 아니라 세상이 두려워 떨 것이다.

송병주 목사 / LA 선한청지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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