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참전 용사'서 '반전 운동가'로 거듭나다
제이크, '참전 용사'서 '반전 운동가'로 거듭나다
  • 박지호
  • 승인 2009.11.04 04: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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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라는 우상 버리고 평화주의자가 되기까지

* 기사 도입부에 있었던, 제이크가 이라크 전투에서 경험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제이크의 요청으로 삭제했습니다. 

제이크(Jake Diliberto)는 2001년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기 시작해 2003년 이라크로 근무지를 옮기고 그해 말 전역했다. 전장에서의 잊을 수 없는 참혹한 그의 경험이 신앙과도 같았던 '정당한 전쟁'에 대한 제이크의 확고한 신념에 균열을 가져왔다. 그 균열은 여러 물음을 만들어냈다. 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눠야 했는가, 무엇이 그들을 우리를 향해 공격하도록 만들었는가. 예수를 따르도록 훈련받아야 할 그리스도인이, 사람을 죽이도록 강요받는 전쟁터에서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가. 

   
 
  ▲ 제이크는 그들이 전쟁터로 갔다고 생각하지, 우리가 그들을 전쟁터로 보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제이크는 그 질문을 마음 한 구석에 묻어 둔 채, 제대 후 일리노이주립대학 정치학과에 들어갔다. '가장 극단적인 정치 행위가 다름 아닌 전쟁'이기에 전공 수업에서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전쟁이 '테러리즘'에 대한 심판이라는 데 동의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중동의 평화’,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갖가지 수식어를 내걸었지만, 이라크 전쟁은 이미 명분 없는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쟁 지지자였던 제이크는 분노했다. 국가를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억압받는 이라크 민중의 자유를 위해서 죽음의 공포와 씨름했던 자신의 수고마저 조롱당하는 것 같았다. 수업 시간에 전쟁에 대해 토론이 벌어질 때마다 제이크는 다른 학생들과의 또 한 번의 외로운 전쟁을 치러야 했다.

   
 
  ▲ 제이크의 세계관을 변화시킨 자말 나사르 교수. (출처 : 일리노이주립대학 홈페이지)  
 
이런 제이크를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다. 자말 나사르 교수(정치학과)다. 그는 제이크를 만나 자신의 강의를 더 들어보라고 제안했다. 수업에 참석하기만 해도 학점을 후하게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도 달았다. 그는 자말 교수의 '비폭력 정치', '국제 분쟁과 안정', '중동 정치'를 수강했다. 수업을 듣는 1년 반 동안 이라크에서 생겼던 '신념의 균열'은 더 크게 벌어졌다.

제이크는 겉으로는 '국제 평화'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패권과 이익을 위해 전쟁을 저질러온 미국 정부의 추악한 이면과 직면하게 됐다. 군산복합체와 석유 재벌들과 정부의 밀월 관계가 전쟁과 군비 증강을 부추겼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도 그 연장선에서 일어난 일임을 알게 됐다.

졸업을 앞둔 제이크는 자말 교수와 함께 몇 달간 팔레스타인 지역에 머무를 기회가 생겼다. 보수적인 무슬림 가정에서 지내면서 그들과 깊이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이전까지 그에게 팔레스타인은 9·11테러 직후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던 사람들이었고,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그들은 달랐다.

"그들은 나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우리 교회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르쳐주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지원하고, 무슬림을 홀대하지만 이 사람들은 나를 지극 정성으로 대접해주었다. 진정 예수를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인종, 민족, 관점, 종교가 다르지만,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었고, 내 삶이 새롭게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자신을 회개하도록 만들었다고 제이크는 고백했다. 자신의 우상이 다름 아닌, '국가주의'였음을 깨달았다. 국가주의는 근본주의 신앙과 결합해, 극단적인 증오와 폭력을 정당화했고, 자신을 전쟁이라는 추악한 체제에 뛰어들게 만들었다는 것도.

팔레스타인에서 돌아온 제이크는 자신의 '회심기'를 그가 다니던 교회 리더들과 나눴다. 그가 군 입대를 결심하자 참전을 지지하며 기도해주었고, 사지에서 돌아오자 파트타임 사역자로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었던 교회는 제이크의 뜻밖의 고백에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다'는 해고 통지로 답을 대신했다.

   
 
  ▲ 제이크는 몇몇 전역 군인들과 함께 'Rethinking Afghanistan'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반전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제이크는 "신학적인 위기"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외눈박이 괴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고, 그에게 익숙했던 교회가 생경하게 다가왔다. 제이크는 대학 졸업 후 풀러신학교 목회학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자신 안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고민들을 얼기설기 엮어가기 시작했다. 신학교를 졸업할 무렵, 제이크는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의 변화를 새로운 운동으로 만들어갔다. 현재는 몇몇 전역 군인들과 함께 'Rethinking Afghanistan'이라는 단체를 만든 제이크는 활발한 반전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워싱턴을 방문해 의원들을 만나면서 미국의 대외 정책을 재고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군사적 접근으로 인한 실패를 인정하고, 총체적인 대안을 마련해, 비군사적 방법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이크는 지난 8년 동안 미국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를 벌여왔지만, 폭력과 불안정함만 가중될 뿐이라며, 무력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두움으로 어두움을 없앨 수 없듯, 폭력으로 폭력을 멈출 수 없다. 비폭력이라는 빛으로 폭력이라는 어두움을 몰아내야 한다."

   
 
  ▲ 제이크는 지난 10월 22일, 풀러신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고 전쟁으로 인한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고발하고, 전쟁이 문제 해결의 답이 될 수 없음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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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ybear 2009-11-05 07:35:14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조상들이 6.25때 흔히 겪어 봤음직한 갈등일것 같네요.